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가 고향인 Paris의 중국인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16)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16. 청주가 고향인 Paris의 중국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중국식당의 대표 메뉴로 서슴없이 꼽을 짜장면은 19세기 말 한국에 들어온 중국 산둥반도(山東半島) 출신 중국인들이 고향의 음식과 비슷하게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그러니 짜장면은 분명히 전통적인 한국 음식은 아니고, 그 뿌리가 중국 산동에 있는 엄연한 중국 음식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짜장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의 입맛, 한국의 실정에 맞게 지속 변형되어, 이제는 원래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작장면(炸醬麵, zhá-jiàng-miàn)과는 너무도 달라졌고, 정작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재료와 맛을 가진 짜장면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중국에 없는 음식이니 당연히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해외의 중국식당에도 그런 음식은 없다. 따라서 해외에 체류하면서 짜장면 맛이 그리워 한국에서 먹곤 했던 그 맛을 기대하고 중국식당에 가서 짜장면을 주문한다면, 번번이 그런 기대는 무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Paris의 변두리 한 곳에 분명히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인데도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같은 한국식 짜장면, 짬뽕, 군만두 등을 파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유학 중인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그리운 그 맛을 즐기러 찾아갔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보니 중국인 사장님이 다소 어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또렷한 한국말로 주문을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한국어를 하시느냐 물었더니 그녀는 부끄러운 듯 살며시 웃으며 충청북도 청주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라고 했다. 프랑스 Paris에서 찾아간 중국인 식당 사장님의 고향이 한국의 충북 청주였던 것이었다.


그녀는 청주에서 태어나서 청주에서 살던 화교인데, 어쩌다 외국에 한번 나갈 일이 있어 출국했더니 이후 다시 한국에 입국하는 것이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흘러 흘러 몇 개국 거쳐 프랑스에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랐으니 화교들이 한국 중국집에서 팔던 한국식 중국음식은 당연히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결국 Paris에 와서도 정통 중국 음식 외에 어린 시절부터 꽤 익숙했었을 짜장면, 짬뽕 같은 한국식 중국 음식을 만들어 한국인 유학생이나 교민 또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팔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해방 이후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부터 화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꽤 오랜 기간 집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국 식당 주인 또한 바로 이러한 정책들 때문에 아마도 재입국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장기간 지속된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많은 화교들이 자의 반 타의 반(自意半他意半)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텐데, 화교가 부(富)를 축적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이런 화교 배척 정책 덕분에, 대다수의 동남아 국가 경우와 달리 다행히 화교 상권이 국가경제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기는 하지만, 당하는 화교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그런 국가 차원 배척 정책은 참으로 화나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화교학교를 졸업한 지인 말에 의하면, 한때 한국의 정부는 유독 짜장면 값만은 철저하게 통제해서, 다른 음식 값이나 물가는 급상승하던 시절에도 짜장면 값만은 상당한 기간 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거 오랜 시간 짜장면 값은 별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짜장면 가격 통제)

https://www.choic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412


정부 차원의 정책뿐만 아니다. 사실 일반 국민들도 화교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나도 어린 시절 여러 차례 사용했던 기억이 있는 '짱깨'나 '짱꼴라'같은 모욕적인 호칭도 역시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지고 과거 한때 흔하게 사용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인구의 2배에서 10배 이상되는 일본이나 중국 같은 이웃나라들의 반복된 침략으로 인해서 누적된 고통의 기억이 오랜 기간 우리의 뼈에 축적되고 녹아들어 우리가 그렇게 배타적이 된 것 아닌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외국인, 특히 가난한 국가의 외국인에 대해서는 유독 배타적이라는 것도 솔직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요즘도 한국에 거주하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여전히 정말 학대에 가까운 언행을 거침없이 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지는데, 그만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특히 대대로 한국에서 살아왔을 중국계 화교들로서는 다른 나라에서 겪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차별을 받는 삶을 살아야만 했었을 것이다.


