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법인에 부임해서 근무하다 보니 그 이전의 다른 해외 법인에 근무했을 때와는 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다지 큰 관심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는 내가 미디어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유독 대만에서만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단순한데, 대만에는 내가 법인장으로 부임했었기 때문이다. 즉, 이전 다른 해외 법인 근무 시에는 일반 주재원으로 근무했었지만 대만에는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법인장으로 부임했던것이었다. 그런데 통상 법인이 소재하고 있는 국가 내에서는 법인장이 회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만 미디어에서도 다소간의 관심을 내게보였던 것이었다. 격이 맞는 비교는 아니겠지만 해외의 한국 대사관 수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인 셈이다.
덕분에 본사에서는 그다지 높은 직급도 아니었고 또 수많은 임직원 중 하나로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지만,일개 월급쟁이였던 나도 대만 근무 2년 동안은 인구 2,300만을 상대하는 대만 미디어들의 관심을 받는 과분한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대만에도 꽤 알려진 글로벌 기업이었던 덕분에 그나마 그런 관심을 받을 수 있었지, 만일에 회사가 대만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었다면, 법인이 판매하는 제품들을 대만 사회에 홍보하기 위해서는 맨바닥에서 대만 미디어에 법인을 알리는 활동부터 해야했었을 것이다.
회사 제품을 더 많이 또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의 홍보가 절실한데 대만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고 이러한 홍보 활동을 제대로 수행할 수는없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이러한 중요성을 감안해서 그 당시 대부분의 해외법인들은 제품별 마케팅 조직 이외에 미디어 대응 등 법인 전체 차원의 마케팅 업무를 수행하는 별도의 조직을 법인장 직속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대만 법인 경우도 그랬는데, 타 법인 대비 매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불과 4명이라는 작은 조직으로 운영되기는 했었지만 어쨌든 대만 법인에도 Fanny라는 과장급 인력을 부서 책임자로 하는 Corporate Marketing 부서가 있었다.
이 부서의 업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는 열심히 기사 거리를 만들어서 각 미디어에 법인과 법인의 활동들을 노출시키는 업무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업무를 수행하면서 때로는 법인의 최고 책임자인 법인장이 활용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일반 사원보다는 법인장의 언행에 대해 미디어에서는 좀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기도 별로 없었고 또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잘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던 나는 솔직히 기자와의 빈번한 접촉과 미디어에의 노출이 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법인장으로 부임한 이상 기자들과 만나는 것을 도저히 피할 수는 없었고 또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니 결과적으로 대만 근무 기간 미디어에 적지 않게 노출되기도 했었다.
결국 전혀 내키지 않는 일을 나름대로는 법인 실적 제고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행한다고했던 셈인데 그럼에도 역시 내 천성이 그래서 그런지 법인 주재원들로부터는 법인장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에 부담을 가져서 판매 확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난과 불만도 이따금 들어야 하기도 했다.
Corporate Markeitng 부서에서 법인장도 마케팅 소재로 자주 활용하다 보니 나에 관한 개인적 기사가 대만 언론에 실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래 기사도 그런 기사 중 하나인데, 내용을 보면 업무적인 내용도 일부 있지만 주된 내용은 개인적인 것이 많다. 예를 들면 과거 근무했던 곳이 어디였고, 매일 걸어서 출근하며,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어느 것이고, 현재는 대만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 있다는 등등 평소 내가 법인 직원 대상으로 했던 개인사에 관한 얘기들이 주로 실려있다.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을 마케팅 부서에서 대만인들이 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으로 잘 포장해서 기사 거리로 만들어 언론사에 제공하여 법인을 노출시키는 그런 마케팅 활동을한 결과물인 셈이다.
사진) 2008. 1. 11, 대만 자유시보(自由時報) 기사
그런데 위 기사처럼 평소 내가 실제 했던 말이나 공개돼도 무방한 내용으로 기사가 작성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혀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은 너무도 개인적인 내용들이 마케팅 직원들을 통해 부풀려져서 미디어에 전달되고 기사화까지 되어 나중에 그러한 황당한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는 일도 간혹 있었다.
