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18. 지중해와 태양 (Le plein soleil)
"나무 아래 집(La maison sous les arbres)"이라는 영화 원제목과는 좀 차이가 있는 번역이지만 한국어로는 "파리는 안개에 젖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안개가 가득한 Paris의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 Paris에 와보니 Paris에서는 겨울에 태양을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겨울 내내 날씨가 흐려 일조량이 워낙 적다 보니, 결국에는 건강에까지 이상이 오기도 했는데, 몸이 시름시름 아프고 불편해서 유학생 친구들에게 증상을 호소했더니 겨울에도 해가 많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 경우 Paris에서 첫겨울을 지날 때 일조량 부족으로 그런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했다. 그리고 마그네슘이 함유된 비타민을 먹으면 좋아진다 해서 그걸 먹고증상이 완화되는것도 경험했다.
반면,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 남부 지역은, 정오(正午)라는 뜻을 가진 불어'Le Midi(르 미디)'로 불릴 만큼 일조량이 많다. 이러한 날씨 차이 때문인지, 프랑스의 북부와 남부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많이 다르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질도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언어 역시도 과거 북부 언어는 랑그도일(Langue d’oïl), 남부 언어는 랑그독 (Langue d’oc)이라고 구분되어 불릴 만큼 달랐는데 이런 구분은 Yes라는 뜻의 말을 북부에서는 oïl, 남부에서는 oc라고 다르게 말한 것에서 유래됐다 한다.
같이 프랑스로 온 연수생 중에는 정말 과감하게도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유명한 휴양도시 Nice에 집을 구해서 연수 생활을 하는 동료도 있었다. 내 경우는 괜스레 본사 눈치를 보느라 감히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본사에서 출장으로는 좀처럼 방문할 수 없는 프랑스 남부의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이번 프랑스 연수기간 중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프랑스의 수도로 현지 거래선들의 본사도 많았던 Paris야 나중에 회사 일로 프랑스 출장을 오더라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겠지만, 지중해 연안 프랑스 남부 도시들은 대부분 휴양지나 관광지라 별도로 시간을 내어서 개인적인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업무상 출장으로는 결코 두 번 다시 방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Paris에 있던 연수생 동기 두 명과 함께 약 2주에 걸쳐 세명이 내 차를 번갈아 운전하기로 하고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을 떠나기로했다. 이동하는 경로는 Paris에서 출발하여 생수 볼빅(Volvic)의 수원(水源)으로도 유명한 프랑스 중부 고원 지대(Massif Central)를 거쳐 지중해로 향하는 고속도로 길을 택했다.
그런데 아우토반(Autobahn)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독일의 고속도로는 1995년 당시에는 모두 무료 도로였던 것에 반해, 오또후뜨(Autoroute)라 불리는 프랑스 고속도로는 대부분 유료였다.
유료라는 것은 여행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당연히 단점이지만 사실 좋았던 점도 있었는데 재원이 바로 확보되어 그런지, 프랑스 고속도로의 유지관리 상태는 매우 좋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Paris 인근 지역이 아닌 인적이 꽤 드문 지방 외딴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독일의 아우토반을 유럽의 대표적인 도로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프랑스와 독일의 두 고속도로를 모두 주행해본 내 경험으로는 무제한의 속도를 즐기려는 것이 그 목표가 아니라면, 유료도로인 프랑스의 도로 상태가 독일의 아우토반보다는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았다.
다만 인건비가 비싸 그런지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근무자가전혀 없는 무인 정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신용카드가 없으면 특히 야심한 밤에 근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톨게이트문이 열리지 않아 고속도로를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점은 유의해야 했었다.
