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13)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13. 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2)


전편 "12. 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1)"에서 이어짐....




하지만 청나라의 대만 섬 지배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1895년에 일본이 강요하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고 대만 영토 전체를 일본에 영구 할양하게 된다. 정성공 왕조를 정복한 후 대만을 청나라의 행정 편제에 편입시킨 지 212년 만에 다시 그 땅의 주권을 일본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이로써 대만은 네덜란드, 정성공 왕조, 청나라에 이어 이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대만 지배 역시 일본의 2차 대전 패전과 함께 1945년에 종결됐다. 50년 만에 대만섬은 또다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일본이 패하자 과거 일본이 지배했던 식민 영토는 승전국의 결정에 따라 각자의 운명이 정해지는 처지가 되었는데 정말 다행히 한반도는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유구 왕국은 한동안 미국의 통치를 받았지만 결국 일본으로 넘겨졌으며, 대만은 독립도 일본 잔류도 아닌 중국 영토가 되었다.


국제 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거해 일본에 영구 할양된 대만은 유구 왕국처럼 일본에 다시 넘겨질 수도 있었겠지만 승전국으로 대접받는 중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만 섬의 운명이 결정된 셈이었다. 어찌 보면 결국엔 정성공이 한번 이어놓은 중국과의 끈질긴 인연의 끈이 다시 대만을 중국과 얽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성공을 또 떠올릴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게 된다. 중국 본토를 통치하고 있었던 장개석이 공산당과의 전쟁에 패해서 1949년 말 수십만의 군대와 함께 정성공처럼 대만으로 도피하여 대만에 국가를 수립한 것이었다. 정성공이 대만으로 도피했던 시점에서 288년 만에 너무나도 유사한 과거 역사가 동일하게 재현된 셈이다.


그런데 만일 장개석이 이때 대만섬으로 도피하지 않았다면 대만섬은 현재 독립 운운할 것조차도 없이 이미 중국 영토 일부가 되어 중국 공산당 통치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대만은 중국 중앙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그 중앙 정부가 장개석의 국민당에서 공산당으로 변경된 바 자연스럽게 대만 섬도 공산당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개석이 대만섬으로 도피했고, 대만섬에 공산당의 중국 중앙 정부와는 별개로 정부를 수립했던 결과 대만섬은 일단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정성공의 대만섬 도피가 대만이 중국과 연결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었다면, 장개석의 대만 도피는 비록 장개석이 의도했던 바는 결코 아니었겠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어쨌든 대만이 공산화된 중국에서 어떠한 형태든 일단은 분리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사실 나는 중국에 주재하면서도 초기에는 정성공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 그러던 중 광저우 법인에 근무할 때 인근의 푸젠성에 출장 가면서 우연히 정성공의 거대한 동상을 보고 그와 그가 만들어낸 대만을 포함한 중국 남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푸젠성(福建省)의 푸저우(福州)와 샤먼(廈門)의 사이에는 췐저우(泉州)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의 인근 고속도로를 지날 때였는데, 차창 밖으로 다핑산(大坪山)이라고 불리는 산이 보였고 그 산 정상을 보니 엄청나게 큰 동상이 보였다. 갑옷을 입고, 한 손을 높이 든 장수가 말 위에 앉아서 전진을 하라는 듯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었는데 동상 높이가 무려 38m라 했다. 이 동상이 바로 정성공의 동상이었던 것이다.


(다핑산 정성공 동상)

http://qz.fjsen.com/2015-08/06/content_16454425_all.htm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그처럼 거대한 규모의 동상이 있는 사실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정성공은 중국에서는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그렇게 괴롭히는 적대 관계에 있는 대만에서도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영웅시되고 있었다. 그가 양국에서 동시에 숭배받는 이유는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던 대만을 외세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의미로써 정성공의 대만 정복을 해석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관은 원래부터 대만섬에 거주를 해왔던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이나 대만은 중국과는 관련이 없으니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다수인 민진당 측 관점보다는, 2차 대전 이후 대만에 들어온 사람이 주축으로 대만도 중국의 일부라고 인식하는 국민당 측 주장에 상당히 치우친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실제 민진당이 집권하고 있는 요즘에는 이런 시각과는 다른 정성공에 대한 재평가도 일부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는데 바로 정성공 역시 네덜란드인과 크게 차이가 없는 외부인의 하나일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었다. 즉, 대만섬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인 정성공이나 유럽인 네덜란드인이나 모두 외세일 뿐이고, 네덜란드인이 원주민에게 고통을 줬던 것만큼 정성공 왕조도 원주민을 학살하는 등 원주민들에게 큰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정성공에 대한 재평가)

※ 기사 후반부 참조

https://www.yna.co.kr/view/AKR20170424095251009?input=1195m

(원주민 정복과 400년간의 차별에 대해 대만 총통 사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07383429?sid=104




그런데 정성공 관련된 재미있는 현상이 또 하나 있다. 그는 일본에서도 역시 영웅 대접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는 그가 순수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며 사실 태어나고 자란 곳도 중국이 아니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에 있는 히라도(平戶)라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쿠마쓰(福松)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리며 7살이 될 때까지 일본인 어머니와 그곳에서 살았다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기에는 대만을 정복했던 최초의 일본인으로 일본 정부는 정성공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다.


