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11. 타이베이의 '안마'
한국에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으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부지불식간 서서히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 주재로 오랜 기간 한국 밖에서 거주하다 귀국해 보니 10여 년간의 공백 기간 한국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바뀐 것이 꽤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힐링(Healing)', '주민센터', '와인' 등과 같은 용어가 그런 용어인데, '힐링'이라는 용어는 과거에는 일상 대화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라서 조카가 "가족과 주말에 힐링하고 왔다"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동사무소'는 공식적으로 명칭이 '주민센터'로 바뀌었다니 이제는 바뀐 새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 같은 용어는 '포도주'를 그저 영어로 표현한 것일 뿐인데 예전처럼 '포도주'라고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선 초기에 사용이 되었던 용어들이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는 용어들과는 당연히 상당 부분 달랐을 것처럼, 우리 대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도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데 요즘은 잘 사용되지 않는 10년도 넘는 오래전 용어를 불쑥불쑥 사용하니 좀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몇 번 지적(?)을 받은 후 관심을 갖고 주변을 보니, 포도주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다수가 '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러한 용어가 또 있는데 바로 '안마'라는 단어다. 과거에는 '마사지'라고 하기보다는 안마라고 주로 말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안마'라는 단어를 입력해서 검색하면 '안마'보다는 '마사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내용들이 주로 열거된다. 그런데 좀 더 검색을 해 보니 '안마'와 '마사지'는 같은 의미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좀 다른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안마란?)
(안마와 마사지)
어쨌든 요즘은 한국에도 마사지 전문 체인점포도 생기는 등 과거보다는 안마소(또는 마사지 샵)가 좀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나 대만과 같은 중화권에는 한국보다 안마가 훨씬 더 대중화되어 있다. 안마 역사도 오래됐지만 그만큼 안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또 당연히 퇴폐 안마소도 굳이 찾으면 있지만 대부분의 안마소는 그런 곳이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가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런 건전 안마소다.
사실 나는 중국 베이징에 부임할 때까지는 그러니까 나이가 40이 넘도록 안마라는 것은 한 번도 받아 본 경험이 없었다. 과거에는 실제 시각장애인이 안마하는 그런 안마소만 간혹 드물게 있었고, 안마 또는 마사지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보편화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베이징에 주재 발령받으면서 먼저 부임한 동료들이 추천해주는 베이징의 안마소에서 안마를 처음 받아 봤는데 정말 너무 시원했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신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었는데 발 안마도 정말 잊을 수없을 정도로 시원했지만 몸 전체를 안마해 주는 전신 안마는 더 그랬다.
그렇게 한번 안마의 맛을 보고 나니 안마에서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매주 주말에는 거의 예외 없이 단골 안마소에 가서 한두 시간 정도 꼭 안마를 받았는데 그러고 나면 지난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고 또 새로운 일주일을 대처할 힘도 생기는 것 같았다. 가격도 대만이나 중국 경우 안마가 워낙 보편화되어서 그런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해서 비용적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동료 주재원, 심지어 한국에서 온 출장자들도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안마라는 신세계의 맛을 한번 보면은 대부분 나처럼 안마에 빠지게 되다 보니 동료들 간에 안마에도 중독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안마가 무슨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건강에 좋으니, 설령 중독된다 해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시원했던 안마는 척추 상단에서 하단까지 눌러주는 안마였는데, 손이나 팔꿈치로 눌러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안마사가 아예 등 위로 올라가 발로 밟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발로 세게 밟아주는 안마를 받으면 몸 안의 뭔가 뭉치고 막혔던 것이 확 풀리는 것처럼 너무도 시원했다. 글로 그 느낌을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실제 그런 안마를 직접 받아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 시절 매주 그렇게 안마를 받았다. 그리고 광저우에 6개월 출장 갔을 때도 그랬다. 중국 본토에서 근무할 때는 그렇게 항상 매주말 단골 안마소에 안마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다 대만법인 발령을 받아 타이베이로 부임하게 됐는데, 부임 초기에는 경황도 없었고 이런저런 사유로 안마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매주 받던 안마를 받지 못하니 몸 컨디션이 영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주재원들과 함께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는 안마소를 찾아서 몇 군데 다녀보기 시작했다.
