진실의 무게-피의자였던 그녀는 피해자였다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 그녀는 이미 상처 속에 갇혀 있었다

by 별하

[작가 노트]

사랑은 때로 사람을 구원하지만,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의 이름이 된다.
그날, 내 앞에 앉아 있던 한 여자는 피의자였지만, 나는 알았다.

진짜 피해자는 그녀라는 것을



내가 어렸을 때, 동네 비디오방구석에는 늘 빨간색 ‘19금’ 마크가 붙은 코너가 있었다. 주인아저씨 몰래 가까이 가서 케이스의 사진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변강쇠’, ‘애마부인’, ‘산딸기’… 제목부터 어쩐지 금단의 냄새가 났다. 그땐 성적 상상의 호기심이 가득했던 마음으로 항상 훔쳐보았던 그 구석에 있는 코너의 한 칸.

성적 호기심이 가득 있던 내가 어느새 수사관이 된 후, 금단의 세상 이면에 얼마나 많은 진짜 상처가 숨겨져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경제 수사팀에 근무할 때였다. 검사 지휘사건으로 ‘무고 사건’이 배당되었다. 합의된 성관계였는데, 강간으로 신고당했다며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을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성적 분쟁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 깨닫게 됐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건, 그들이 ‘스와핑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 이들은 서로를 바꿔갔다.


윤리의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그들, 그 속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고, 놀랍게도 ‘연출자’가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를 탐닉하면서 사랑의 춤을 추듯, 누군가의 지휘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사랑을 나눈 게 아니라, 누군가의 지휘 아래 사랑을 연기했을 뿐이었다. 그날의 사건은 한순간의 ‘파열’에서 시작됐다. 임신과 질병에서 여성을 보호할 콘돔이 찢어졌고, 책임을 둘러싼 분노가 남성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결국 한 남자는 강간범으로 몰렸고, 한 여자는 피해자로,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여자의 연인으로,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진실을 가렸다. 나는 피의자로 불려 온 여자를 마주했다.


그녀는 차분했고, 눈동자는 깊었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죄의식이 아니라 슬픔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연출자인 남자를 지키려, 조사실 안에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그래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렇게 사랑을 지키려다 그녀는 무너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그녀를 그저 ‘스와핑 파트너’로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차마 말해줄 수 없었다.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쾌락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날의 그녀는, 쾌락이 아닌 사랑 때문에 무너졌다.

그녀는 이용당한 여인이었고, 또한 사랑하는 남자를 믿은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라 하지만, 현장은 언제나 그 경계가 모호하다.

그녀는 법적으로 피의자였지만,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피해자였다.


[소 에필로그]


사건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남은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을 탓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사랑이란 단어는 왜 이렇게 잔인할까.

누군가에게는 천국을, 누군가에게는 지옥을 주니까.


'그녀는 피의자였지만, 피해자였음을, 그리고 진짜 가해자는, 사랑이라는 달콤함을 이용한 남자들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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