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 《최서해 단편선-탈출기》(문학과지성사, 2004)
김동인, 《김동인 단편선-감자》(문학과지성사, 2004)
최서해 단편의 주인공은 모두 찢어지게 가난하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최서해는 빈곤이라는 삶의 조건을 시대적 배경(식민 시대, 봉건적 잔재와 근대적 삶의 공존)에 녹여냈다.
최서해 작품의 주인공은 크게 두 부류이다. 첫째는 농촌과 도시의 빈민이다. 제방이 무너져 모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자(<큰물 진 뒤>), 딸을 지주에게 빼앗긴 소작농(<홍염>), 아픈 자식을 치료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어머니(<박돌의 죽음>), 온갖 핍박을 받다 목숨까지 요구받는 머슴(<그믐밤>) 등등. 이들의 이야기는 빈민의 사회적 리얼리티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절대적 빈곤 앞에 전전긍긍하다 파멸·몰락해 버린다. 무기력에 질식한다. 극단적인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자 한다.
둘째는 작가 자신의 자아를 반영한 듯한 빈곤한 식자층이다. 이들은 자신의 현실에 고뇌하거나(<고국>, <먼동이 틀 때>, <무명초>), 계급투쟁을 결심하거나(<탈출기>, <해돋이>, <전아사>), 자신의 속물성(<갈등- 모 지식 계급의 수기>)을 고뇌한다. 가난과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한 후 그 거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물론 빈곤한 소시민들의 삶을 묘사한 작품에도 빈곤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주인공이 있지만, 스스로의 가난과 거리를 두며 내적인 고민을 전개하는 장면은 식자층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컨대, 작가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당대에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빈곤한 지식인이 겪는 내적·사회적 갈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여기에 최서해 작품의 역사성이 있다.
작품을 따라 백 년 전 빈곤의 풍경을 좇다 보면, 빈곤과 존엄한 삶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게 된다. 나아가 빈곤이 어떻게 인간의 정서구조를 변화시키는지, 이로 인해 삶의 지평과 전망이 어떻게 축소되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나는 특히 빈곤이 인간의 정서구조에 야기하는 변화에 몰입하여 최서해의 작품을 읽었다. 빈곤은 울분, 분노, 좌절, 무기력, 원한, 자책 등의 감정을 낳는다. 이는 저항의식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존재능력의 축소이기도 하다.
"가슴에 알지 못할 불쾌할 감정이 울근불근할 제 제 분에 못 겨워"(<기아와 살육>) 지고, "슬픈 운명은 혼자 맡은 듯하며 알지 못할 악이 목구멍까지 바싹" 치민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유복하게 보였"고, 자신이 "그네들보다 몇십 층 떨어져 선 것 같"(<해돋이>)은 느낌이 든다. 모두 가난 때문이다. 가난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정념을 축적시키며, 종국에는 그네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그나마 의식 있는 식자층은 자기 앞가림에 급급하거나 계급의식과 소시민적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기 바쁘다. 간간이 투쟁을 굳건히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와 그의 가족이 마주해야 할 처참한 현실 앞에서 그들의 각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결국 가난·빈곤으로 인해 부정적 정념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흥미로운 점은 최서해 작품이 빈곤의 정서구조를 개인적 차원에서만 다룬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와 공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집단으로서의 빈민 정체성 형성 '이전' 단계일 수도 있고, 빈곤이 집단적 단결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함의일 수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가난이 특정한 정서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최서해의 현대성을 읽었다. 가난한 사람은 파멸할 수도 있고, 미쳐버릴 수도 있으며, 무기력에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 스스로의 빈곤을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 지을 수도 있고, 자신의 속물성에 괴로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부정적인 정념과 밀접하게 얽혀버린다. 가난이 야기한 부정적인 감정·정념을 저항의 토대로 삼는 사람은 극소수며, 대부분은 여기에 휘둘려 버린다. 즉, 가난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방식을 제멋대로 결정해버린다. 감정, 인식의 자율성이 가난 앞에서 극단적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영영 뭉치지 못하고 개별적 차원에서만 끙끙댈 수도 있다(아마도 이것이 가난 통치의 메커니즘일 것이다). 가난이라는 사회적 조건에서 각성한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가난의 감정·정념은 폭력으로 표출될 수도 있고, 변혁의 에너지로 활용될 수도 있다. 모두 최서해가 100년 전에 이야기한 내용이다. 최서해는 높은 수준의 리얼리티로 빈곤의 풍경과 정서구조를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사회가 빈곤 문제를 고민하는 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했다. 가난·빈곤의 문제는 경제적 생존 문제와 더불어 집단적 정서구조의 문제로도 인식해야 한다. 더 '좋은'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