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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Sep 05. 2024

기쁨 두 배

뽕나무


 삼척동자 시절에 듣던 전래동화가 있다. 유행에 뒤처진 말장난 같지만, 그때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준 생활의 해학(諧謔)이었다.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가 있었는데

 뽕나무가 ‘뽕’하고 방귀를 뀌니까

 옆에 있던 대나무가 ‘대끼놈’하고 야단을 쳤대  

 그러자 듣고 있던 참나무가 ‘참아라’라고 점잖게 말했다네」      


 ‘방귀 뀌는 뽕나무’라는 제목으로 노래로도 불린 이야기다. 매년 6월경에는 검붉게 익는 뽕나무 열매 ‘오디’가 열린다. 포도송이 축소판처럼 생겼고, 먹다 보면 손이나 혀, 입술이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지만 오디는 소화력을 높이는 효능이 있다. 덕분에 변비가 완화되고 쾌변을 도와 이때 생기는 방귀 소리에서 뽕나무 이름이 유래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과 함께 과거와 달라진 세상을 나타낸다. 바다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옛날에 뽕나무밭이 제법 넓었다는 사실도 암시한다.

 뽕나무는 오래전부터 재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누에를 치는 양잠은 인류 역사에서 의류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Silk road)가 생겼을 정도이니 짐작하고도 남는다.

 누에는 누에나방이 낳은 알이 부화한 애벌레(유충)다. 누에가 자라 고치를 만들고 거기서 뽑아낸 명주실로 짠 옷감이 비단이다. 누에는 실을 만드는 역할을 마치면 번데기가 된다. 이것을 사람이 식용으로 이용했는데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즐겨 먹던 영양간식이었다.      


 오늘날에는 뽕나무와 양잠과의 필연성이 당연하지 않다. 양잠은 화학섬유에 밀린 사양산업이라 뽕나무는 오히려 건강과의 연관성이 더 높다. ‘동의보감’에도 뽕나무는 버릴 게 없다고 쓰여있다. 잎, 뿌리, 줄기, 열매뿐만 아니라 나무에 기생하는 상황버섯 등 모두가 약효가 있다. 덕분에 현대인에게 발병하는 질환에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의 약재로 이용한다.

 과거에는 양잠만으로도 경제적 가치가 높은 산업이었다. 지금은 뽕나무와 누에가 한 세트가 되어 양잠과 약용의 혜택을 준다. 그래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이룬다는 ‘임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이 마치 오래전에 예견된 속담처럼 느껴진다. 예나 지금이나 뽕나무는 사람에게 기쁨 두 배다.     


 흔히 마약을 ‘뽕’이라 부른다. 필로폰(Philopon)의 일본식 발음 ‘히로뽕’에서 유래한 속어로 마치 뽕잎이 마약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뽕은 방귀 소리와 도박판의 밑천, 실제보다 부풀린 것의 의미도 담고 있다. 여기에 성 상품화를 나타낸 은어 뽕 등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의 영향으로 다소 부정적인 면이 덧칠되어 있다. 그래도 뽕나무는 숲을 풍성하게 하고 한국인에게 활용 가치가 높은 충성스러운 나무이다.     


 뽕나무는 뽕나무과() 낙엽 활엽 교목이다. 내한성이 강하고 토질이 좋지 않아도 잘 자라 전국 어디에나 볼 수 있다. 야생하는 유사 종에는 산뽕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궁궐에도 심었던 나무이다. 왕비가 주관해 친잠례라는 의식을 개최하여 양잠의 필요성을 알리고 권장했던 여성 노동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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