아래 사진에 있는 기사가 바로 그런 기사 중 하나인데, 기사 내용을 보면 과거 근무지나 법인이 판매하는 제품들에 대한 간략한 언급 등 실제 사실에 근거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기사 후반부에는 내가 김치도 직접 만들어서 먹고, 전지현 같은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며, 결혼할 대만 여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는 전혀 근거 없는 얼토당토않은 너무도 개인적인 내용까지도 함께 실려 있다. 기사 제목도 내 이름을 성부터 이름까지 앞부분에 모두 적어 놓고, '김치 고수인 이 사람이 결혼할 대상을 찾는다'는 것으로써 마치 대만 언론에 내가 공개 구혼을 하는 것처럼 작성되어 있었다.
사진) 2007. 5. 2 대만 경제일보(經濟日報) 기사. 기사 제목이 내가 공개 구혼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서울 본사 홍보팀에서는 해외 미디어에 게재된 회사와 관련되는 주요 기사들을 모아서 사내 이메일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에 있는 임직원들 모두에게 매일 아침 배포했었다. 그리고 사장님을 포함한 대다수 임직원들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 및 판매와 직결될 수도 있는 이 기사 내용들을 꽤 큰 관심을 갖고 읽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 모음 내용 중에 대만 법인장이 대만 언론에 마치 공개 구혼을 한 것 같은 이 기사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필경 나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황당한 기사를 보자마자 무엇보다 먼저 본사 홍보팀에서 오는 그 메일에 이 기사가 포함되어 있는지부터 샅샅이 뒤져가며 확인했다. 그런데 정말로 신이 도우셨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홍보팀 메일에 이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본사 담당자가 이 기사를 보고도 너무 황당해서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기사 자체를 보지 못한 것인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기사가 누락돼 있었던 것만은 확실했고 이 기사 관련해서 본사에서 문의가 오는 일 역시 없었다.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쉰 다음에 도대체 어쩌다 이런 기사가 나오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나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있었다.
사실 전지현과 같은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것은 완전히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전지현(全智賢)이라는 이름의 한자를 중국어로 발음을 하면 '취엔즈시엔'인데, 전 세계(全世界)라는 단어의 중국어 발음인 '취엔스지에'와도 발음이 비슷해 외국인 입장에서는 다소 헛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 '전지현'인지,'전 세계'인지 확실히 발음하라는 농담 같은 말도 몇 번 오간 적이 있는데 그때 마케팅 부서 직원이 전지현 같은 여성 어떠냐 묻길래 당연히 좋다고 답한 적이 있다. 사실 그 정도의 여성 싫다고 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마케팅 부서 직원이 이 말을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있다가, 기자와 함께 기사를 만들 때 이 말까지 포함시켰던 것이었다. 당시 전지현은 대만에서도 꽤 유명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끌 좀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나와 전지현을 연결시켜서 기사화했던 것이었다.
또 내가 결혼할 상대로 대만 여성을 찾는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역시 완전한 허구는 아니었다. 평소 국적에 관계없이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제 갖고 있었고 그래서 직원이 대만에 주재하는 기간 좋은 대만 여성을 만나면 결혼까지도 고려할 수 있냐고 물어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말이 마치 내가 결혼할 대만 여성 찾는데 혈안이 되어 언론에 공개 구혼을 하는 것처럼 과장이 돼서 기사의 제목으로까지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역시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대중과 미디어의 취향을 마케팅 부서에서 고려했던 결과였다.
김치 고수라는 말 또한 그렇다. 김치 만들 줄 아냐고 묻길래 김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어 무를 그저 소금 및 마늘, 고추와 함께 물에 담가만놓으면 되는 간단한 동치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실제 해외에서 동치미가 너무 그리우면 그렇게 만들어서 먹기도 했다고 말했던 것이 김치 고수로까지 과장되어 표현된 것이다. 김치 고수라면 당연히 정통 배추김치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텐데,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김치는 만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만들어 보려고 감히 시도조차 해본 적도 없다.