동남아에서는 물론 북미, 유럽에서도 화교가 정착하게 되면 대대로 그 땅에서 거주하며 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예외인데 정부 차원의 워낙 체계적인 차별을 오랜 기간 받다 보니, 결국 그 많던 한국 내 화교들은 대부분 한국을 떠나 대만이나 중국 본토 등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Paris의 그 중국집 사장처럼 미국, 호주, 프랑스 등 전혀 다른 국가로 떠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6.25 전쟁 이전 8만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남한 화교는 60년대 말에는 4만 명, 2017년 기준으로는 약 2만 명에 불과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다. 남한 인구가 6.25 전쟁 직전의 2천만 수준에서 2017년 기준 5천만 수준으로 2배 이상 증가했던 반면에 같은 기간 화교는 1/4 수준으로 급감한 셈이다.


(한국은 어떻게 화교를 혐오해왔나)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867504.html




그런데 한편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무려 7차례나 집요하게 고구려를 공략해 결국 무너뜨리고 만주 땅과 국민 모두를 뺏아간 수(隨) 나라와 당(唐) 나라, 홍건적(紅巾賊)의 고려 침공, 정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 삼전도의 굴욕, 환향녀(還鄕女), 공녀(貢女), 중국의 6.25 전쟁 개입 등, 천년 간의 역사상 끊임없이 중국에 시달려온 우리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생각해 보면 중국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만일 좋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한족이든 몽고족이든 만주족이든 중국 역대 왕조는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무기로 수천 년간 자신들을 황제라고 스스로 칭하며 끊임없이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거나 억압해 왔던 것은 주지의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 과거 역사 속에서만 그러한 모습을 보여 왔던 것으로 멈춘 것이 결코 아니고, 2차 대전 이후 최근에도 역시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 종교, 외모 등이 중국인과는 너무도 다르며 또 한때는 '위구르 제국'이라는 독립국이었던 중국 영토 서쪽에 있는 동 투르키스탄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 말까지 여러 번 다시 독립을 추진했었으나 번번이 중국의 압력과 공작으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땅은 중국어로 신강(新疆)이라 불리며, 그곳에 주둔하는 수많은 한족 중국군, 중국 경찰에 의해 100만 명 이상 현지 위구르(Uyghur)인이 감금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철저하게 탄압받고 있다


(8세기 위구르 제국 영토)

https://ko.m.wikipedia.org/wiki/%EC%9C%84%EA%B5%AC%EB%A5%B4_%EC%B9%B4%EA%B0%84%EA%B5%AD

(중국의 신강 위구르족 탄압)

https://m.asiatoday.co.kr/kn/view.php?key=20191126010014828

(위구르 대학생 중국에서 실종)

https://amnesty.or.kr/25969/


또 비록 일본의 계책에 의해 수립된 국가지만 2차 대전 기간 독립국이었던 중국 동북쪽 만주족의 국가 만주국도 종전과 함께 독립을 상실하고 중국에 흡수되었다. 만주 땅이 오랜 기간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과 같은 북방민족의 영토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주국 관련 내용)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87206&cid=49340&categoryId=49340


1950년에는 중국 동쪽에 있는 한반도에 수십만에 달하는 군사를 출병시켜 한국의 6.25 전쟁에 개입 결국 한반도를 오늘날까지도 분단국가로 남아있게 하는데 중국은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같은 1950년 중국 서남쪽에 있는 한때 토번(吐蕃)이라고 불리던 독립 왕국 티베트(Tibet)에도 침공하여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

https://m.blog.naver.com/bkm1104/140211854923


또 1979년에는 중국 남쪽에 있는 국가 월남을 침공했다가 베트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자진 철군하기도 했다.