프랑스 북부 Paris 인근의 도로가 언제나 번잡했던 것과는 달리, 중부 고원 산악지대에서 남부로 가는 고속도로에는우리가 탄 차 외의 또 다른 차를 보는 것이 매우 귀한 경험일 정도로 차가 없었다. 그렇게 국도도 아닌 고속도로에서 근 한 시간 정도 주행하면서 양방향 어느 쪽에서도 다른 차를 보지 못하니좀 신기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항상 복잡한 서울 도로와 그만큼 복잡한 데다가 비좁기까지 한 Paris의 도로만 주행하고 다니다, 너무나도 한적하고 또 너무나도 잘 포장된 도로를 우리 차만 홀로 주행하다 보니 마치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해서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행성에서 운전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 정도였다.
프랑스 남부로 가는 도중에 외진 산길 도로에서 무임승차를 하려는 젊은, 아니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이는 소녀 두 명을 만나기도 했었다. 인적이 드물고 차도 우리 차 말고는 다른 차가 쉽게 또 올 것 같지도 않은 매우 한적한 산길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어린 소녀 두 명이 남자만 세 명 타고 있는 차에 무임승차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 생소한 상황에 우리는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그런 외딴 산길에서 그녀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우리는 그 예쁘장한 두 명의 소녀를 우리 차에 태워주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들은 자신들은 알제리계 프랑스인이고, 근처 도시에 일이 있어서 가는데 차가 없기 때문에 그 도시에 갈 때는 항상 이렇게 무임승차를 해서 다닌다고 했다.
어린 소녀 두 명이 외딴 산 길에서 생면부지의 남자들이 탄 차에 스스럼없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보니 꽤나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이런 산중에 저런 소녀들이 사는 마을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좀의문이었고, 겁도 없이 너무도 당당히 차를 타는 것 역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또 얼마 전에 Paris에서 20대의 젊은 후배 두 명이 아랍계 택시 기사가 까스총을 쏘는 바람에 바로 졸도해서 돈을 다 털린 채 Paris 북부의 아랍인 밀집 거주 지역에서 발견된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혹시 이 여자들이 강도는 아닌지, 갑자기 칼 또는 권총 같은 것을 꺼내 들이대고 우리 돈이나 차량을 빼앗아 가는 건 아닌지 등등 온갖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들은 고맙다고 말하면서 별일 없이 차에서 내렸다. 결국 잠시나마 마음을 졸였던 우리의 걱정은 싱겁게 끝나버렸고, 그날의 무임승차 건은 아무런 일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프랑스가 그다지 치안이 좋은 곳이 분명히 아님에도 그 소녀들이 산길에서 3명이나 되는 생명부지의 남자들이 탄 차에 무임승차했던 것은 정말 대담하고 어쩌면 분명히 무모한 행동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한편 Paris만이 아니라, 이런 산속의 마을에까지 알제리계 이주민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했는데, 사실 그 소녀들이 스스로 자신을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라고 말할 때까지 우리는 그들이 알제리계 사람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들의 불어는 당연히 여타 프랑스인과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외모 또한 원래의 백인 프랑스인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알제리는 1830년부터 1962년까지 무려 132년간 프랑스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가 알제리를 지배하던 당시 '검은 발'이라는 뜻을 가진 'Pied-Noir(피에 누아르)'라 불리던 프랑스계 백인이 100만 명 이상 알제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다. 그토록 많은 프랑스인들이 100년 이상이나 알제리에 거주했으니 당연히 그들과 알제리인들 간의 혼혈도 많았을 것이고, 그런그들을 외모로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기원전 3세기에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했던 '한니발(Hannibal)' 장군과 그 휘하 수많은 군사들도,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카르타고'라는 국가의 군인들이었다. 2000년이 넘는 그 오래전 과거에도 이미 지중해를 두고 마주하고 있던 아프리카 북부와 유럽 남부 간에는 그만큼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 밀접한 교류만큼 결과적으로 사람도 많이 섞여 그 후손들이 인종적으로 외관상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기는 것 같았다.
사실 1998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까지 받은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 (Zinédine Yazid Zidane)도 전형적인 프랑스인은 아니고, 알제리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하지만 그가 아랍계 이민 2세, 즉 부모 모두가 알제리에서 태어나서 프랑스로 이민 온 혈통상 100% 알제리인이라는 것은 외모만으로는 역시 쉽게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실제로 프랑스에서 마주치게 되는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부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의 외모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유럽인, 특히 남유럽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꽤 많았다.