지금도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는데 결국 Fanny라는 마케팅 부서 책임자가 평소에 내가 했던 말들을 조금씩 과장하거나 미디어 취향에 맞게 조미료를 치듯이 묘하게 왜곡해서 그런 황당한 기사가 대만 언론에까지 나오도록 만든 것이었다.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흥미 있는 기사가 만들어져야 대만 언론에서도 좀 더 쉽게 기사화시켜주고 또 독자들도 흥미를 갖고 읽게 되니 그런 기사를 만드는 것에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사장 격인 법인장까지도 그저 단순한 마케팅 소재로써 적극 활용했던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와 그녀의 마케팅 부서 직원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든 회사와 또회사명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회사 이미지 제고와 제품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법인의 매출과 이익이 제고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결국 법인장을 많이 도와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사실 이 기사가 본사에서 취합해서 전 세계에 배포하는 그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만일 그와 반대의 상황이 발생해서 이 기사가 그 배포 기사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녀에 대한 나의 판단은 솔직히 꽤 많이 달라질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코 그렇게 냉정하고 또 관대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녀를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본사로 귀임하게 되어 아무 판단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미디어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했다. 결국 그래서 댓글 조작이니 뭐니 하는 그러한 정치적 사건까지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파는 우리 같은 제조 업체 입장에서도 역시 미디어는 중요했다. 미디어가 되도록 많이 우리 제품 관련기사들을 노출해주고 또 긍정적으로 기사를 작성해 주면 그만큼 판매에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제품 도입 행사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때가 되면 언론사 기자들만을 접대하는 행사를 이따금 갖기도 했었다.그런 행사 중에 대표적인 행사가 한국의 송년회에 해당하는 '외이야(尾牙)라는 행사다. 이 외이야 행사는 물론 법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도 실시하지만, 언론사 기자들을 모아서 별도의 외이야 행사를 하곤 했었다.
대만에서 외이야 행사는 일 년 중에 가장 큰 파티로 지난 일 년간 고생한 직원이나 외부 인사에게 기업 입장에서 감사를 표시하는 그런 개념의 행사였다. 행사 성격이 그렇다 보니 행사 중에 제공되는 음식도 연중 최고급으로 준비했고 또한 추첨을 통해 전달되는 경품도 꽤 고가의 상품이 준비되기도 했었다. 대만의 대기업 중에는 경품으로 승용차 한 대를 준 기업체도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기업체가 기자들만 별도로 불러 놓고 다수의 고가 선물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송년회를 실시한다면 이상하고 또 김영란 법 위배 등 법적으로까지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대만에서는 이런 외이야 행사는 대만 대다수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실시하는 일반적인 행사였고, 경품으로 제공되는 상품들이 너무나도 비싸거나 행사 중 제공되는 음식이 매우 고가라도 그것들이 문제가 된다고 인식되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대만 법인에서 2년간 근무했지만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외이야는 2007년 행사 한 번밖에 참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2008년 말에는 갑자기 홍콩 법인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2008년 대만 법인외이야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2007년 말 외이야가 내겐 대만에서 참석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외이야였던 셈이다.
바로 아래 사진이 그때 2007년 12월 말에 실시된 외이야 행사 당시의 사진이다. 행사 초반 오프닝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인데 내 좌우측에 계신 분들은 영업 총감님들로서 각각 담당하는 제품이 달랐다. 내 뒤편에 붉은색으로 적혀 있는한자는 '메이티 니엔쫑 외이야(媒體年終尾牙)'로 '미디어 연말 송년회'라는 뜻이다.
사진) 2007년 말 대만 미디어 대상 송년회 모습
이날 외이야 행사에 200여 명도 넘는 많은 대만 기자들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행사 중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법인에서 준비했던 고가의 경품을 받아갈 사람을 추첨하는 그 순간에 참석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기자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다. 공짜로 갑자기 최소한 수십만 원 때로는 수백만 원도 넘는 상품을 받는다는데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되도록 많은 기자들이 이날 경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최소 30~40명이 받아갈 수 있는 경품을 준비했던 것 같은데, 이 사진을 다시 보니 지금도 당시의 행사장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신제품을 도입할 때는 미디어에의 노출을 확대하기 위해 기자들을 초청해서 호텔과 같은 장소에서 신제품 도입 행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회사가 취급하는 제품군들이 10여 개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보니 신제품 도입 행사를 한 제품당 1년에 단 한 번만 해도 10번 정도는 됐다. 결국 거의 매달 기자들을 초대해서 신제품 행사를 했던 셈이다.
신제품 도입 행사를 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항은 현지인들이 알아서 진행했다. 하지만 적어도 행사 시작할 때 인사말과 거래선이나 모델들과 사진을 찍는 일만은 관행상 법인장이 해야 했었다. 다수 앞에 서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나 역시도 대만에서 근무하던 2년간은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은 행사장에 가서 그러한 일을 반복했었다.
