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LT Jul 07. 2020

둥관, 성도(性都, 성의 도시)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5편 중국 여타 도시-11)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중국 여타 도시



11. 둥관, 성도(性都, 성의 도시) 


광저우에서 선전으로 가려면 그 중간에 둥관(東莞)이라는 도시를 거쳐야 한다. 둥관은 한국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진 도시는 아닌 것 같은데, 둥관도 인구 약 850만의 결코 작지 않은 도시로 인구수에서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난징(南京)이나 선양(瀋陽) 유사하다.

 

둥관도 인근 선전, 후이저우처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도입 직후에 수많은 외국계 제조업체들이 일찍부터 들어선 중국 남부의 산업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도시는 산업 도시라는 특징 외에도 또 다른 한 가지로 중국 내에서 매우 유명했는 바로 술집과 밤문화다.


(둥관 술집 관련 기사 및 블로그)

1. http://www.newspim.com/news/view/20140213000461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ukijjang&logNo=130166643180&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중국 대도시의 술집을 한 번이라도 가본 한국인은 술집들의 스케일과 규모에 한 번은 놀라게 된다. 4~5층짜리의 대형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곳도 있을 만큼 매장 규모도 크고,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수십 명의 종업원들이 입구 양쪽에 도열해서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규모나 인원 에서 한국에서는 결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둥관에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그런 술집들이 유난히 많았다. 둥관의 술집들 다른 중국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하고 매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둥관 술집이 그렇게 특이하기로 소문이 나있 보니, 혹 둥관에 가게 되는 사람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라도 둥관 술집은 꼭 한번 방문해 보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 결과 공장들이 가득한 산업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둥관시는 전체 GDP의 적어도 10% 이상이 술집과 성매매 산업에서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었을 정도다.


한편 중국 남부의 산업도시들 중 왜 유독 둥관에만 이처럼 향락산업발달했고, 또 이색적인 둥관만의 술집 문화까지 형성되었는지는 나름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보면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내륙의 오지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동관으로까지 와서 공장에 직했으나 결국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환락가로 빠지게 된 젊은 여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공급 측면의 상황은 중국 남부 선전, 후이저우, 주하이 등 여타 공업도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요 측면에서 보면 둥관은 타 도시들과는 다른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개혁개방 초창기부터 대만, 일본, 홍콩  제조업체들이 유난히 둥관에 많이 밀집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성산업이나 성문화로 보면 대만, 일본, 홍콩 등은 당시 중국보다 훨씬 더 선진국이었다 수 있는데 그 성 선진국의 문화와 시스템이 둥관에 유입되었기 때문에 유독 둥관의 성관련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최근에는 많이 철수했지만 한때 둥관에는 대만의 기업체가 운영하는 공장들6천여 개가 넘었다고 할 만큼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일본이나 대만 기업의 해외 주재원들은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서 단신으로 부임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갑자기 객지에서 외롭게 독신으로 사는 처지가 된 그 많은 대만 그리고 일본 주재원들이 술집에 좀 더 자주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흥업소도 이처럼 주 고객이 대만인과 일본인이다 보니 그들의 취향에 맞게 운영 스타일이 바꾸어서 일반적인 중국의 술집과는 다른 대만이나 일본식 술집 문화가 다분히 혼합된 소위 '둥관식 서비스'라고 하는 독특한 술집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한편 대만인들이야 중국인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의사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둥관에 있던 대만 사람들 중에는 술집에서 자주 만나던 여종업원과 아예 살림을 차려 동거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다. 


대만과 중국 간 직항노선 도입이 처음 검토되던 2005년경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외에 대만 업체들이 다수 밀집해 있던 둥관까지도 대만 직항 노선 개설이 협의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대만에서 항공기로는 불과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너무 가까운 둥관에 대만의 부인이 불시에 찾아올 것이 두려워서 당시 이처럼 둥관에 주재하면서 동거 생활을 하던 대만 남자들이 암암리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서 직항노선 도입이 결국 무산되었다는 농담 같은 얘기까지도 있었을 정도였다.

 

나중에 대만 주재 근무할 때도 직접 목격했었지만, 법인의 공식적인 행사에도 본처가 아닌 다른 젊은 여인을 동반하고 나오는 대만 거래선도 있었다.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한때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퇴폐 이발소도 그 원조는 대만의 이발청(理髮廳)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대만인들의 부부에 대한 개념이나 또 성 개념은 한국인들의 그것보다는 좀  자유스러웠고  결과로써 성 관련 산업에 있어서도 대만이 한국보다는 선진국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영원히 화려하게 존재할 것 같았던 둥관 밤문화도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의존하던 대만 기업들이 중국의 임금 상승을 견디지 못해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하고, 게다또 시진핑(習近平) 이후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하나라는 광둥성(廣東省) 서기 후춘화(胡春華)가 둥관 매춘사업을 청(淸) 나라를 망하게 한 '아편'에까지 비유하면서 2014년 초 '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크게 위축었다 한다.


