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Lille 대구탕의 기억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19)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19. 쓰디쓴 Lille 대구탕의 기억


Paris에 있던 대학 동창 및 선후배 유학생 가족들과 프랑스 북부, 벨기에 국경 근처 Lille(릴)이라는 도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Paris의 대학에서 유학하다 학위가 잘 안 풀려서 외롭게 혼자 Lille에 있는 대학으로 옮긴 후 그곳에서 다시 박사학위 취득을 진행 중인 유학생 동창을 위로하고 선후배 간 오랜만에 함께 여행도 할 겸 겸사겸사 떠난 여행이었다.


Lille이 결코 작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Paris보다는 한국인이 훨씬 적어 그만큼 한국식품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는지, 같이 갔던 일행 7~8명 모두 Paris에서 쌀, 라면 등 각종 한국식품 재료들을 잔뜩 사서 선물로 가지고 갔다. 역시 사전에 그들의 얘기를 듣고 한국식품을 사서 가지고 갔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한국식품 재료를 잔뜩 가지고 갔으니, 그 친구 집은 순식간에 한국식품 재료로 꽉 차게 되었는데, 힘들게 객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끼리 그렇게 서로 간에 돕고 또 여행을 통해 함께 친목도 도모하며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니, 비록 같은 유학생 신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끈끈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그 친구는 오랜만에 멀리서 찾아온 그 많은 선후배들 대접한다고, 엄청나게 큰 생선을 어디에선가 구해 왔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회를 떠서 대접한다며 바로 자신이 직접 칼질을 해가며 우리에게 회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그날의 그 회 맛이 특별히 맛있었다는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회 뜬다고 그 큰 생선을 이역만리 프랑스 Lille 하늘 아래서 땀 흘려가며 열심히 칼질하던 그 친구의 모습만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릴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jfrance&logNo=221321836780




Lille의 동창 집에 갔던 일행 중에는 선배 가족이 데려온 한 5~6살 정도 나이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여자 아이였는데,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불어 발음이나 문법이 다른 어른 한국인들과 달리 프랑스 현지인처럼 완벽했었다.


현지인과 차이가 전혀 없는 너무도 완벽한 불어를 구사하는 그 아이와 불어로 제대로 한번 대화해보겠다는 욕심이 불쑥 생겨서, 그 아이에게 불어로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런데 채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잠시 내 불어를 조용히 듣던 그 아이는 표정이 갑자기 마구 일그러지더니, '대구탕'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난 망치로 호되게 맞은 듯한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고,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아이의 엄마는 어른에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심하게 그 아이를 나무랐다. 순진한 어린아이가 내 불어를 듣고 솔직히 느낀 감정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일 뿐인데, 엄마가 너무 심하게 화를 내고 또 그 아이가 혼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오히려 내 입장이 더 민망하고 난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왜 불쑥 '대구탕'이라는 말을 했는지, 또 '대구탕'이라고 말을 했다 한들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갑자기 말한 '대구탕'은 사실 우리가 종종 먹는 생선 대구로 만든 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발음은 한국말의 대구탕과 너무 유사하지만, 불어 Dégoûtant(데구땅)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역겹다' 뭐 이런 뜻이다.


Dé는 '반대, 벗어남'을 의미하는 접두사이며, Goût는 맛을 의미한다. 즉, "맛에서 벗어나 있다", "먹기 역겹다" 이러한 뜻을 가진 단어다. 우리가 포도주를 마실 때, 병을 따고 그 맛을 보는 것을 '구떼(Goûter)'라 하는데, 이 단어도 역시 이 맛이라는 명사 Goût에서 파생된 동사로 "맛을 보다"라는 의미의 불어 단어이다.


포도주 경우는 알코올 도수가 낮기 때문에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면 도수가 높은 위스키 같은 독주와 달리 혹 식초처럼 상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식당에서 그런 포도주를 골라내기 위해 '구떼'하는 관습이 생겼다 한다.


