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적인 남자의 시간, '기생하는' 여자의 시간

염상섭, 《삼대》(문학과지성사, 2004)

by rewr

삼대는 3.1 운동을 전후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삼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조의관은 봉건적 세계관을 대표한다. 조상훈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와 끊임없이 갈등한다. 조덕기는 '마르크스 보이'인 병화와 어울리고 때때로 그에게 심정적 동의도 표하지만 일신의 편안함을 버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 주변의 여자들이 있다.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시간관에 초점을 맞춰 《삼대》를 읽었다. 소설에는 여러 시간관이 복합적으로 교차한다. 가장 명확한 것은 덕기의 친구인 마르크스 보이, 병화의 시간이다. 그는 근대적 시간을 산다. 매일 술이나 마시며 한량 같은 삶을 살 뿐이라도, 그는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병화의 시간은 덕기 가문의 시간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병화가 "자네 댁도 인제는 19세기에서 넘어서서 20세기로 들어오게 되네그려?" 하며 농을 건네면, 덕기가 "말하자면 우리 집이 박물학 표본실이라는 말일세그려?" 하고 웃는 식이다.


한편, 조 씨 가문의 시간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조의관은 과거에 머무를 때에만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는다. 그는 '천주쟁이'인 아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손자를 일본으로 유학 보낸 이유도 '사람'노릇, 즉 조상을 모시고 섬기는 일을 열성으로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조의관은 평생 동안 재산을 악착같이 모으고 지켰다. 그의 삶은 재산을 치열하게 불리고 지켜온 과정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말년에 든 의관은 이 재산을 가문의 장래와 자신의 사후를 보장하기 위한 미래의 자원으로 삼는다. 의관의 첩인 수원댁이 3년 상을 치렀을 때에만 재산을 주라고 유언한 것, 제사를 지내지 않을 아들 상훈에게는 조금의 재산만 남기고 대부분의 재산을 손자인 덕기에게 남긴 것 등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조의관은 과거의 화신으로,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다.


조상훈의 질곡의 시간을 산다. 존경받는 교육자·종교인이었던 그는 동료의 딸이자 제자인 경애를 임신시키고도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하다. 자신의 위신이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아버지인 조의관에게는 과거의 유산과 구습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은 첩질과 도박으로 얼룩져있다. 그는 교활한 위선자다. 심지어 그는 의관이 덕기에게 상속한 재산을 훔치려고까지 한다. 타락의 정점이다. 작품 초반에 근대적 삶을 옹호하는 듯 보이는 그는 봉건적 폐습의 화신으로 타락해간다. 상훈은 봉건적 질곡에서 허우적대며 근대인으로의 이행에 철저히 실패한다.


덕기는 친구인 병화, 조부祖父인 의관, 아버지인 상훈의 시간 사이를 부유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독자적인 시간이 없고, 허우적거릴 질곡의 시간도 없다. 덕기는 멀찍이 떨어져 병화의 삶을 관망하고, 조부의 재산이 주는 안온한 삶에 만족하며, 아버지의 타락한 시간(여성편력)을 공유한다.


덕기는 《삼대》의 인물 중 가장 무난하고 온유한 듯 보이나, 스스로의 운명을 주변 환경에 맡겨둘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 어떤 시간에도 자신의 운명을 걸지 못하는 덕기는 필연적으로 소설에서 관찰자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그는 언제나 주변의 사건에 끌려다니며, 결코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타락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찌 됐든, 남자들의 시간은 복합적이다. 이들은 공존과 경합을 반복한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기생하는' 시간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다. 수원댁은 의관의 첩이다. 경애는 상훈의 아이를 낳았지만(상훈의 부인은 따로 있다) 그에게 팽개쳐진 후 병화와 새로이 일을 꾸려나간다(상훈은 부인과 경애 외에도 김의경이라는 젊은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덕기는 경애의 미모에 끌리다가도 병화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의 딸 필순에게 호감을 느낀다. 물론 덕기도 아내가 있다. 덕기는 아버지가 그러했듯, 필순을 그저 자기 삶의 배경으로 삼을 뿐이다.


수원댁, 경애, 의경, 필순, 상훈과 덕기의 아내. 《삼대》의 여성 인물이 남성 인물과 맺는 관계는 복잡하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기생하는' 시간을 살아간다. 그녀들은 남성이 없으면 삶을 꾸려나갈 수 없다. 모든 경제력과 사회적 힘이 남성에게 있기 때문에 그녀들은 필사적으로 남성의 삶에 기생하고자 한다. 그리고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증오한다.


요컨대, 그녀들은 남성 인물들처럼 독자적인 시간을 살아내지 못하며 자기 삶을 꾸려나가지도 못한다. 덕기가 우유부단함으로 스스로를 운명의 타자로 만들었다면, 그녀들은 최대한으로 적극성을 발휘했을 때에야 기생하는 시간에라도 편입될 수 있다. 성별의 차이가 운명의 차이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세계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대적 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남자와 기생하는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여자. 나는 여기서 《삼대》의 현대성을 읽었다. 여자들은 오랫동안 기생하는 시간을 강요받아왔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 속에서 근근이 삶을 꾸려나가기도 했고, 그 '바깥'에서 자기만의 시간과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오기도 했다.


'기생하는' 시간을 강요받아온 여자들의 세계가 완벽히 닫혀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상훈의 첫 번째 첩인 경애는 그의 두 번째 첩인 의경을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동정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내 상훈에 대한 반감이 솟구친다. 의경에게서 "4년 전 자기의 꼴"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애는 의경이 '기생하는' 시간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경애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의 시간이 아닌 집단적인 여자의 시간에 이입하는 순간이다.


《삼대》가 처음 연재된 지 90여 년이 지났다. 남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시간을 살아가고, 여자들은 여전히 기생하는 시간을 강요받는다. 물론 그 강요는 여자들의 저항과 노력으로 많이 헐거워졌고, 경애가 의경에게 느끼는 공감의 폭도 과거와 비할 바 없이 거대해졌다.


이 균열과 공감을 더욱 키워야 한다. 운명을 의탁할 시간의 다양성은 평등의 조건이다. 미래를 강하게 확신하든(병화), 과거에 머무르든(의관), 질곡의 시간에 갇히든(상훈), 심지어 우유부단하게 떠돌든(덕기) 여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다양해져야만 그들 삶의 지평 역시 넓어질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걸 만한 시간이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는 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하는 시간을 강요받는 한, 평등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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