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갑자기 역주행하는 택시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05)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상파울루, 브라질

São Paulo, BRAZIL



5. 갑자기 역주행하는 택시


김포 공항에서 출발해서 하루가 넘는 시간인 약 25시간을 꼬박 이동해서야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선 한국에서 미국까지 약 12시간 정도를 이동해야 했고, 미국의 공항에서 내려서 약 3시간 정도의 환승 과정을 거쳐 브라질행 항공기에 탑승한 또다시 10 시간 정도를 마냥 남쪽으로 내려가니 마침내 목적지 상파울루 땅을 밟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는 20대의 한참 젊은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길고 긴 시간 이코노미석에만 앉아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런지 상파울루 지점 사무실로 들어오니 내 몸의 상태가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좀 어지럽고 헛구역질까지 나오는 처음 겪어보는 증상까지 나타나는 상황이라서 결국에는 지점장에게 그런 몸 상태를 설명하고 지점 사무실 빈 방에 들어가 회의용 테이블 위에 벌렁 드러누운 채 졸도한 것처럼 한동안 그저 누워 있기만 했다. 지점장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상파울루로 바로 오는 본사 출장자들 중에는 그러한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그 시절 브라질 지점은 사무실 안에 일반 사무 공간 외에도 별도로 분리된 방만 해도 5~6개 정도가 있을 정도로 넓은 면적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근무하던 직원은 주재원 지점장 1명과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 1명,2명뿐이었다. 이후 채용을 지속 늘릴 계획이어서 사전에 넓은 공간을 임대했던 것이었는데 그 덕분에 사무실 여기저기에 빈 방도 많던 시절이다 보니 잠시 내가 누워 있을 곳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장시간의 비행과 시차 또 남북 반구(南北半球) 간의 자기장 차이 등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몸에 이상 신호가 몰려왔던 것 같았는데, 다행히 그렇게 졸도한 듯 2~3 시간 정도 누워 있으니 몸은 바로 회복되었다. 한참 젊었던 시절이라 역시 그런 빠른 회복도 가능했던 것 같았다.


요즘은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회사에서 사원에게도 비즈니스석을 허용한다고 하는데 당시는 사원은 대상이 아니었고 오직 임원만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긴 시간을 어쩔 수 없이 이코노미석에 앉아 보내고 몸까지도 상했던 것인데, 사실 그런 장거리 이동의 문제뿐 아니라 남반구와 북반구의 자기장이 서로 다른 것도 때로는 몸 컨디션에 꽤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좀 있고 또 내 경우 역시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출장 때는 아마 자기장 차이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았다.


실제로 요즘은 보기가 어렵지만 과거 CRT Monitor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에는 바로 이 자기장 차이 때문에 북반구에서 사용하던 Monitor를 호주 같은 남반구 국가에서 사용하면 화면이 찌그러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었다.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남반구와 북반구는 자기장 차이가 뚜렷하다는 의미인데 이런 차이가 때론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CRT 모니터 자기장 영향)

https://madeinfinger.tistory.com/416




어쨌든 몸은 다행히 그렇게 회복됐는데 불운하게도 그 사이 다른 더 큰 문제가 터져 있었다. 브라질에서 거래선을 모두 만난 후 지점장과 함께 인접국인 파라과이(Paraguay)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파라과이의 거래선들과 미팅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상파울루에 도착한 바로 그날 파라과이에 갑자기 쿠데타가 발생해서 공항이 졸지에 폐쇄되었다는 것이었다.


(1989년 파라과이 쿠데타)

https://en.wikipedia.org/wiki/1989_Paraguayan_coup_d%27%C3%A9tat


파라과이에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지점 직원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입국은 최종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일정을 급하게 수정해서 그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변경했는데 이후에는 두 번 다시는 파라과이를 방문할 기회가 없어서 당시 방문 기회를 놓친 것을 끝으로 평생 파라과이는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했다.