처음 찾아간 안마소는 대만의 최고 명문인 대만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안마소였다. 그런데 가 보니 중국에서 다니던 안마소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안마사가 남자는 전혀 없고 모두가 젊은 여성들이었으며 게다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베이징이나 광저우의 단골 안마소 안마사들 경우는 남자도 많았고, 40대 초반까지 나이가 좀 있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었으며 또 남녀 모두 안마하기 편하게 바지를 입고 있던 것과는 꽤 달랐던 것이었다.
설마 아직 안면도 익숙하지가 않은 새로 부임한 법인장에게 퇴폐 안마소를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어쨌든 안마 실력 하나만으로 고객을 끄는 그러한 안마소는 아니었고 뭔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서 고객을 끌어보려는 안마소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일행 3명이 한 방에 같이 들어갔는데, 안마소의 그런 분위기를 보고 다소 당황했지만 안마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옷까지 갈아입고 누워있는 상황이라서 그냥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그대로 안마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안마가 막 시작되자 그 방에 들어온 여성 안마사 한 명이 방안 전등을 갑자기 껐다. 나는 컴컴한 방안이 좀 어색해서 전등을 다시 켜 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녀는 고객인 나의 요구대로 다시 등을 켰다.
그렇게 등이 켜진 상태에서 안마를 받았는데,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안마사 중 한 명이 다시 전등을 좀 끌 수는 없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막 부임한 법인장이라서 어려워서 그랬는지 같이 갔던 주재원 두 명은 별다른 이견이나 설명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내 주장대로 그렇게 환하게 전등을 켠 상태로 안마를 받고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 보니 그 안마소는 결코 퇴폐 안마소는 아니었다. 단지 안마사들이 치마를 입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울러 안마사들이 전등을 끄려고만 했던 것도 치마를 입고 고객 등 위에 올라 발로 허리를 밟기도 해야 했으니 시선이 불편해서 그랬을 뿐인데 그것을 완전히 다른 의도가 내재된 행동으로 오해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외국인 고객의 황당한 요구에 한 시간 내내 치마 입고 몹시 불편한 상황에서 안마를 해야만 했던 안마사분들이 매우 힘들었고 짜증까지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정도 전혀 모르는 바보 같은 외국인이 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안마사들에게 결과적으로 엉뚱한 '갑질'을 했던 셈인데 이제 사과를 전달할 방법이 없겠지만 늦게나마 정말 죄송한 마음이다.
어쨌든 그 안마소의 안마는 중국에서 받곤 했던 안마만큼은 시원하지는 못해 이후 다시 찾아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몇 주 더 흐른 후 중국에서 받았던 그런 안마가 또다시 너무도 그리워 역시 주재원 동료들과 함께 다른 안마소를 추천받아 찾아갔다.
그런데 도착해서 안마를 받아보니 여기는 정말 정체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 안마가 너무도 형편없었다. 복장도 안마사들이 통상 입는 그런 제복이 아니라 모두들 나름대로 멋지게 차려입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타이베이 도심 Westin Hotel 뒤쪽에 있던 안마소였는데, 안마소라는 것을 모르고 들어왔다면 아마 술집에 들어온 것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안마사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부터 헛갈릴 정도의 젊은 여성들이 들어와서 안마를 하는데 이건 안마를 생전에 단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하는 안마 같았다. 기본적으로 며칠 굶은 사람처럼 안마하는 손에는 아예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사진) 난징동루(南京東路)에 있던 Westin Hotel의 모습 (2007. 7월). 현재는 호텔은 폐업하고 건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데 두 번째 갔던 안마소는 이 호텔 뒤에 있었다.
실제 안마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곳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고, 아마 다른 목적을 가진 고객들만 찾아오는 그런 곳이었던 것 같았다. 결국 타이베이 하늘 아래 누워서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애매하고 답답한 시간만 1시간 정도 보내고 이 안마소에서 나왔다.
