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가을로 접어들 때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게 있다. 개화와 단풍의 시기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봄에는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개화 순서를, 가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역별로 단풍 드는 시기를 알려준다. 둘 다 온도와 관련된 현상으로 개화는 기온이 높아질 때, 단풍은 낮아질 때 일어나는 상반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활엽수는 가을이 되어 서늘해지면 다양한 색깔의 단풍이 든다. 자연의 순리이다. 그런데 ‘단풍나무’라는 고유 이름을 가진 종(種)이 따로 있다. 뭔가 이상하다. 다른 나무도 단풍이 드는데 홀로 그 이름을 독점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풍의 한자 단(丹)은 ‘붉을 단’이다. 적색이 단풍의 원조 격이다. 단풍나무는 잎이 적색으로 변하는 대표적인 나무여서 이름이 그렇게 정해졌다.
단풍은 녹색 잎이 적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잎에는 빛을 흡수하는 색소가 있다. 가을에 기온이 낮아지면 가장 왕성했던 녹색색소(엽록소)가 사라진다. 이때 뒷정리를 위해 저온에 다소 강한 보조색소들이 낙엽 질 때까지 여러 색으로 드러나는 것이 단풍이다. 나무가 휴면을 위해 선택한 출구 전략인 셈이다.
단풍나무의 적색색소는 이 시기에 새롭게 생성되어 피톤치드의 임무를 수행한다. 성숙한 자기 열매를 해충으로부터 끝까지 지키는 호위무사 역할이다. 낙엽과 함께 땅에 떨어져 다른 식물의 발아를 억제하여 영역을 지켜내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자기 씨앗도 발아가 어렵다는 점이다. 단풍나무는 이러한 난감한 상황을 위해 진화된 기능을 장착했다.
숲에서 사람들에게 내가 보여주는 활동이 있다. 단풍나무 열매 한 움큼을 집어 들고 손을 펼친다. 열매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모두 신기한 듯 박수를 보내 주었다.
단풍나무 열매는 잠자리 날개처럼 생겼다. 날개의 한쪽 끝에만 씨앗이 들었고 반대쪽은 넓고 얇아서 떨어질 때 공기 저항을 더 받는다. 그래서 양쪽의 속도가 불균형이 생기면서 씨앗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이렇게 씨앗을 품은 열매가 천천히 떨어지므로 바람이 불면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이 원리로 탄생한 것이 헬리콥터다. 프로펠러의 원리가 단풍나무에 숨어있었다. 자기 영역을 확보하면서 자손은 다른 지역으로 날려 보낸다. 종족 번식을 위한 탁월한 출구 전략이다.
단풍은 계절 변화에서 나타나며 활동과 휴면 사이의 전환기를 대처하는 현상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단풍을 찾고 열광한다.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기쁨이 있으며 삶의 가치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겨난다. 고단한 삶에서 주어진 사명을 다했다는 만족감이다.
단풍은 헤어짐의 리허설이다. 가장 화려하게 물들이고 내려놓는 지혜로움이다. 그리고 종족을 위한 헌신을 통하여 삶이 끝이 아니라 이어진다는 여운을 남긴다.
단풍나무는 무환자나무과(科) 낙엽 활엽 교목이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손바닥 모양’이라는 의미가 원어에 담겨있다. 단풍나무는 한 종이지만, 고로쇠나무, 신나무, 당단풍, 복자기나무 등 같은 과(科)인 나무를 총칭해 부르기도 한다.
재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고급 자재로 쓰이며 특히 소리를 잘 전하는 특성이 있어 목관악기 제작에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