아래 사진들은 당시, 그러니까 2007~8년 다양한 신제품들 도입 행사장에 끌려갔을(?) 때의 모습들이다. 도살장에 소 끌려가듯이 끌려가서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읽고, 움직이는 것이 당시 내 역할이었다.
사진) 2007~8년 대만에서 신제품 도입 행사할 때 모습들
이 사진들을 다시 보니 각각의 행사를 할 당시의 특이했던 기억들 또한 새록새록 떠오른다. 위에서 세 번째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고급 의류 브랜드와 공동 마케팅을 하는 행사 사진인데, 사진 속에 내가 입고 있는 양복은 그 의류 회사의 엄청나게 비싼 명품 브랜드 양복이었다.
평생 그렇게 비싼 양복은 단 한 번도 입어 보지도 못했고 또 입을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공동 마케팅하는 명품 브랜드 회사가 반드시 자신들 회사의 양복을 입고 행사장에 나와야 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한벌 사서 입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비쌀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갔지만 실제 매장에 가보니 양복 가격이 정말 미친 가격이었다.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비싼 양복을 꼭 입어야 한다고 우기니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행사를 진행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거금 들여서 한벌 구매했다. 물론 그 매장에서 파는 양복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저렴한 것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사진에서도 그렇게 보이지만 그리 비싼 양복임에도 뭐 특별히 좋아 보이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위에서 두 번째 왼쪽 사진도 사연이 있는데 사진을 보면 내 얼굴이 다소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을 같이 찍은 모델이 꽤 미인이었는데 마케팅 부서의 직원들이 기회를 만들어 줄 테니 단둘이 찍으라고 하도 강요를 해서 사진을 찍기는 찍었지만 너무나도 민망해서 보이는 것처럼 얼굴이 그렇게 상기된 것이었다. 직원들은 내가 그 모델을 좋아해서 얼굴이 상기된 것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미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델 겸 연예인이라는 그녀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은 아니었다.
위에서 세 번째 왼쪽에 있는 사진은 대만 Retailer와의 공동 프로모션 론칭 행사할 때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날은 다소 특이하게 무대 위에 등장하는 방식이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무대 반대편 천장에서부터 마차와 같은 것을 타고 내려오는 방식이라 했다. 그게 그 행사의 핵심 포인트라니 어쩔 수 없이 따라 하기는 했는데, 체육관처럼 높은 천장에 매달린 마차가 무대 반대편에서부터 홀을 가로질러 무대로 내려가는 도중 혹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에 보면 대부분의 행사에 갈색 양복 상의를 입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상의는 캐나다 법인에 근무할 때 토론토의 한 매장에서 구매한 것인데, 중저가의 옷이었음에도 의외로 꽤 튼튼해서 구매 후 7~8년이 지나서 대만에서 행사할 때 저렇게 입고 다녔어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미친 것처럼 비싼 명품 양복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좋았던 것 같다.
대만 이후 홍콩에 부임해서는 현지인 고위급 간부를 채용한 후 미디어 대응 업무도 그들에게 대폭 위임하고 나는 아예 부임 초기부터 이후 5년 반 홍콩 근무하는 기간 내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미디어에 일체 나서지 않았다. 그런 전례가 없으니 처음에는 궁금해하던 홍콩 미디어들도 워낙 완고하게 초기부터 오랜 시간 그런 전략을 밀어붙이니 나중에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는 것처럼, 현지의 미디어 대응도 현지인이 더 잘 이해하고 그만큼 더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홍콩에서 그렇게 해보니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했다. 무엇보다현지 언어로 서로 편하게 소통하는 면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홍콩 근무 이후에는 한국에 귀국했으니 더 이상 미디어에는 노출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미디어에 집중적으로 노출이되던 시절은 약 14년간의 해외 근무 기간 중 대만 법인에서 근무했던 2년이 유일했던 셈이다.
싫건 좋건 내 의사와 관계없이 그 2년간은 무대 위에 올라서 사진 세례를 받으며 대만 미디어와 함께 해야 했다. 그것이 때로는 인생의 화려한 한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내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고 싫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도 이제 과거로 지나갔고,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싫었던 좋았던 그 시간 또한 흘러간 나의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