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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31. 2020

외로움, 게이의 질병,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보이즈 인 더 밴드〉


  친구의 생일 파티에 모인 9명의 게이들. 그들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지점은 명백하다. 외모 강박 편집증이 있는 게이, '과한' 여성성(혹은 '거세된' 남성성)을 수행하는 게이, 낭비벽이 있는 가톨릭 신자 게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게이, 여자와 결혼한 게이, 몸 파는 게이, 게이인 걸 부정하는 게이, 흑인 게이, 바람둥이 게이…. 그렇다면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서로 다른 게이들이 저마다의 외로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놀던 중 마이클이 게임을 제안한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하여 마음을 전하는 게임이다. 게임이 진행된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남성 동성애자'라는 두루뭉술한 말로는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욕망의 결이 드러난다. 그들의 분노, 사랑, 슬픔, 열등감, 우울, 허영, 헌신, 상처가 쏟아진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기보다는 헐뜯고 조롱한다. 게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회로부터 배운 건 혐오밖에 없었다. 어느새 혐오는 내면화되었고, 소중한 친구와 연인에게까지 퍼져나갔다. 서로를 진심으로 혐오했기 때문이 아니다. 혐오 없이 대화하는 법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도, 고마운 마음도 가시 돋친 말에 갇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다.


  결국 파티는 어정쩡하게 마무리되고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섹스를 하고, 누군가는 부인에게 돌아가며, 누군가는 '남창'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함께 밥을 먹고, 누군가는 텅 빈 거리로 뛰어간다. 모두가 흩어진다.


  하지만 이들의 흩어짐은 게이의 역설적 연결을 드러내기도 한다. 게이들은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외로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연결된다. 존중받지 못한 채 살아가느라 외롭지만, 그 외로움을 모두가 공유한다는 역설적 연결.


  영화 속 생일파티가 보여주듯,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사실'은 9명의 게이를 묶어주지 못한다. 이들을 위로해주고 엮어주는 건 파티가 끝난 후의 쓸쓸함이다. "행복한 동성애자는 죽은 동성애자뿐이다"라는 마이클의 말을 뒤집고 변화를 모색하려면, '게이의 질병'인 외로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사실'에 기반한 정치학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이제, 두 번째 공통점인 외로움에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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