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1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12. 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1)


중국 한족이 인구의 98%를 점유하고 있는 대만의 역사는 참 안타깝고도 복잡하다. 대만은 현재 중국 영토의 일부일 뿐이라는 중국의 집요하고 끈질긴 주장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가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임에도 국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래 대만은 중국이나 중국인들과는 인종이나 언어, 문화가 전혀 다른 주민들이 살던 섬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만이 이처럼 한족이 가득하고 중국의 소유권 주장 대상으로까지 전락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 배경에는 어떤 사건이 17세기 대만의 역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대만 인구의 대부분이 중국계 주민이다. 하지만 원래 대만에 거주하던 주민은 중국인이 아니라 태평양의 섬이나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과 유사한 말레이-폴리네시아(Malayo-Polynesian) 계통이었다.


(대만 원주민 소개 블로그)

https://blog.naver.com/taiwan_/120165382296


대만인이 원래 사용하던 언어도 역시 중국어와는 전혀 다른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다. 태평양의 섬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다. 비록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긴 했지만 현재도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원래 원주민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주민들은 여전히 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만 원주민 언어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70621173800009?input=1195m


그러다 서구 열강이 동남아시아 또한 중국 등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대만에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등의 유럽인 국가가 순차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먼저 포르투갈 상인들이 대만섬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그 섬을 'Ilha Formosa' 아름다운 섬이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대만섬을 영어로 Formosa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는 배경이다.


그 후 1624년에는 네덜란드가 대만섬 남부 지역에 요새를 건설하고 대만섬 남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2년여 후인 1626년에는 스페인 역시 대만섬 북부에 요새를 건설하고 북부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페인은 네덜란드 공격을 받고 1646년 대만섬에서 축출됐다.


(대만 남부 네덜란드군 요새 Fort Zeelandia)

https://blog.naver.com/leejieun78/221618843904

(대만 북부 스페인군 요새 San Domingo)

https://blog.naver.com/himawari_tw/221581302575


여기까지의 대만 역사는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원주민들과 그리고 식민지배를 위해 대만을 찾아온 유럽인의 역사였다. 즉, 현재는 오키나와라 불리는 인근 유구 왕국(琉球王国), 인도네시아, 필리핀처럼 대만의 역사는 중국과 중국인과는 전혀 별개의 역사였던 것이다.


물론 명나라 말기부터 중국의 남부 지역에서 대만으로 와서 거주하는 중국 한족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또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으로 이주해 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는 싱가포르는 영국,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대만도 대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전술한 것과 같이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지도)

http://blog.daum.net/eosofspring/158


그런데 유럽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에 대거 독립하게 된다.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모두 독립했고, 350년간이나 네덜란드 지배를 받아온 인도네시아 역시 독립을 해서 이들 국가들은 이제는 모두 완전한 독립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처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은 독립할 기회조차도 전혀 갖지 못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의 집요한 압력으로 독립국이면서 독립국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의 국가 아닌 국가로 남아 있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만일에 같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인근의 인도네시아처럼 대만이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계속해서 받아왔다면 2차 대전 직후 대만 역시 인도네시아처럼 독립 국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동남아 국가 모두가 2차 대전 직후 독립했는데 유독 대만만 예외로 남게 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만에는 인도네시아보다는 중국계 주민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중국계의 주민들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의 영토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계 주민이 무려 77%나 되는 싱가포르가 중국령이 아닌 독립국으로서 남아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럼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고, 거주 주민도 그들과 유사하며, 유럽 국가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것까지도 비슷한데, 왜 유독 대만만 독립할 기회가 없었고 오늘날 중국이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라고까지 주장하는 그토록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골치 아픈 문제들에 연루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이라는 한 인물 때문이었다. 이미 망한 명나라 부흥 운동을 했던 그가 중국 본토에서 청나라에 패하면서 도주할 곳으로 하필이면 대만섬을 택했고 그것이 대만섬의 인종과 언어와 역사까지 모두 바꾸어 버리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청나라에 쫓기던 정성공과 무려 2만 5천이나 되던 그의 중국인 병사들은 1661년 대만섬에 상륙해 그 당시 대만을 지배하고 있던 소수의 네덜란드 군대를 물리치고는 1년여 만인 1662년 대만섬을 완전히 정복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섬에 그의 왕조를 세웠다.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인 왕조가 대만 섬에 수립된 것이고, 이것이 대만 섬이 중국인 그리고 중국과 연결되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성공은 대만 정복 후 불과 4개월 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또 그가 수립한 왕조도 그들을 뒤쫓아 대만까지 쫓아온 청나라에 의해 1683년 멸망했다. 즉 정성공은 대만 도착 후 4개월 만에, 그가 세운 왕조 또한 불과 22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멸망하면서 대만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토록 짧았던 대만에서의 정성공의 흔적은 이후의 대만섬 역사에는 너무나도 큰 영향을 끼쳐서 결과적으로는 오늘날 대만섬이 중국의 일부분으로 얽히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정성공을 쫓아 대만에 들어온 청나라는 정성공 왕조를 멸망시킨 후에도 그대로 철수하지 않았고 대만섬을 정식으로 청나라의 행정구역에 편입시킨 후 청나라 영토 일부로 본격 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청나라 이전 명나라는 대만섬을 명나라 행정관할 하에 두고 있지 않았다. 즉, 중국에 대만섬을 통치하는 기구나 세력은 없었고, 대만섬은 네덜란드, 스페인, 대만 주민 자치적으로 통치되던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대만섬이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행정구역에 편입되게 된 셈이다. 정성공이 인근 하이난 섬이나 중국 내륙지역으로 도주하지 않고 하필 대만섬을 자신의 도피처로 택했던 것의 결과였다.


대만의 인구 구조도 이즈음에 급변하게 되었는데, 정성공과 함께 들어온 2만 5천의 중국인도 이미 너무 많은 숫자인데 청나라 영토로 정식 편입된 이후에는 중국인의 대만 유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유입된 중국인들에 밀려서 오래전부터 그 땅에 살던 대만 원주민은 고산지대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원래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주민들의 땅이었던 대만섬이 오늘날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중국인이 총인구의 98%까지 점유하게 되는 완전하게 다른 섬으로 변해버리는 현상이 초래된 것이었다.


대만 원주민은 이제 대만 인구의 약 2% 수준밖에 안된다. 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북미 원주민들이 백인들에 의해 땅을 빼앗긴 이후에 인구 300~400만으로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미국 전체 인구의 불과 1% 수준밖에 안 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정성공의 대만섬 정복 이후에 대만에서도 그대로 발생했던 셈이다.


지나간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성공 군대가 대륙 내에서 청나라 군에 완전하게 패배해서 전쟁이 대륙에서 끝났다면 정성공 군대가 대만섬으로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대만은 인근에 있는 인도네시아처럼 계속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2차 대전 직후 독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중국이 대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애당초부터 없게 되었을 것이란 의미다.


역사가 그러한 방향으로 흘렀다면 오늘날 중국의 압력으로 대만이 국가이면서도 국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해괴한 현상 또한 발생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역사를 주관하는 신은 정성공이 중국 대륙 내부에서 완패하지 않고 대만까지 도주할 시간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정성공을 쫓아 청나라 군이 대만에까지 대거 유입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이후 대만섬이 중국 땅 일부로 그리고 중국인이 가득한 섬으로 변모하게끔 했다.




다음 편 "13. 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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