브라질 수도는 상파울루가 아닌 브라질리아(Brazilia)다. 하지만 브라질리아는 한국의 세종시처럼 브라질 내륙 개발 목적으로 1960년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수도로 지정된 도시였고 실제로는 상파울루가 인구만 1200만 명넘는 최대 도시로 모든 상권, 금융이 집중된 곳이다 보니 브라질 기업체들과 해외 법인들 대다수는 수도 브라질리아가 아닌 상파울루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역시 브라질 지점은 상파울루에 두고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브라질 거래선으로는 CCE, Semp Toshiba, Brasif, Gradiente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CCE가 가장 매출이거래선이었고 따라서 제일 먼저 지점장과 함께 CCE와의 상담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파라과이의 쿠데타 발생에 이어 또 공교롭게도 내가 상파울루에 도착한 하필이면 그때 지점장 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결국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택시를 잡았고 그 택시를 타고서 거래선의 사무실로 한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씨름 선수처럼 너무도 건장했던 그 택시 운전사가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차를 급하게 유턴하더니 우리가 지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서 같이 있던 지점장에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봤는데 택시 기사가 아무런 말 한마디 안 하고 그저 차를 돌렸으니 그 지점장도 당시의 상황을 몰랐던 것은 마찬가지여서 그도 역시 당황한 기색만 역력했고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너무도 놀란 지점장이 포르투갈어로 기사에게 뭔가 질문을 했는데 그 기사여전히 아무 답도 안 하고 그저 전방만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목적지와는 정 반대되는 길로 부지런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가더니 이제는 좀 진정이 됐는지 지점장이 묻는 질문에 마침내 그 택시기사가 답을 했다.


그 기사의 말은 좀 전에 마주 오던 어떤 차가 자신에게 욕을 하고 가서 보복하려고 그 차를 쫓아가던 상황이었는데 결국 놓쳐서 추적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택시 안에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고, 단 한마디 양해나 설명도 없이 욕을 했다는 다른 차 기사에게 보복하기 위해 차를 돌려 쫓아가는 상황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답을 듣고도, 그 지점장이나 나도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기사의 체격이 워낙에 건장했던 데다가 브라질이 치안이 안 좋기로 너무 유명한 곳이라 솔직히 겁이 났던 것이었다.


그때 같이 있었던 지점장은 나중에 우리 회사의 부사장까지 승진해서 상파울루로 다시 돌아가 중남미 전체를 관장하는 총괄 직책을 맡기도 했는데, 총괄이 되어서도 80년대 말에 상파울루 1인 지점의 과장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 겪었던 이 황당한 택시 경험을 간혹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차 타고 가다가 옆으로 오토바이가 다가오기만 해도 차창 너머로 칼을 들이댈까 두려워서 황급히 차량의 창문을 닫는다는 곳이 상파울루였는데, 이러한 해프닝까지 겪고도 별문제 없이 상담을 마치고 무사하게 지점으로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요즘도 치안이 정말 너무도 열악하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는 곳이 상파울루지만, 원래 포르투갈어 Saõ Paulo는 영어로 하면 Saint Paul이라는 뜻으로서, 성경에 등장하는 성인(聖人) 바울(Paul)의 이름이다. 즉 현재의 도시 치안 현실과는 너무도 큰 괴리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래의 도시 이름은 매우 성스러운 의미를 가진 도시였던 셈이다.


(상파울루 치안 문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9726346?sid=104




브라질의 심각한 치안 문제를 당시 내 직장 동료가 출장 중 직접 체험하기도 했었다. 그 동료는 뭔가 사기 위해서 지점 사무실에서 잠깐 나와 근처의 상점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대로와 붙어있는 좁은 골목에서 누가 손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는 별다른 생각 없이 얼떨결에 그 손짓을 하는 사람에게 갔는데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가 칼을 들이대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다 빼앗겼다는 것이었다.