프랑스 국토 면적이 좀작을 것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실제로는 해외영토를 제외한 프랑스 본토의 면적만도 남한 면적 5배가 넘는다. 그리고 이 말은 그만큼 다양한 풍습과 경치가 프랑스에는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되는데, 실제 여행하면서 접했던 차창 밖 프랑스 중남부의 광활한 대자연 풍광은 북부 Paris 인근 지역에서 보던 것과는 역시 너무도 달랐다.
또 남쪽으로 갈수록 도로 주변에서 점점 더 흔하게 광활한 유채꽃밭도 볼 수 있었는데, 땅 전체가 온통 노란색 꽃으로 뒤덮인 그렇게 넓은 꽃밭은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되돌아보면 그때 차 창 밖으로 구름 한 점도 없는 너무도 파란 하늘과 그 아래 수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진 온통 노란색의 유채꽃밭 사이로 하염없이 운전하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 그러한 경험을 또다시 해 볼 수 있을지....
그렇게 프랑스의 자연을 만끽하며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건물 외관이나 주택 구조가 서서히 바뀌어, 이제 프랑스의 북부와는 그 분위기가 꽤 다른 지중해 연안 프랑스의 남부 지역에 마침내 도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약 2주일간 이 남부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세잔(Cézanne), 고흐(Gogh)등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그림으로만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도시와 마을 공간 구석구석을 직접 체험하기로했다.
그때 방문했던 햇살 가득했던 도시들의 이름은 지금 다시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몽펠리에(Montpellier), 니스(Nice), 에즈(Èze), 깐느(Cannes), 님므(Nîmes),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모나코(Monaco), 아를르(Arles) 등등....
실제 프랑스 남부 지역에 그렇게가 보니, 인상파 화가들이 묘사한 그러한 강렬한 느낌의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무언가 주체하기 어려운 감흥을 나 같은 문외한도 순간순간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담기던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과 감흥을 인상파 화가처럼 한 폭의 그림으로 저장하여 그 감흥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남기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래도 그 천재적인 인상파 화가들이 대신 남겨준 작품들이 있어 그를 통해서 그 감흥을 다시 느낄 수 있으니 그나마 참 감사한 일인 것 같다.
도로변 작은 마을에 있는 나지막한 집 창문 앞, 새빨간 꽃이 피어 있는 화분들이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백발의 노부부 두 분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 너무도 여유로운 표정과 미소와 함께 나른한 오후 햇살 아래 조는 듯 자는 듯 여유를 즐기는 그런 모습은 지금도 잊기 어렵다. 언제 또 그런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을지....
한편 관광지가 아닌 프랑스 남부의 아담한 시골 마을에서는 Paris에서처럼 동양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마을에 들어서면 동네 아이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고 말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어눌한 불어 몇 마디 답을 하면 "어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도 말도 하네"하는 식으로 눈이 동그래지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백인보다는 오히려 다른 인종이 더 많은 Paris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방문했던 다른 도시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작은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니스에서 모나코로 향하는 길에 있는 에즈(Èze)라는 마을이었다. 아름다운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있는 예쁘고 작은 마을이었는데, 현대식 건물은 단 한 채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고대 또는 중세 어느 순간에 시간이 멈춰버린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그런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그런데 그 작은 마을의 주민은 정작 몇 천명도 안된다는데, 워낙 관광지로 유명해서인지 그 인구 몇 배 이상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하루 온종일 그 마을에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역시 너무도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북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그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야기되는 소음 등 공해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처럼, 에즈에도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매일 들이닥치니 마을 사람들이 매우 큰 불편을 겪기도 했을 것 같다. 실제 그래서 그런지 오가다 마주치는 그 마을 주민들은 인근 다른 시골 마을에서 마주치곤 했던 주민들과는 달라서 친절과는 꽤 거리가 먼 사람들 같았다.
