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욕망의 마지막 돌판

욕망은 늘 손에 닿는 곳에 있지만, 그 끝은 늘 불편한 곳에 있다

by 별하

[작가 노트]


모세는 시내산에서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계율을 포함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품에 안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아마도 신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알기에 ‘하늘의 경고’였을지도,

욕망은 늘 이길 수 없는 유혹처럼 다가온다.

그 욕망의 끝에는 늘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피가 묻는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명절이면 극장에 가서 최신 개봉 영화를 보는 게 작은 낙이었다.
내가 본 영화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찰턴 헤스턴과 율 브린너가 출연한 ‘십계(The Ten Commandments)’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하느님이 번개를 펜 삼아 하나씩 하나씩 적어주신 십계명을, 두 개의 돌판에 담는 장면은 지금도 볼 때마다, 가슴이 뭐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뜨겁게 뛴다.

그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의 마지막 계율,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이 문장이 세상 모든 사건의 근원이자 종착지라는 생각이 든다. 형사로 일하던 시절, 그 계율을 온몸으로 실감한 사건이 있었다.

점심 무렵, 무전이 울렸다.

“살인사건 발생. 용의자 검거 완료”

사건 현장은 이미 폴리스라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실엔 피비린내가 짙게 깔려 있었고, 남자는 천장을 바라본 채 식어가고 있었다. 피해자는 40대 초반의 남성, 그의 곁에는 다른 남자의 부인이었던 여자가 울고 있다.

울고 있는 여자의 진짜 남편이 칼을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죽은 남자는 아마도 한때 ‘고개 숙인 남자’였을 것이다. 요즘 말로 ‘비뇨기과의 마법’이라 불리는 기적을 통해 새 인생을 얻은 남자였다. 그의 욕망의 기적은 쓰러져가는 기둥을 튼튼하고 세웠다. 세워진 기둥과 함께 그에게는 또 다른 욕망도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욕망은 남의 여자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잘못된 욕망의 선택이, 결국 피로 끝났다. 누워있는 그의 몸 위에 올려진 흰 천은 모든 것을 덮지 못했다. 하늘을 향해 여전히 솟아 있는 한 부분의 욕망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죽은 자의 마지막 자존심인지, 아니면 신이 남겨둔 조롱인지.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욕망의 마법은 사람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그 욕망의 방향이 잘못되면 그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라는 것을, 남의 것을 탐내는 순간, 그건 이미 내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빼앗아 갈 수도 있음을,

나는 그날 보았다.



[소 에필로그]

모세가 품에 안고 있던 하나님의 메시지를,

산 아래에서 욕망의 춤을 추고 있던 그들에게 던졌던 건, 아마도 그 계율을 어긴 사람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속에도 조용히 돌판의 글귀를 새겨 두었다.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이는 남의 사랑, 남의 자리, 남의 행복까지도,

그저 욕망의 끝에는 늘 한 사람의 희생과 많은 사람의 눈물이 남을지도 모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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