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동 연가 (29)
■ 이촌동의 공간들 - 5/5
이촌동을 거닐다 보면 인상적인 공간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런 이촌동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 아파트 현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너무도 빈번하게 지나치는 곳이 바로 아파트 현관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런 현관과 주변도 좀 특이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런 느낌이 들었을 때 찍은 사진인데, 어두운 실내와, 투명한 현관 유리 그리고 그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찬란한 햇살과, 녹음 짙은 수목이 뭔가 묘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사진) 이촌 아파트 현관 (2015. 4월)
이 아파트도 2022년 현재 리모델링이 추진되고 있는 바 머지않아 이런 공간의 모습은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모습도 조만간 흘러간 과거의 이촌동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 한여름 저녁 놀이터 냄새
이촌역 3-1번 출구 부근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데 처음 조성된 이후 몇 차례 공사를 해서 구조가 꽤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공사에도 불구하고 놀이터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은 건드리지 않아서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친구들과 저녁에 한잔한 후 전철 타고 집에 올 때는 이촌역 3-1 출구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그때는 항상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치게 된다.
그런데 겨울에야 저녁 시간에 아이들이 없지만 한여름에는 해 떨어진 이후에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여전히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얼큰한 취기 속에 그런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를 보면 어린 시절 이촌동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정신없이 놀기 바빴던 희미한 기억이 나고 또 그때 놀이터에서 느꼈던 한여름 저녁 놀이터 냄새가 다시 코끝으로 스쳐가는 것 같기도 했다.
사진) 이촌역 3-1 출구 앞 놀이터 (2020. 9월)
사진) 70년대 이촌동 놀이터 겸 공터
● 70년대 기억이 멈춰있는 공간
성북구 돈암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촌동으로 이사 와서 신용산 초등학교를 다녔다. 물론 당시의 신용산 초등학교 모습은 지금과는 좀 달랐지만 의외로 여전히 같은 것들도 실제로는 너무도 많다.
우선 위치가 그 자리 그대로고, 또 학교 건물 중 신축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약 50여 년 전 사용되던 그 건물 그대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약 5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그 시절 같이 이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은 거의 모두 이촌동을 떠났다. 유독 나는 여전히 이촌동에 살고 있는데 이촌동에 아직도 남아있다 보니 내가 50여 년 전 졸업한 이 초등학교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나치며 보게 된다.
그럴 때면 70년대 이 학교 교실에서 수업받던 모습, 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던 모습 등 오래전 내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물론 당시 10대였던 과거의 나와, 할배가 된 현재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 학교를 보면서 유년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되새기고 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사진) 신용산 초등학교 교정. 운동장은 꽤 멋진 인조 잔디로 바뀌었지만 사진 속 저 건물은 70년대에도 있던 건물이다. ( 2014. 11월)
사진) 나무로 뒤덮인 교정의 한 공간 (2014. 9월)
사진) 교사 출입구. 70년대에도 아침에 조회가 끝나면 바로 이 출입구를 통해 교실로 돌아가곤 했었다. (2014. 9월)
사진) 70년대에는 이 사진 중앙 위치에 교장 선생님이 조회 때면 올라가서 훈시하시던 연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 (2014. 9월)
사진) 이촌 시장 골목에서 바라본 신용산 초등학교. 보이는 학교 건물이나 주변 시장 건물이나 70년대와 큰 차이가 없다 (2015. 9월)
사진) 너무도 그리운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교정 모습
● 미군 헬기장, 용산 여중, 용강 중학교
신용산 초등학교 바로 뒤편에는 비좁은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학교가 하나 있다, 바로 용강 중학교다. 이 중학교는 현재 남녀 공학이지만 과거 1990년까지는 용산 여중이라 불리던 여학교였다.
한편 1969년 용산 여중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그 자리는 미군 헬기장이었는데 그 헬기장은 용산 여중이 개교한 이후에도 한동안 용산 여중 건물 바로 옆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따라서 그 헬기장에서 불과 약 200여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신용산 초등학교에서는 뜨고 내리는 헬기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으며, 그 소리가 너무도 커서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도 잠시 말씀을 중단하시곤 했었다. 그 후 이 미군 헬기장이 철길 너머로 이전한 이후에는 그나마 극심한 소음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신용산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바로 앞 용산 여중에는 친구 누님들이 많이 다녔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초등학교 여자 동창들이 용산 여중에 많이 다녔다. 그 당시 이촌동에 남자 중학교는 두 개였던 반면 여자 중학교는 이 용산 여중 하나였기 때문에 대다수 여자 동창들이 이 용산 여중으로 배정받았던 것이었다.
