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독일 유학 중 '디지털 자본주의 속에서의 노동'이라는 정치학 세미나를 수강할 때의 일이다. 위 질문에 학생들은 다양한 주장을 펼쳤다. 로봇 소유 기업에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비중만큼의 세금을 물려 재화를 나누는 방식, 로봇 노동에 과중한 세금을 매겨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누는 방식, 국가가 기본소득만 보장하고 로봇 노동을 운영하는 기업의 이익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 등이 논의되었다. 격렬했던 논쟁에 비해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로봇 노동의 시대에'노동 의미의 재정의'와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재조명'²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동의했다.
"AI가 인간 대신 노동한다"의 역사적 사건이 불러 올 두 번째 질문 "노동하지 않으면 인간은 어떻게 먹고사나?"는 우리에게 노동의 의미를 상기시킨다.노동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었던 삶의 거대한메커니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현실은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과 '(로봇 노동의 시대에)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안긴다.
하지만 필자는 (앞선 화에서 주장한 대로) AI가 인간 대신 노동해도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진 않으리라 본다. 이번 화에서는여전히 하지만 다르게 노동할 인간에게기술 시대에서의 '노동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시대에 우리는 '로봇이 생산한 재화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그럼에도 인간은 노동하다는 주장을 보강해보고자 한다.
일하지 않는 자도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노동은 고단함을 전제하는 행위였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당위의 이유는 허기와 함께 시작되어 더 다양하고 복잡한 욕구로 발전했고, 인간은 더 높은 수준의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재화를 필요로 하게 됐다.
기술을 통한 자동 생산의 시대에는 적어도 기본 소득이 정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그 기본소득만으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진 못한다. 높아진 욕구를 채우기에 그 재화의 양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래에는일하지 않는 자도 먹고살 수 있으나, 그 수준은 사회적 최저 수준에 그칠 것이다.
기본소득을위한 재원은 로봇과 로봇을 통한 생산이익으로부터 마련되리라 본다. 로봇에서 비롯한 이익은 필연적으로 기존 노동시장의 붕괴와 그 시장에서의 대다수 노동자가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이뤄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AI와 결합한 사이보그가 된다고 할지라도 로봇 자동 생산은 필요한 노동자의 절대치를 크게 감소시킬 것이다.그리고 이 배경이 사회적으로 기본소득의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자원 분배의 필요에 대한 명분이 된다. 즉 로봇의 노동으로 생산된 과실에는 노동기회를박탈당한 해당 노동 시장에 속한 사람들의 몫이 존재한다. 이를 국가 단위의 차원에서 봤을 때는 노동 가능 인구의 전 국민에게 자동 생산으로 발생한 재화에 대한 소유권이 일정 부분 인정된다고 할 수 있으며, 로봇이 생산한 재화에는 일정 부분 공공재와 같은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게 된다.³
그렇다면 어떻게 로봇에서 비롯한 생산이익을 수취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업장에서의 노동 로봇 사용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로봇 자체에 대한 보유세, 재산세가 될 수도 있고 로봇이 운영되는 시간에 대한 사용료가 될 수도 있다. 이 방식은 로봇이라는 기술적 대상에 직접적으로 과세하는 경우이다. 둘째, 로봇이 생산한 재화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부가가치세와 같은 명목으로 로봇이 아닌 로봇의 생산물에 가하는 간접적인 수취 방식이다. 셋째, 로봇에 사용되는 전력, 업그레이드 및 개보수 시에 물리는 유지 운영비 형식의 징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물론 한 측면이 아닌 살펴본 모든 측면에서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 로봇 노동의 시대에 기본소득을 비롯한 재화의 분배의 구체적인 시행방식(분배율, 징수율과 분배 및 징수방식 등)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어야 할 주제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는 모두 로봇의 노동에 기인한다. 로봇 또한 노동의 주체이고, 따라서 노동을 정의함에 있어서 로봇의 노동과 인간의 노동의 의미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먼저인간에게 노동은 욕구를 이루기 위한 선택적 수단이며, 동시에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하나의 도구로써 역할한다. 노동의 이유였던 '생존과 직결된 허기'가 '욕구에 대한 물질적 갈증'으로 대체되면서, 미래의 노동은 욕구와 분배되는 재화사이에서 발생하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이 결핍은 인간을 '날카롭게' 유지시키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지난 화의 마지막에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얻는 '또 다른 이익'이 바로 이 날카로움이다). 노동을 통해 몸과 정신을 꾸준히 사용함으로써 그 능력을 건강하게 발전시킨다는 의미의 이 '날카로움'은 노동함으로써 육체적 정신적 나태함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개념이며, 기존 노동에서도 보이는 특성이지만, 기술로 인해 불편함이 줄어드는 인간에게 주요한 노동의 의미로 자리하리라 본다.
욕구의 충족을 위한 노동이기에 미래의 노동은 선택적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해 온 생존을 위한 노동이라는 커다란 굴레는 로봇이 짊어진다. 인간의 노동은 더 높은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노력이 된다. 노동의 특성상 여전히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성격을 갖겠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는 아니기에 이전에 비해 그 당위의 압력은 약하다.
로봇에게 노동은 당위이자 존재의 이유이다.로봇이라는 단어가 체코어로 '일하다'라는 'Robota'에서 유래함 ⁴에서 알 수 있듯로봇은 인간을 돕고 인간 노동을 대신할 존재로서 탄생했다. 그렇기에 미래에 로봇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생산 활동을 도맡아 할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물질적 욕구에 대한 성취에 목표하면서 남겨진 꼭 수행되어야 할 노동이 이 기술적 대상의 몫이 된다.
로봇의 노동에는프로토콜이적용되어야 한다. 이 프로토콜은 인간이 정하는 가이드라인이며, 로봇의 행위 전반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⁵이 대표적인 예이다. 로봇은 노동 기계일 뿐 그 자체에 '의지'가 없다. 로봇 사용자의 의지가 곧 로봇의 행동으로 연결되므로, 인간에 해가 되거나, 위협이 될 수 있는 로봇의 행동을 출력 이전 과정에서 사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사이보그와 그 주변 기술들의 발달로 인해 벌어질 현상은 기술의 배경과 작용을 함께 이해하며 해석해야 한다. 그 해석은 해석하는 이가 중점을 두고 있는 가치와 분야 등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지만, 어떠한 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짐작해 보는 데 있어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5화와 6화에 걸쳐 로봇 노동의 시대에 대해 예측해 본 이번 글 역시 그 다양성의 한 축석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각주
1. 이번 화에서 언급되는 '로봇'은 'AI가 탑재된 로봇'을 의미한다.
2.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단에 이르렀을 때 등장할 경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와 시도였다.기존 생산과 분배등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철학은 로봇 노동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 문제와 논의 배경에 유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3. 로봇 생산 재화의 분배와 관련하여 일례로 원유를 국가에서 공공재로써 여기며 발생 이익을 국민에게 환원하는 정책을 참고할 만하다. 노르웨이에서는 원유를 통한 국부펀드를 운영해 복지자금을 운영하여 세비를 충당하고,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원유 채굴권을 통해 이룬 초과이익을 배당금의 형식으로 주민들에게 지급한다.
4. 로봇의 개념은 카렐 차페크의 SF극본 <R.U.R>에서 처음 등장했다. 극본 중 로봇은 '인공적인 노동자', '가장 저렴한 일꾼', '가장 손이 덜 가는 일꾼', '공학자의 생산품' 등으로 표현된다.
5. 로봇 3원칙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I, Robot>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로봇의 행동준칙이다. 3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해를 입게 해서는 안 된다. ②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③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