(중국의 베트남 침공)

https://m.blog.naver.com/yschan23/110045436536


남서쪽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와의 국경 분쟁에서 비열한 무기를 사용하여 인도군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고 양국 간의 전쟁 위험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중국군의 못 박은 쇠막대로 인도군 사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292958


바다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인데, 중국은 필리핀, 베트남을 흘쩍 넘어 말레이시아 영토 바로 코 앞에까지 인공 기지를 구축한 후 그 위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놓고 주변의 바다 모두가 중국의 영토라도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해양 영토)

https://m.blog.naver.com/wiznethq/222317877637




중국의 시진핑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자리에서 한반도도 과거 중국 영토였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그만큼 그들의 중국 영토 개념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것 같은데, 결코 생각만 다른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자신들만의 신념과 판단을 근거로 주변국을 침략하는 것에 추호의 머뭇거림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더 섬찟하다.


정말 끔찍한 가정이지만 만일 6.25 전쟁 당시에 중국군이 한반도를 완전히 점령하는 데 성공했더라면, 현재 한국이 티베트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과연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시진핑이 노골적으로 표출한 말처럼 중국인의 사고에는 한국은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중국 영토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 발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1000955?sid=104


물론 주변국 침략의 역사가 꽤 뿌리 깊은 중국, 일본, 독일,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은 한결같이 히틀러가 말했던 것처럼,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했던 것처럼,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침공 시 주장했던 논리처럼, 자국의 생존권과 이익 그리고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직접적 피해자가 돼야만 하는 그들의 주변국들은 참으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역사적으로 이미 너무도 오랜 기간 한국인을 괴롭혀온 중국이 최근에도 여전히 사드(THAAD) 배치나 북한 관계 등 민감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한국의 주권까지 협박하고 위협하는 것 같은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과거의 고압적이고 오만하고 침략적인 본성이 그대로 변치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인이 저지른 '남경 대학살'이 중국인에게 너무도 아픈 기억이라면, 수천 년간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해서 한국인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도 마찬가지로 아픈 기억이다. 그런데, 중국은 자신들이 받았던 피해는 철저하게 기억하고 강조함에도 그와 반대로 자신들이 한국과 같은 주변국이나 현재는 중국 영토가 되어버린 티베트 등의 타민족에 가했던 그리고 현재도 가하고 있는 그 고통에 대해서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기억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옛 기억을 더듬어 더듬더듬 한국말을 하던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인 그 고운 인상의 중국식당 여사장님도 한때 한국에서 '짱개', '짱꼴라'와 같은 비열한 말을 들어가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그런 그녀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나의 마음까지 쓰리기도 했고, 또 솔직히 그 아픔들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을 그토록 괴롭혀 왔고, 6.25 전쟁 개입을 통해 근세에도 민간인, 군인 불문하고 수많은 한국인의 목숨까지 앗아갔음에도 또 다른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처럼 중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 및 현재의 잘못은 추호만큼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여전히 스스로를 대국이라 칭하며 또다시 경제적 군사적으로 한국을 겁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같은 제3 국 수반에게 한국은 원래 중국 영토였다는 헛소리까지 서슴지 않는 중국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발언)

https://m.huffingtonpost.kr/2017/01/05/story_n_13989238.html?utm_id=naver


이런 중국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국가와 그 국가에 속한 적지 않은 '선한 개인들'을 냉정하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을 미워하고 싶지 않고, 또 실제 살아오는 동안 너무도 좋은 중국인, 일본인도 많이 만났었다. 그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중국인과 일본인을 한국인과 구별 없이 좀 더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


중국과 일본의 지도층 그리고 한국의 지도층까지 3국간의 갈등을 조장해 자신들의 정치에 이용하려 하지 말고 이런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도록 좀 더 도와줄 수 있는 지도력과 현명함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독일과 프랑스가 과거의 그 끊질긴 악연을 끊어가며 이제는 EU라는 단일 공동체로 통합해가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에서 쫓겨나서 프랑스의 Paris에서 한국식 짜장면을 팔고 있는 그 중국인 사장님이 잔잔한 미소로 나 같은 한국인을 대해주는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지....

keyword
팔로워 270
이전 15화실패한 장밋빛 인생 (라비앙로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