강도가 오라는 손짓을 한다고 자진해서 강도에게 걸어갔던 그 상황이 지나고 나서 들으면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좀 우습기도 하고, 또 실제로 그 동료와 요즘에 만나서도 이 얘기를 다시 할 때는 함께 웃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아마도 거리에서 누가 그렇게 오라고 손짓하면 무심결에 그쪽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어쨌든 돈만 뺏기고 별 탈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사실 그 당시 강도가 눈앞에 칼을 들이대는 그 상황에서는 정말 너무도 놀랐을 것이고 범죄율이 높은 브라질의 현실을 고려하면 실제 위험한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브라질에 가는 출장자들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일정액의 현찰을 지참하고 다니라는 말이었겠는가? 현찰이 없다고 하면 그 보복으로 강도가 바로 칼을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상파울루의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동료는 주머니에 현찰이 있어 그런 봉변은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현찰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긴 지만 말이다....




한편 그 황당한 택시를 타고 가서 만났던 거래선 CCE와의 그날 상담 내용들은 30여 년이 지난 이제는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날 CCE 사무실에서 경험했던 것 중 딱 하나만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바로 CCE 바이어가 준 커피였다.


만나서 인사를 마치고 난 후 커피를 한잔 하겠냐고 묻길래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커피를 한잔 주는데, 웬일인지 정말 소주잔 보다도 작은 컵에 커피를 따라주는 것이었다. 양이 너무나도 적은 그 커피를 보고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판단이 안 됐다.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서 일단 바이어와 지점장이 그 커피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작은 잔의 커피를 한순간 목에 털어 넣듯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잠시 후 또다시 커피를 따라서 같은 방식으로 마시곤 했다. 모습을 보고 그 적은 양의 커피도 결국에는 역시 마시는 용도였다는 것을 이해한 나는 그들을 따라서 동일한 방식으로 마셨는데 웬걸 커피가 정말 독한 한약 덩어리처럼 너무나도 독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마신 그 커피가 바로 '에스프레소'와 유사한 커피였던 것인데, 나는 그런 커피를 그날 생애에 처음으로 봐서 그저 양이 너무 적은 커피라고만 생각했었던 것이었다. 요즘이야 너무나 다양한 커피들이 팔리고 있지만 80년대 말 그 시절만 해도 단순한 다방 커피가 대세였는데 CCE란 브라질의 거래선을 만났던 덕분에 그 이른 시기에도 일찌감치 에스프레소 커피라는 커피의 신세계도 경험할 수 있었던 셈이다.



회사의 상파울루 지점이 있던 지역은 파울리스타(Avenida Paulista)라는 곳으로 번역하면 '상파울루 사람의 거리'란 의미이다. Saõ Paulo라는 도시 이름 뒷부분에 -ista라는 접미사를 붙여서 '사람'이라는 뜻이 된 것이다. 한국의 수도 Seoul에 -ite라는 접미사를 붙여서 만든 단어 Seoulite가 '서울 사람'이 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인 것이다.


(파울리스타 거리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bnulinxinyou/222122188918


이 거리는 브라질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며 외국 영사관들과 많은 외국계 회사들이 밀집되어 있던 지역이었는데 이곳에 있던 다른 것들은 이제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역시 단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바로 너무나 깔끔하고 음식 맛 또한 좋았던 한국식당인데 당시 한국의 대기업 중 하나였던 진로에서 해외 식당 1호점으로 오픈한 '진로 레스토랑'이란 식당이었다.


(진로, 88년 4월 상파울루에 진로 식당 개점)

http://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880409000205


식당은 파울리스타 거리에 있는 28층짜리의 Winston Churchill이라는 빌딩 25층에 있었는데, 음식 맛도 너무나 좋았지만 25층의 고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파울루 시내의 경치도 꽤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글로벌 기업들의 사무실이 몰려 있는 화려한 거리에 걸맞게 식당 면적도 300평 가까이 될 정도로 넓었고 내부 장식도 빼어났었다. 역시 대기업이 운영을 해서 그런지 당시 중남미에 있던 한국식당들이 대부분 꽤 작은 규모였던 것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2~3주나 이어지는 중남미 출장 중에 이 식당에 가서 입에 너무도 맞는 한국 음식을 먹을 때의 기분은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다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고 이곳에서 한번 식사하면 이후 며칠간은 출장지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당시는 중남미에 한국 식당 존재 자체가 매우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바로 이 진로 식당이 새로 생긴 덕분에 정통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데다가 맛도 너무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진로 레스토랑이 있던 Winston Churchill 빌딩)