그런데 사실 대만의 향락산업은 나름 꽤 유명하다. 이전 글 '둥관, 성도(性都, 성의 도시)'에서 중국 남부 도시 둥관이 향락의 도시로 유명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둥관에 대만 제조업체가 유독 많았고 따라서 그만큼 대만인들이 많았던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둥관, 성도(性都, 성의 도시)
타이베이의 안마소도 대다수는 건전한 안마소였지만 퇴폐 안마소도 역시 있었다. 두 번째로 방문했던 Westin Hotel 뒤 안마소가 아마도 그러한 곳이었던 것 같은데 되돌아보면 그런 곳까지 굳이 찾아와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서 그저 한 시간 누워있다 우리가 나갔으니, 안마하는 시늉만 하던 종업원들이 어쩌면 우리보다 더 황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빈랑(檳榔)이라는 열매들을 파는 대만의 빈랑서시(檳榔西施) 역시 매우 유명하다. 빈랑은 빈랑나무의 열매로 일종의 각성효과가 있어 대만이나 동남아에서 간식처럼 씹어 먹는 기호 식품인데, 대만에서는 도로 주변에서 이 빈랑을 파는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만의 빈랑 가게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빈랑 파는 종업원은 항상 젊은 여자였고 또한 입고 있는 복장이 민망할 정도로 노출이 꽤 심하고 선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복장으로 도로의 운전자들과 거리를 오가는 남성들의 관심을 끌어 빈랑을 파는 것이었다. 다만, 있을 법 같기도 하지만 그들이 매춘까지도 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만의 빈랑 파는 여성들)
한때 한국에서도 꽤 유행했던 퇴폐 이발소 또한 그 원조는 대만 '이발청'이라고 한다. 즉, 대만에 가서 그런 이발소를 경험한 한국인들이 한국에 그런 퇴폐 이발소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아래 1999년 신문 기사를 보면 한국에도 대만처럼 성인 전용 '이발청'을 도입하자는 기사도 있을 정도니 나름 타당성이 있는 말로 보인다. 향락 산업에 있어서만은 어찌 보면 대만이 한국보다 선진국이었던 셈이다.
(대만처럼 성인 전용 '이발청' 도입해야)
향락산업 선진국이라고 불릴 만큼이나 대만에 향락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은 일본의 50년 대만 식민지배 시절 대만에 주둔하던 수많은 일본 군인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 근거가 있는 분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침내 난징동루에 있던 정말 제대로 된 안마소를 하나 찾았다. '대도회(大都會)'란 이름의 안마소였는데 구글 거리뷰로 검색해 보니 안마소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안마소 간판은 '경화성(京華城)'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징동루 5단의 단골 안마소 거리뷰)
https://goo.gl/maps/UMMM7dw8pEgp3rVcA
사진) 단골 안마소가 있던 난징동루의 모습. 2007년 10월 28일 일요일 오후 2시경 안마받으러 가면서 찍은 사진인데 안마소는 이곳에서 앞으로 100m도 안 되는 지점에 있었다
이 안마소에서 안마를 받아보니 베이징이나 또 광저우에서 안마받던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시원한 안마를 즐길 수가 있었다.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성 안마사가 내 단골 안마사였는데, 이 분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나중에는 안마하면서 언제나 등의 때도 물수건으로 박박 밀어주곤 했었다. 한국인이 때 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안마사의 안마 자체도 너무 시원했지만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은 손이 잘 닿지 않는 등의 때도 이 안마소에서 밀고 올 수 있었다. 역시 민망한 얘기지만 대만이나 홍콩 같은 곳은 너무도 고온다습해서 항상 때가 적당히 불어 있는 상태라서 아무 때나 때를 밀어도 때가 정말 잘 밀린다.
결국 이 안마소의 신세계에 빠져 타이베이 근무 2년여간은 사시사철 주말에는 이 안마소로 출근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가다 보니 지금도 이 안마소 내부 구조가 사진을 보는 것처럼 기억난다. 찌는 듯한 더운 거리에서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무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계산대와 안마사 대기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쭉 더 들어가서 홀 안쪽 끝에 있는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면 2층이 나온다. 여기가 안마를 받는 장소로 2~3인용 등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중국이나 대만에 근무하면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정말 온몸이 녹는 것 같은 시원한 안마를 받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안마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마라는 신세계를 그렇게 맘껏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대만까지가 끝이었다. 이후 홍콩으로 근무지를 옮긴 후부터는 이제 더 이상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충분히 찾아보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홍콩의 안마는 중국이나 대만과는 달리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결국 5년 반 정도 되는 홍콩 주재기간, 초기에 두세 번 정도 가본 이후에는 홍콩에서 안마소는 단 한 번도 안 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역시 두세 번 정도는 안마소에 갔던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대만에서 받았던 안마만큼 만족하지 못해서 그런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더 가지 않게 되었다.
타이베이가 그리운 이유 중에는 그곳에서 경험했던 너무도 시원했던 안마라는 세계에 대한 기억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