결국 그 아이는 내 불어가 '듣기 역겹다'라고 대놓고 말했던 것이었다. 한국사람들끼리 놀러 와서 모두 한국말로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혼자서 그것도 불어 발음, 문법 모두가 제일 이상한 내가 너무나도 자신 만만하게 자신에게 불어로 말을 걸어오니 그 아이에게도 그것이 도저히 참기가 힘들 정도로 역겨웠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상황은 이미 발생했고, 같이 간 일행 모두 그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속으로는 웃음이 터졌을 텐데 나를 봐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 역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망신스럽기는 했지만 어린아이가 솔직하게 느낀 그대로 심정을 토로한 것을 두고 뭐라고 나무랄 수 있는 상황도 전혀 아니니, 한동안 얼굴만 벌건 상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도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보미쌍(Vomissant), 데궬라스(Dégueulasse) 즉 '구역질 난다', '토할 것 같다' 등 더 강하고, 더 모욕적인 불어 단어도 있었는데, 그나마 그 꼬마가 그 정도까지 잔인한 단어는 채택하지 않고, 그저 '대구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선에서 나름대로 멈춰준 것만으로도 어쩌면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뭐 그렇게 망신은 당했지만, 사실 외국어를 배우려면 당연히 그 정도는 감수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태원이나 동두천 등 미군들이 자주 다니는 술집에 가 보면, 서빙하는 한국인 직원들이 미군과 의사소통을 너무도 잘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곤 했었다.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만을 뽑아서 채용한 것도 분명히 아닐 텐데, 대학에서 영문학 전공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소통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문법이나 규칙 등 복잡한 것 신경 쓰지 않고 단어만 나열하는 식이더라도, 어쨌든 말을 자주, 많이 하고 또 부담 없이 계속하기 때문에 일상 대화 수준의 간단하고 반복적인 대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던 것 같았다.


군 복무 시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 군인 체육대회에 프랑스 군인들 통역으로 차출되어 서울에서 몇 주간 파견 근무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프랑스 군인들과 함께 술 한잔할 기회가 생겨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프랑스 군인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하기를 "너 그렇게 불어 잘하면서, 왜 그동안 못하는 척하고 이상하게 말을 했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는데, 생각해 보니 평소에는 문법, 어휘, 발음 이런저런 것 모두 신경 써서 말을 하려니, 무슨 말을 하려면 그것들 생각하고 정리하느라 머릿속에서 한참 시간이 걸려 대화 중 내 답이 너무 느리게 나오거나 아니면 아예 전혀 안 나오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술 한잔 하고 나니 약간의 취기에 그런 복잡한 것들 다 잊어버리고, 생각나는 대로 좀 틀리더라도 무조건 많이 말을 하게 되니 오히려 의사소통이 더 잘되고 더 알아듣기 쉬워서 그렇게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


한국 사람이 불어와 같은 외국어를 잘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의 천재라도 한국의 초등학생보다 한국말 훨씬 못한다.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자주 듣거나 또 자신이 자주 사용하던 말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어느 외국어든 문법, 규칙 좀 틀리더라도 모국어를 사용하는 빈도만큼 끊임없이 시도해 보고, 반복해 보고 또 계속 말해보면 분명히 보다 빨리 그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 물론 좀 더 어린 나이에 시도하면, 훨씬 더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는 더 좋은 조건이 될 것이다.




Lille에 가서 1박 하고 지내면서 분명 여러 가지 일이 많이 있었을 텐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른 것들은 전혀 기억이 안 나고, Lille 가는 길 도로변에 끝없이 펼쳐진 너무도 노란 유채꽃밭, 그 친구가 회 뜨던 모습, 그리고 6살도 아직 안된 아이에게 대학에서 같이 불어를 전공한 여러 동창 선후배들 바로 앞에서 완전히 개망신당했던 일, 이 세 가지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구탕 발언' 또는 '대구탕 참사'는 이후 동창 사이에도 유명한 술자리 안주거리로 파다하게 소문이 났었는데, 얼마 전 대구탕 맛 집이 많은 서울 삼각지에서 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과 식사하는 중, 그 친구가 갑자기 식당 밖 길 건너 '대구탕'이라는 간판을 가리키면서, 24년 전 Lille에서의 그 '대구탕 참사'를 굳이 다시 끄집어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매우 고마운(?) 경우도 있었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lee128000&logNo=220273122435


내게 큰 상처를 주었던 바로 그 꼬마 숙녀는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20대 후반 나이로 프랑스 명문 그랑제꼴을 졸업한 전도유망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한다.


그 젊은이가 자신이 어린 시절 언급했던 '대구탕'이라는 말 한마디로 너무나 아픈 상처를 받았던 어떤 아저씨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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