그 용산 여중이 남녀 공학이 되면서 용강 중학교로 이름이 바뀐 것인데, 이러한 이유로 현재 용강 중학교는 비록 내가 다닌 학교는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기억들과 추억들이 남아있는 학교다.
그런 감성들이 남아있는 이 학교 앞을 오가던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학교 모습과 또 커다란 뭉게구름 아래 모습이 너무도 멋지게 보여 사진으로 찍어두었던 것이 있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사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용강중학교 (2021.12월)
사진) 흰색 뭉게구름 아래 용강 중학교 모습 (2020. 4월)
미군부대 헬기장이 있던 시절의 용산 여중을 회고하는 70년대 같은 기억을 가진 분의 블로그도 있던데 참고로 링크한다.
(용산 여중을 추억하며)
● 비 오는 날 한강 공원 안 오두막
70년대와 달리 요즘 한강변은 정말 너무도 멋지게 꾸며져 있다. 그 멋진 시설들 중에는 오두막도 하나 있는데, 내게는 이 오두막이 좀 색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바로 비 오는 날 이곳에서 친구와 함께 술 한잔 하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야간에는 한강에서 음주가 금지되던 시절이라 저녁 약 7시경 한잔 하곤 했었다. 이곳에서 한잔할 때 좋았던 점은 첫째 야외이니 코로나 감염 걱정을 좀 덜할 수 있었고, 둘째 비 오는 날에는 한강 공원에 사람이 전혀 없어 너무도 조용한 한강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한강변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또 빗소리 아래 유유히 흐르는 드넓은 한강을 바라보면서 가까운 친구와 술 한잔 하는 맛과 멋은 이 오두막이 주는 낭만 중 하나였다.
사진) 비 오는 날의 한강변 오두막 (2021. 9월)
● 이촌동의 어머님 같은 건물
이촌동은 아니지만 온누리 교회까지 포함하면 이촌동에는 6개의 교회가 있는 것 같다. 반면, 천주교 성당은 한강 성당 단 한 개만 있다.
한강 성당은 1971년에 이촌동 초입에 설립되었고 약 30년 전인 1990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하는데, 아쉽지만 70년대 이 성당이 있던 위치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70년대 역시 동네 초입에 있던 한강 교회는 그 위치가 기억나는데 성당은 다녀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1990년에 완공이 됐다는 현재 천주교 한강 성당 건물은 이촌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이 건물 중 하나가 될 만큼 멋지고 또 의미가 있는 건물이 되었다. 나 역시 길을 걸으며 이 건물을 바라볼 때는 뭔가 좀 숙연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이촌동의 충신 교회나 온누리 교회 건물이 다소 남성적 느낌이라면 한강 성당 건물은 왠지 여성적인 느낌이 좀 더 많이 들어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1990년 완공돼서 30년가량 이촌동과 함께해온 한강 성당 건물은 나름 의미 있고 특색 있는 이촌동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해가 진 이후의 한강 성당 모습 (2015. 2월)
● 독특한 모습의 나무
LG 자이 아파트 109동, 110동 앞 길은 항상 인적이 드물어 꽤 한적한 편이다. 한편 그 거리에는 '사튀로스'라는 카페가 있고 바로 옆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꽤나 특이하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한여름인 8월에도 잎이 그다지 무성하지 않아 나무줄기가 그대로 훤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인적도 정말 드문 이 조용한 거리를 지나치면서 이 특이한 나무와, 나무 옆의 새빨간 사튀로스 출입구 외벽, 그리고 그 벽 옆을 온통 뒤덮고 있는 짙은 담쟁이덩굴을 보면 마치 그림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공간 역시 이촌동을 상징하는 특색 있는 공간 중 하나일 것이다.
사진) 너무도 한적한 LG 자이 109동, 110동 앞 거리 모습 (2020. 7월 및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