(둥관, 매춘과의 전쟁 선포)

1.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988

2. https://news.joins.com/article/13914477




나는 둥관을 두 번 방문했었다. 베이징에 근무할 때 둥관에 있는 계열사 공장에 출장을 갔던 일이 한번 있었고, 광저우 법인에 근무할 때 직원들과 함께 판매 현장 방문차 출장 간 적이 있었다. 첫 번째 경우는 너무도 바쁜 일정으로 둥관의 술집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지만 두 번째 경우에동료들과 함께 드디어 말로만 들어왔던 둥관의 술집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역시 익히 들어왔던 그대로 둥관 술집의 규모나 서비스, 독특 등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았고 또 중국 내 다른 도시의 술집과도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북창동에 가보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절감한 적이 있다. 90년대는 내가 근무하던 회사 사무실이 시청 근처에 있었는데, 그 당시에 북창동은 온통 술집들로 가득 차 있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술집 골목이었다. 그런데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2015년경 그곳에 다시 가보니 이제는 술집 흔적은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북창동 골목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90년대 신입사원 시절, 저녁 10시 또 11시에 퇴근을 해도 일주일에 2~3번은 퇴근과 동시에 반 강제적으로 선배들이 북창동의 룸살롱으로 우리들을 끌고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가면 보통 새벽 1~2시까지 선배들에게 잡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렇게 늦게까지 잠 못 자는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수면 부족이 누적돼 정말 만화 같은 얘기지만 다음날 출근해서 회사 화장실 대변기에 앉아 몰래 잠시나마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도 했었다.


(북창동 과거를 소개하는 기사)

https://m.skyedaily.com/news_view.html?ID=15235


나도 술을 좋아하고  마신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 마시면 급격히 졸음이 와서 다른 사람처럼 오래 마시지는 못하는데, 선배들이 함께하는 술자리에 끌려가면 선배들의 강요로 먼저 자리를 뜨지는 못하고 항상 술자리에 잡혀 있어야만 했었다. 그러다 한 번은 역시 선배들이 여느 때처럼 보내주지를 않아서 너무 졸린 나머지 그냥 룸살롱의 소파 위에서  1시간 정도 졸도한 듯이 잠을 자다가 너무도 시끄러운 가라오케 노랫소리에 잠이 깬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는 술집에서 양주를 주문하면 거의 대부분 가짜 양주를 주던 시절이라, 가짜 양주를 마셔서 머리는 깨질 듯 아픈데 소파에 벋어 누워 있는 상태로 어렵게 눈을 떠보니 어떤 여성이 반라의 상태로 벽에 붙어 있는 기둥을 잡고서 천장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술도 덜 깬 비몽사몽간에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순간 헷갈렸는데 정신이 좀 고 보니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 종업원이 팁을 받기 위해서 손님들에게 그러한 기괴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그런 상황을 즐기는 나 포함 우리 일행들이 너무나도 잔인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 같이 술 취한 사람들이 그런 특이한 행동을 보고 팁을 주는 덕분에 그녀가 생계를 유지할 돈을 벌고 있다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서글픈 사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좀 혼란스러웠다.

 

미모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어 외모로는 손님들끌기가 어려운 여인들이 그러한 특이한 행동으로라도 팁을 받아야 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웃고 즐기며 때론 동정하는 그런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그저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가짜 양주로 아픈 머리가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이제 이러한 모습들이 없어졌겠지만,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시간이 더 흐르고, 장소도 서울 북창동에서 중국의 둥관으로 바뀌었지만, 둥관에서도 역시 유사한  잔치가 난무하고 비슷한 구경거리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돌이켜 보면 인간이 사는 사회는 시간과 공간의 괴리와 관계없이 결국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다.




수천 년 전에 신의 심판을 받아서 도시 전체가 불로 완전히 파괴됐다는 소돔과 고모라(Sodom and Gomorrah)라는 도시에는 북창동이나 둥관의 밤문화와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너무도 추악한 성적 문란이 만연했다 한다. 그 결과로 미리 대피한 롯(Lot)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살아 남지 못하고 모두 몰살되는 천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시 전체가 통째로 사라지고 도시 거주민들 전원이 몰살되었음에도,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 퍼져 있었던 인간 특이하고 독특한 DNA는 몸속에 살아남아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수천 년간의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은 사업 중 하나가 매춘사업이라는 말도 있지만 과연 후춘화의 강력한 조치 뿌리 깊은 둥관의 밤문화가 자취를 감추었을지 궁금하다.


(둥관, 매춘과의 전쟁 이후....)

https://m.asiatoday.co.kr/kn/view.php?key=20150129010016940


이전 10화 창사, 마오쩌둥을 만든 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