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총수가 후보로 출마했다. 그의 선거운동에는 만화 형태의 홍보 책자가 뿌려졌다. 거기에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후보의 성공 신화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중 나에게 인상 깊게 기억된 것이 있었다. 바로 빈대 이야기다.
그가 막노동하던 젊은 시절 합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시절은 빈대가 무척 극성을 부렸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빈대를 피해 상 위에서 잠을 잤는데 상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괴롭혔다. 그들은 궁리 끝에 그릇에 물을 담아 상다리를 담갔다. 날 수 없는 빈대가 물을 건널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빈대는 특수부대 요원처럼 실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사람에게 떨어져 물었다고 한다. 그 후 사업가가 된 그는 빈대의 집요함을 자주 인용했다. 하찮은 미물도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무얼 못 하겠냐는 주장이었다.
빈대는 다른 해충들과 달리 식물을 먹지 않으며, 동물 피만 먹는 절대적인 흡혈귀다. 낮에는 숨고 밤에 인간이 잠든 틈에 기회를 노린다. 가장 깊은 잠, 가장 무방비한 순간이 공격 시점이다. 특히 연한 피부를 연달아 긴 주둥이로 찌르고 피를 빤다. 통증과 가려움증을 일으켜 같은 공공의 적인 모기보다 더 끈질기게 수면을 방해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말이 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피해를 보는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속담이다. 그런데 왜 하필 빈대였을까? 여기에도 빈대의 집요함이 묻어난다.
빈대는 원래 박쥐에 기생하였으나 인류가 동굴에서 살면서, 인간 중심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인간의 생활 리듬을 역이용해 반복적인 고통을 준다. 즉, 초가삼간에 불을 싸질러 다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그 고통을 견디기가 어렵다는 절규가 담겨 있다.
‘빈대 붙는다.’라는 말도 있다. 남에게 붙어서 얻어먹는 사람의 행위다. 체면이나 수치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피해를 준다는 표현이며 이 역시 생존을 위한 빈대의 집요한 습성을 빗댄 말이다. 이처럼 자신보다 수백만 배 큰 인간을 상대로 기생하는 빈대. 그 존재에게 ‘불가능은 없다.’라는 처절한 생존 철학이 담긴 숱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환경개선과 살충제로 인하여 21세기의 빈대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최근에 빈대의 출몰과 확산 소식이 가끔 들리지만,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인류는 미물의 습격에 민감하다. 이상기후 등의 원인으로 살충제 내성 빈대가 대번식하여 수면 자유를 헤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가뜩이나 잠들기 힘든 현대인에게 과거처럼 빈대까지 가세한다면 아마도 삶이 너무 고단할 듯하다.
빈대는 노린재목(目) 빈대과(科)이다. 전 세계에 분포하고 ‘Bedbug’라는 영어명에서 알 수 있듯이 특히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다. 몸에서 향신료 고수와 같은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비 오는 날 추억의 음식인 빈대떡의 빈대 뜻은 여러 가지 유래가 전해오지만, 흡혈귀 빈대라면 몹시 불편하다. ‘가난할 빈(貧)’과 시대 대(代)’로 ‘가난한 시대의 떡’ 서민 음식이라는 해석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