정성공이 일본에서 태어나게 된 배경은 명(明) 말기에 중국 남부지역의 거상이었던 정성공의 아버지가 사업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의 어머니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런 결과 정성공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성공이 태어난 직후 그의 아버지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어머니 혼자 일본에 남아 정성공을 키웠으며, 어머니가 재혼한 후에야 정성공의 아버지가 당시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중국 남부 푸젠성(福建省)으로 그를 데려왔다.


중국으로 온 정성공은 명나라가 망해가고 새롭게 청나라가 부상하던 명청(明淸) 교체기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국의 남부 푸젠성 일대를 근거지로 명나라 부흥운동에 참여했고, 한때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난징(南京)에까지 진격해서 청나라 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패전했고 패전 이후에 수만 명의 휘하 군사들과 함께 대만섬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대만에는 장개석이 이끌던 대만의 국민당 지지자들과 같이 중국과 대만은 하나라고 보는 대만인들도 물론 있는 반면에 그와는 정반대로 대만은 중국과는 철저하게 다르다고 믿고, 그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대만인들 또한 적지 않다.


후자의 대만인들은 아예 대만 여권에서 China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까지도 추진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과 연계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대만, 여권에 Taiwan 문구 삽입키로, 2002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125606

(대만, 여권에서 China 문구 완전 삭제 추진, 2020년)

https://www.ajunews.com/view/20200903073429934


대만 원주민과 중국계 이주민 혈통에서 태어난 민진당 출신 현 대만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또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만인 중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 독립된 대만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대만의 독립을 강력히 반대하는 중국과는 지속적인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얽히고설킨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는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대만 독립을 허용한다면 그 자체도 중국에는 타격이지만 그로 인해 티베트, 위구르 등 이민족 거주지역 모두 연쇄적으로 분리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을 것인 바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대만 입장에서도 쯔위 사태에서 봤듯이 정말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중국이 대만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압력을 끊임없이 행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만인들이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으로 대만이 흡수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155년간의 영국 지배를 종결하고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 시민들이 반환 초기와는 다르게 점차 심해지는 중국의 압력에 반발하며 격렬하게 저항을 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는 요즘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홍콩인은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중국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점점 더 격하게만 중국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콩 반중 시위 현장 및 언론 탄압)

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52616552485194

2. https://www.sedaily.com/NewsView/1Z6IXKDWM3


그만큼 한번 민주주의를 경험한 홍콩인이 중국 본토에 있는 중국인처럼 아무런 불만도 없이 공산 독재체제를 수용하는 그런 중국인으로는 되돌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대만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만인들이 공산 독재체제를 수용하고 중국 본토의 중국인들처럼 사는 인생을 자진해서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결국 그만큼 대만과 중국과의 현 문제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가 된다.




자신이 대만으로 도피했던 것으로 인해서 먼 훗날에 중국과 대만 사이에 현재 보는 것과 같은 복잡한 문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정성공 본인도 결코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의도했던 안 했던 결과적으로는 그가 중국 역사의 범위에 대만을 집어넣게 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오늘 우리가 보는 것 같은 양안 문제가 초래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술했던 것처럼 만일에 그가 대만으로 도피하지 않았다면, 대만은 인근 인도네시아와 함께 네덜란드 식민 지배를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후에 인도네시아가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던 것처럼 대만도 역시 독립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공이 굳이 대만 섬을 도피처로 택해 대만에 상륙함으로써 이후 대만 역사는 그와는 전혀 다른 길로 흐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대만섬은 대대로 중국에 얽히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한국 방송에 출연해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으로부터 치열한 공격을 당했던 쯔위라는 당시 16세의 대만 소녀는 방송에 출연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반성문까지 낭독해야만 했다. 다핑산(大坪山) 정상에 엄청나게 커다란 모습으로 서 있는 정성공이 그런 그녀 눈물을 본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궁금하기도 하다.


대만에서 태어났고, 대만에서 성장했으며, 대만의 국기만을 국기로 보고 자란 16살 소녀가 그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사과해야 하는 심정은 어땠을지....


(쯔위 관련 대만 반응)

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9/2016011900329.html

2.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21/2016032101675.html


keyword
팔로워 271
이전 12화정성공이 바꾼 대만 역사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