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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Sep 19. 2024

첫사랑의 향기

계수나무


 첫사랑의 향기는 어떤 느낌일까? 결과에 따라 ‘씁쓸하다’ 또는 ‘아련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역시 느낌은 ‘달콤함’이 아닐까? 난생처음 겪은 좋은 감정이니 말이다. 첫사랑의 느낌처럼 숲에도 달콤한 향기를 가진 나무가 있다. 더구나 꽃향기가 아니다. 독특하게도 잎에서 풍기는 계수나무다. 

 꽃은 꽃가루를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충매화, 풍매화…. 등으로 나눈다. 충매화는 곤충의 눈에 띄어야 하므로 크고 화려하지만, 풍매화는 그렇지 않다. 꽃도 단순하고 유혹할 향기도 필요 없다. 봄에 꽃피는 계수나무가 볼품없는 풍매화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열매도 쓸모없어 주목받지 못한다.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존재감이 드러난다. 숲을 걷다가 솜사탕 같은 냄새가 날 때 땅에 떨어진 하트모양의 노란 잎을 찾으면 된다. 코끝이 달콤해진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1924년 윤극영이 지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의 한 소절이다.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지 몰라도 입에서 저절로 웅얼거린다. 오래전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하며 부르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노래에 ‘계수나무’가 등장한다. 달에 이 나무가 있다는 건 생활 주변에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달콤함으로 만난 계수나무는 달에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 논란이 있었다.

 달 속의 나무는 중국 원산 ‘목서’이다. 꽃과 향이 좋아 옛날 ‘시(詩)’에도 자주 등장해 달 속 계수나무로 둔갑했다. 달콤한 향기의 계수나무는 20세기 초에 건너온 일본 원산 카츠라(桂) 나무이다. 그 외에도 향신료인 ‘계피’나 ‘월계수’ 등 혼동을 일으킬만한 유사 명칭이 있었다.      


 계수나무는 기온이 떨어지면 잎자루의 물질이동 통로를 차단해 월동을 준비한다. 이때 잎에 남겨진 당 성분이 승화하면서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 소금에서 짠 내가 나는 현상과 유사하다. 낙엽이 되어 마르면 향기가 더욱 진하다. 

 가을날 계수나무 밑에서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푸른 하늘과 노란 하트모양 단풍잎 그리고 달콤한 향기까지. 감성지수가 최고조로 오른다. 그래서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니라 과학이다. 계수나무는 그렇게 사랑 나무가 되었다. 연인의 고백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스트레스로 응어리진 현대인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향기 폭탄이니 말이다.      


 오래된 친구 중에 첫사랑으로 만나 결혼한 부부가 있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 만났으니 함께한 시간이 제법 길다. 다른 청춘과 눈 돌릴 기회도 없이 엮였다고 아웅다웅하며 억울해하는 그 모습이 진풍경이다.

부부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케미(Chemistry)’가 남다르다. 순수의 시대에 만나 익어가는 대화나 태도가 꾸밈없다. 두 나무의 가지가 연결되어 자라는 연리지(連理枝)의 모습과 겹친다. 조만간 전원생활을 꿈꾼다고 하여 귀촌하면 마당에 계수나무를 심으라고 권면했다. 오랜 익숙함으로 첫사랑의 소중함을 잃지 않도록….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과(낙엽 활엽 교목이다유사 종이 없이 계수나무 한 종만 있는 외로운 나무이다

 나뭇잎에서 나오는 향기로 서양에서는 캐러멜 나무라고도 부른다공원 등에 현재 개체수가 늘어나는 조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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