https://goo.gl/maps/s9m2auX68d749f1G9


이 식당에서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상파울루에 출장 갔을 때 마침 대학 동창회가 있다 해서 지점장과 함께 나도 이 식당에서 개최된 동창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지점장과 나는 스페인어과와 불어과 출신으로 전공 학과는 달랐지만 대학은 같은 대학 출신이라서 함께 동창회에 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창회 모임에 도착해 보니 대략 7명 정도가 참석해 있었는데, 대사관, 영사관, 공기업 그리고 심지어 경쟁사의 지점장까지 전원 모두 스페인어과 출신이었다. 결국 대학교 동창 모임이 브라질 주재 공관과 상사 주재원 모두가 모인 모임과 전혀 차이가 없었던 셈인데 그만큼 당시 중남미에는 우리 학교 스페인어과 출신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유일한 불어과 출신으로 잘 모르는 스페인어과 얘기들에 잘 끼지도 못하고 혼자 앉아 있으려니 나름 꽤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최근 검색을 해 보니 아쉽게도 이 식당은 이미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도 약 30년 전에 후덥지근한 남미 도시 상파울루의 식당에서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던 한국음식과 식당의 시원하고 멋진 모습은 그 시절의 브라질 기억들과 함께 나름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던 시절인 1960년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꽤 많은 한국인이 브라질 바로 옆에 있는 파라과이(Paraguay)로 농업이민을 갔던 것처럼, 일본도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00년대 초반부터 매우 많은 농민들이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그 결과 현재 브라질에는 그들의 후손으로서 약 200만 명의 일본계 인구가 있으며, 브라질은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일본계 인구가 거주하는 국가가 되어 있다.


(한국인의 파라과이 농업 이민 역사)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c9c0ad6ccd0cc758-d55cc778b4e4/globalkorean-09052014144243.html


(일본의 브라질 농업 이민 역사)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A%B3%84_%EB%B8%8C%EB%9D%BC%EC%A7%88%EC%9D%B8


이처럼 일본계 인구가 많다 보니 상파울루에는 일본계 밀집 거주 지역도 있었는데, 미국의 LA에도 'Little Tokyo'라는 일본계 밀집 거주 지역이 있다지만, 내 경험으로는 중국인 밀집 지역 외에 일본인들이 렇게 많이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은 상파울루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브라질의 중국계 이민자가 약 25만 명이라 하는데, 일본계 이민자 수 무려 200여만 명이라 하니 그 엄청난 규모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상파울루 일본 타운)

https://caffeinatedexcursions.com/everything-you-need-to-know-about-liberdade-sao-paulos-bustling-japantown/


한편 일본 타운 지역은 쇼핑할 것도 많고 호텔도 일본계가 운영하는 비교적 안전하고 쾌적한 곳도 있어서 출장을 가게 되면 그 지역에 있는 일본계 호텔에서 숙박을 하거나 일본 상점에서 쇼핑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일본 타운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외모가 우리와 비슷해서 그런지 마치 한국으로 잠시 돌아온 것처럼 뭔가 좀 편안했었던 그런 기억이 있다.


(내가 숙박했던 일본 타운의 Nikkey Hotel)

https://www.tripadvisor.com/LocationPhotoDirectLink-g303631-d311233-i27071705-Nikkey_Palace_Hotel-Sao_Paulo_State_of_Sao_Paulo.html

(호텔 거리뷰)

https://goo.gl/maps/umDyohc4pQCta8LB6




일본계가 그렇게 많아서 그런지 사실 당시 상파울루 지점의 유일한 직원이었던 Annie도 일본계 브라질 사람이었다.


그녀는 브라질에서 태어났고 장했지만 역시 동양인의 가정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다른 브라질인들과는 좀 다르게 동양적 정서도 갖고 있어 대화하기도 좀 더 편했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측면보다는 그녀가 매우 상냥했었고 또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어서 당시 브라질을 담당하고 있었던 본사의 총각 사원들에게는 꽤 인기가 높았었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멋진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브라질 일정을 모두 마치고 출국하기 위해 Annie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갈 때의 기억이다.