마을 경치를 배경으로 우리 일행 세명을 함께 좀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앞에서 걸어오던 그 마을 젊은 남자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 젊은이는 정말 0.1초의 고민도 없이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바로 고개와 손 모두 흔들며 가던 길을 그냥 걸어갔다.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불친절하고 황당한 경우를 이미 여러 차례 겪어 이제 어느 정도 달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거의 자동적으로 부탁을 거절하는 경우를 당해 본 경우는 또 그때가 처음이었던것 같다.
비록 말은 안 했지만, 그 젊은 친구 표정은 동네 걸어 다닐 때 너네 같은 관광객들로부터 그러한 요청을 너무도 자주받다 보니, 이제는 너네들 보기만 해도 넌더리가 난다는 것 같은 그러한 표정이었는데 그처럼 작은 마을이 터질 정도로 바글바글 붐비는 관광객들을 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그 젊은이 입장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지중해가 보이는 그 에즈라는 마을 그 자체 경치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와 보고 싶은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물론 다시 방문하더라도 두 번 다시 그 마을 주민에게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은 할 생각이 없다....
유명한 인상파 화가 세잔(Paul Cézanne)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는 전 세계에서 그림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일본이나 한국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도시에서 그간 간절히 찾았지만 결코 접할 수가 없었던 김치를 우연하게 얻어먹는 매우 큰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사실 Paris를 떠나서 몇 주간 여행하면서 한국 음식을 단 한 번도 못 먹었던 우리는 그즈음 한국 음식 생각이 정말 너무 간절하던 때였다. 하지만 1995년 그 당시는 아직은 프랑스 남부까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던 시절은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리 찾아도 한국 식당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한식과 그나마 가까운 일본 음식을 먹기로 하고 일본 식당을 찾아갔는데, 일본 식당에 도착해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는데 보니, 우리끼리 하는 한국말을 들었는지 반찬처럼 김치가 따라 나왔다.
너무나 반가운 그 김치를 열심히 먹으면서 프랑스 일식집에 김치가 나온 것이 너무 특이해 주인에게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김치를 구했냐고 물으니, 이 도시에 사는 한인 아줌마가 만들어 준다고 했다. 당시 그 도시에 한국 식당이 없으니 아마 어쩌다 한국 여행객이나 유학생들이 우리처럼 간혹 그 일본 식당을 찾아오면 김치를 내놓아 단골손님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김치가 제공되었던 그 일본 식당 덕분에, 여행길 오랜만에 우리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리운 김치를 맛보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봤던 것처럼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는그런단순한 기억이 거의 전부인데, 당시 그 기억을 오로지 두 단어로만 표현한다면 눈이 부실만큼 강렬한 '햇살'과 그 햇살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였던 것 같다.
니노 로타(Nino Rota)의 주제곡으로도 너무 유명한 알랭 들롱(Alain Delon) 주연의 1960년대 고전 영화 "태양은 가득히(Le plein soleil)"를 어린 시절 TV를통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햇살이 가득한 지중해를배경으로 찍어서 그런지 이 영화 역시 지중해의 타오르는 듯 강렬한 햇살과 그 그림자로만 시종일관 화면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은 그런 기억이 있다.
그때 흑백 TV에서는 백색으로만 표현되던 지중해의 찬란한햇살과 반대로 흑색으로 표현된 그림자가 가득했던 프랑스남부아름다운 지중해 연안 도시들은그저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꿈같은 세상이었다. 우리 집뿐 아니라 한국인 거의 전부가 너무도 가난해 그저 먹고살기에만 급급하던 그 시절, 유럽 여행은 감히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후 바로 그 안에 들어가 직접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은 한 번뿐인 인생에있어 정말 너무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주제곡처럼너무도 감미로운 시간이었던것이다.
그 시절 그 공간으로 이제 결코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 그저 한없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