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카를로타 넬손 Carlota NELSON
73min | 스페인 | 2023
▶축제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환희와 신체성의 포착
종종 걷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는데도 그녀는 거침이 없다. 사람들이 한데 바짝 모여 큰 몸짓으로 움직이는 축제의 한복판에,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가에 카메라를 걸치고 주저 없이 들어가는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로데로는 1949년생으로 스페인 출신 사진작가다. 그녀는 주로 지역 축제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다.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을 상상한다면 금물이다. 축제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환희와 신체성을 담아내는 그녀의 사진은 종종 두려울 정도의 활기와 생기를 뿜는다. 대부분의 여성이 가정에 있던 시대에 차를 곧 집이라 생각하며 곳곳을 누빈 그녀의 이야기는 고집스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일의 쾌감을 전한다. 자신을 촬영하는 게 별로라면서도 카메라가 켜지면 쉴 틈 없이 자신의 예술관을 말하기 바쁜 그녀 앞에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또 다른 말은 머쓱해진다.
스나이리 히로시 SUNAIRI Hiroshi
101min | 일본, 미국 | 2023
▶자유롭게 살며 흑인을 사랑한 여자들이 오키나와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그저 ‘매춘부’라 불렀지만 그들은 자유롭게 살며 흑인을 사랑한 여자들이었다. 사진가이자 ‘오키나와 민족주의자’인 이시카와 마오가 그녀 자신 역시 피사체의 일부가 되어 찍은 사진들은 이 여성들의 삶에 낙인 이상의 것이 담겼다는 점을 넉넉하게 증명한다. 이시카와 마오는 자신을 여성이자 사진가, 오키나와인으로 정의하는데 그녀의 교차적 정체성은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립적인 국가를 꾸렸던 오키나와인에게는 일본인에게 점령당했다는 의식이 있고,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통일된 일본’의 일부인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은 흑인과 백인이 각기 다른 곳에서 어울려 놀았다. 그러니까, 여성인 이시카와 미와를 비롯한 오키나와 여성과 흑인 군인들의 만남은 구조화된 차별의 피해자 간 만남인 동시에 제국의 군대와 피식민자의 만남이기도 하다. 이시카와 마오가 사진으로 포착한 이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성이 놀라운 활기와 자유를 뿜는 이유는 그녀의 작가적 역량에 더해 그들이 맺은 친밀한 관계에 다층적 권력 관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시카와 마오는 “미군과 그들의 끔찍한 짓은 싫지만 개별 병사는 사랑한다”는 자신의 말을 사진의 생기로 분명하게 증명한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시카와 마오의 이야기(내레이션) 솜씨도 만만치가 않다. 그녀의 사진, 오키나와의 풍경, 배경음악인 드럼 소리 등과 어우러지는 마오의 이야기에는 굉장한 흡인력이 있어서 오키나와 여성과 흑인 미군이 빚어낸 관계의 깊은 곳에 가 닿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힘을 품은 영화다.
벤 멀린코슨 Ben MULLINKOSSON
95min | 중국, 미국 | 2023
▶퀴어(공간)의 낮과 밤, 그 뒤틀린 연속
중국 청두의 퀴어 클럽 펑키타운과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 영화에는 몇 가지 현격한 대비가 도드라진다. 먼저 허름한 건물과 그 바로 옆에서 공사 중인 커다란 지하철역 공사장의 대비다. 두 번째는 클럽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낮과 밤의 대비다. 전자는 허름하고 보잘것없고 문제투성이인데, 후자는 화려하고 빛이 난다. 카메라는 역 완공과 맞물려 허물리는 클럽과 화려한 밤에는 보이지 않는 ‘문제’ 많은 사람들의 낮을 차근히 담아낸다. 대체로 ‘실패’라고 해도 무방할 이들의 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며 영화는 깊이를 더해가고 마침내 이 실패야말로 화려한 밤의 원동력일 수 있음을 보인다. 미래 ‘없는’ 상태로 빈곤과 수치심의 얼룩이 담긴 눈물을 흘리는 이들에게서 우리는 퀴어와 퀴어 공간의 낮과 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