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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Sep 12. 2024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노간주나무


 가족 내에 같은 시부모라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며느리와의 관계에 온도 차이가 있다. 집안일로 의견교류가 많은 시어머니와 달리 시아버지는 접점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많았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도시에 사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딸의 유학으로 부부 둘만 남았다. 1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80세 시아버지는 도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에 계셨다. 평소 부모에게 각별했던 남편이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시골집에 가서 살까? 당신만 괜찮으면 거기서 통근해도 되는데”      


 남편은 홀로 계신 아버지를 염려하여 모시고 살고 싶어 했다. 아내도 시골이 좋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쾌히 승낙했다. 부부는 그렇게 시골로 살림을 옮겼다.

 시집살이가 시작되었으나 며느리의 역할은 많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남편이 출근하면 둘만 남는데 시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더구나 아침에 나가시면 마을회관에 머물다 저녁에나 귀가하셨다. 며느리를 편하게 하려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달 남짓 지나 시어머니 제삿날이 되었다. 남편, 시아버지와 함께 세 사람은 뒷산 산소로 제수 음식을 들고 출발했다. 산길을 오르던 중에 남편은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났다. 곧바로 짐을 내려놓고 집으로 달려가고 둘만 남았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며 시간이 흘렀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시아버지가 한 나무를 가리켰다.      


 “어미야. 이 나무가 노간주나무란다”     


 침묵하던 시아버지가 봇물 터지듯 말씀을 쏟아냈다. 나무가 부드럽고 단단해 소의 코뚜레에 제격이라는 설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코뚜레는 소의 콧구멍 사이를 뚫고 끼워서 고삐를 매었던 고리다.

 코뚜레 만드는 과정이 이어졌다. 나무를 불에 구워 동그랗게 휘는 동작을 손으로 재현하셨다. 당신의 어린 시절 코뚜레로 코가 뚫릴 때 아파하던 송아지와 함께 울었다고 훌쩍거리는 즉석 연기도 하셨다.

 이번에는 노간주나무 지팡이를 깎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전혀 다른 시아버지 모습에 며느리는 한참 동안 넋이 빠졌다. 그때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재밌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눈치 없게…’라고 며느리는 허공에 원망스러운 말을 중얼거렸다.

 몇 년이 지나 시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정겨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신 애틋한 사랑이 전해왔다. 산길에서 원통형의 노간주나무가 눈에 띄었다. 마치 시아버지가 서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시부모와 며느리는 혈연관계가 아니다. 좋아서 결혼한 남편도 맞추기 쉽지 않은데 시부모는 더욱 그렇다. 현대 사회는 가족관계가 다변화되면서 '시월드 스트레스'와 함께 '며느리 눈치'라는 ‘신고부관계’도 만연한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가족끼리도 관심이나 기대감을 대폭 낮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처럼 사람 사이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노간주나무는 측백나무과() 상록 침엽 교목이다. 향나무를 닮았고 늙은 가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산길 옆이나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지만 다른 침엽수에 비해 작고 수형도 고르지 않아 주목받지 못했다. 코뚜레뿐 아니라 도낏자루, 도리깨 등 농기구에 사용했다.             


코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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