영토가 워낙에 넓은 브라질이다 보니 공항에 가는 도로에서 보이는 주변은 그야말로 대평원 같은 모습이었는데 산 하나 보이지 않는 그 평원을 가로질러 갈 때 마침 저 멀리 대평원 끝으로 하늘에서 벼락이 연이어 내려 꽂히는 너무 신기하고 멋진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여러 개의 불기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장관이었는데 넓은 대평원을 보기 어려운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성장한 내게는 그러한 장면은 처음으로 보게 되는 대자연의 너무나 멋지고 웅장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을 계속 보다 보니 다소 감정적이 되기도 했고 뭔가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되기도 했는데, 나중에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은 아마도 바로 내 옆에 미모의 애니가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날 그 대평원에서 벼락이 연달아 내리치던 장관은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도 멋진 모습이었고 브라질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떠오를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브라질은 과거에는 매우 심한 인플레이션을 너무 빈번하게 겪어서 화폐개혁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브라질 화폐개혁이 한참 진행 중이던 시절에 브라질에 출장을 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화폐개혁이 진행 중이라서 그랬는지 도착해 보니 한 종류 화폐가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끄루사도(Cruzado)라 불리는 이전 화폐와 끄루사도 노보(Cruzado Novo)라고 불리는 새로 나온 화폐 두 종류가 동시에 통용되고 있었다.


1000 '끄루사도'가 1 '끄루사도 노보'와 같은 가치를 갖고 있었는데, 어떤 것이 구권이고 어떤 것이 신권인지 너무나 헛갈리기도 하고 또 1, 100, 500, 1000, 5000등 화폐의 단위도 다양해 물건 값을 계산하려면 나처럼 브라질 화폐에 익숙하지 않았던 외국인들은 지불해야 할 금액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폐들을 찾아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결국 돈 지불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때로는 좀 믿을만하다고 느껴지는 호텔이나 식당과 같은 곳에서는 지갑 안의 브라질 화폐를 다 보여 주고서 종업원에게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던 기억도 있다. 한국에서는 1962년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단 한 번의 화폐개혁도 없었는데, 브라질에서는 1960년대 이후에만 8차례 화폐개혁을 했다고 하니 브라질인들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화폐를 보는 것이 나름 꽤 익숙한 일이었던 것 같다.


(시기별 브라질 화폐)

https://m.blog.naver.com/jeong_siyong/222198015946


한편 브라질 환율 변동 또한 꽤 심해서 어떨 때는 숙박비가 너무 비싸 감히 숙박할 엄두도 못 내던 상파울루의 최고급 호텔을 브라질 화폐의 가치가 급락할 때는 또 매우 저렴한 가격에 숙박할 수도 있었다.


그런 최고급 호텔로는 Hyatt 같은 호텔도 있었는데 브라질 화폐가치가 급락했던 시기 이 최고급 호텔에서 한국 여관비 정도 금액만을 지불하고 숙박했던 기억도 있다.


(상파울루 Hyatt 호텔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np524/221164642744




요즘이야 현지에 공장만도 몇 개가 있고, 직원이 수천 명에 달하는 판매법인도 있는 곳이 브라질이지만, 내가 브라질로 출장 다녔던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그 시절에는 그 넓은 브라질에 법인도 아닌 지점만 상파울루에 달랑 하나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지점조차 직원이라곤 주재원 1명과 현지인 1명, 2명이 전부였다.


현재의 위상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말 별 볼일 없었던 시절인데, 그래도 왠지 내게는 그 시절이 그립고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 해외영업을 했었던당시 모습과 선후배, 동료들 모습이 그립다. 아울러 지금과는 달리 한참 젊었을 그 시절 젊은 내 눈에 담겼던 브라질 도시 상파울루의 30여 년 전 모습도 역시 그립기만 하다.


아마도 결코 다시는 그 시절 그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니 더욱 그렇게 그립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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