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2002)
그러나 목축업자에게 초원을 찾아다닐 권리가 있고 나무꾼에게는 벌목을 할 권리가 있듯, 이 노인에겐 들꽃을 즐기는 것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기도 하다.
1962년 처음 출간된 후 수십 년이 지났으니 그녀가 제시한 과학적 근거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읽을 필요는 없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충동적이고 부주의한 활동”이 그간 수많은 변화를 초래했을 테니까. 다만 자연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얼마나 오만한지, 카슨의 간절한 변화 요청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곱씹으며 읽으면 《침묵의 봄》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 그녀의 글은 집요함, 성실함, 꼼꼼함을 갖춘 과학적·문학적 통찰이 가득하다.
린다 리어가 쓴 후기도 인상 깊었다. 《침묵의 봄》에서 살충제가 얼마나 해로운지 적나라하게 고발한 이후, 카슨은 살충제 회사와 그들로부터 돈을 받는 정치인, 보수적인 과학계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맞서 싸울 자원과 힘이 부족했다. 《침묵의 봄》이 결국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이 카슨을 위로해 주지 않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카슨은 책 출간 후 16개월 만에 암으로 사망했다.
카슨은 ‘대중을 위해 글을 쓰는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로 조롱받았다. 과학의 권위는 대중과의 거리에서 확보된다고 여겼던 사람들은 《침묵의 봄》을 과학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여겼다. 의학 전문 평론가인 윌리엄 B. 빈은 “《침묵의 봄》을 읽으면 여성과 논쟁을 벌여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성과는 논쟁을 벌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저열한 말은 카슨이 싸우고자 했던 사회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카슨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논리가 없다고 공격받았다. 과잉 감정, 과잉 낭만, 히스테리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 취급되었다. 어쩌면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 카슨은 '감정'과 '낭만', '히스테리'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실된 연결성을 회복했고, 이를 무기로 삼았으니까.
카슨이 세상을 느꼈던 방식은 ‘합리적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자를 위한 무기이기도 하다. 감정, 낭만,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들은 카슨의 글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감정, 낭만, 히스테리는 틀리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의 삶과 글이 이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