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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Sep 25. 2022

이촌동 연가 (30, 종편)

■ 이촌동에서 마주친 순간들

이촌동에서는 멋진 공간뿐 아니라,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순간들도 마주칠 수 있었다.



걸으시고, 뒤에서 대기하시고....


아래 사진은 동네 산책할 때 종종 마주치던 어르신들로, 할머님께서는 지팡이로 걷기 운동을 하시고 바로 그 뒤에서 할아버님께서 휠체어를 들고 따라 가시는 모습이다. 이촌동 거리를 열심히 걷기 운동하시다가 힘이 드시면 추호의 망설임 없이 바로 뒤에 대기하고 있는 이동식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으시면 되는 운동 방식이었다.


사진) 리모델링 공사 중인 현대 맨션 앞 (2022. 1월)


사진) 첼리투스 앞 한우리 공원. (2022. 4월)


처음 이 어르신들을 뵀을 때는 병원에 가시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번 더 자주 마주치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니고 할머님께서 걷기 운동을 하시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분 어르신들은 적어도 80세는 훌쩍 넘어 보이셨는데, 장면을 보면서 비록 두 분의 불타는 청춘과 젊음은 이미 오래전 60~70년대에 영원히 사라져 버렸겠지만, 한평생을 정말 후회 없는 사랑을 하시며 잘 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었고,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이분들처럼 인생 황혼기에 함께 사랑을 나누며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


두 분의 사랑이 너무 부럽고, 더 긴 시간 더 깊고 더 많은 사랑과 축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두 손 꼭 잡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부부가 이촌동 동네 길을 다정하게 나란히 손 잡고 걷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물론 젊은 부부가 손잡고 걷는 모습도 보게 되는 경우가 지만 어르신 부부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런 경우와는 뭔가 좀 많이 다르고 훨씬 더 깊은 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 연세가 되시도록 너무도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왔음에도 여전히 부부가 외출해서도 굳이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을 만큼 서로에게  애틋한 정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럽다. 황혼 이혼이 늘어난다는 현상은 이분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일 뿐인 것 같다.


사진) 우리 마트 앞 길을 나란히 손 잡고 걸으시는 어르신들. 두 분 모두 나머지 한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다.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평생 반려자의 손....(2022. 4월)


사진) 몇 주 뒤 신용산 초등학교 뒷골목에서 마주친 어르신들. 자세히 보니 우리 마트에서 마주쳤던 분들과 같은 분들이 신데, 이번에도 역시 두 손을 꼭 잡고 걷고 계셨다. (2022. 5월)


사진) 이촌 아파트 인근 꿈밭 어린이집 앞을 다정하게 손 잡고 걷는 어르신들 (2015. 10월)


사진) 이촌역 계단을 손 잡고 나란히 올라가시는 어르신들, 인생의 계단길을 함께 해오신 분들이다. (2020. 7월)


사진) 두 분 모두 꽤 젊어 보이셨는데 가까이서 다시 뵈니 70세는 익히 넘어 보이시는 어르신들이었다. 우연히 듣게 된 할아버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2022. 7월)


"당신 기억나? 당신 여권과에 근무할 때, 그때 당신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말 너무 예뻤지.... 내가 그 모습에 한눈에 반해서....." 걸음이 좀 불편해 보이시는 할머님은 아무런 답이 없으셨다....


사진) 이미 성장해서 어른이 되신 따님과 그만큼 연세가 드시면서 이제 등이 굽으신 어머님 (2022. 5월)


요즘은 낮에 동네를 걷다 보면 할머님, 할아버님과 함께 다니는 손주, 손녀를 자주 볼 수 있다. 70~80년대와 달리 부부가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으니 낮에는 어르신들이 손주, 손녀를 보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도 그런 경우인데, 어르신께서 손녀, 손주와 나란히 손 잡고 걷는 모습으로 특히 첫 번째 사진에서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꽤 진지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 세상의 선과 악에 대해서 할머님께서 손녀에게 진지하게 설명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래 사진 속 저 아이들이 성장하면 옆의 어르신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실 것이다. 우리 인생과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데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사진) 할머님과 손녀가 용강 중학교 앞 길을 걸으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2022. 5월)


사진) 충신 유치원 앞 길. 손녀 가방을 들고 함께 유치원 가는 어르신 모습 (2022. 2월)


반면, 홀로 산책하시는 어르신들도 종종 뵐 수 있었는데, 홀로 계신 모습들은 역시 참 쓸쓸하게 보인다.


사진) 산책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 전에는 지팡이가 없었는데 최근에는 지팡이를 짚고 나오시는 경우가 좀 많아지신 것 같다. (2022. 3월)


사진) 첼리투스 옆 한우리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 따뜻한 봄날 햇살 아래 이렇게 걷다 벤치에 앉아 좀 쉬시다 다시 걷곤 하셨다. (2022. 4월)


사진) 충신 유치원 근처에서 마주친 어르신 모습. 저렇게 인도 기둥을 한참 잡고 계셨는데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22. 4월)


사진) 첼리투스 옆 한우리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 너무도 화창한 벚꽃 아래 항상 이렇게 혼자 앉아 계셨다. (2022. 4월)


사진) 혼자 운동을 하시는 어르신인데 운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연세보다 훨씬 정정해 보이셨다. (2022. 5월)


자주 보이시던 어르신께서 언젠가부터 동네 산책길에서 안 보이시면 혹 어디가 아프신 것은 아닌지 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 어르신분들처럼 우리 모두는 누구나 70세, 80세, 90세 되는 나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빠 손 잡고 걷는 순간....


70년대에는 부모님과 함께 어딘가를 가더라도 어린아이가 부모님과 손을 잡고 가는 일은 그다지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아버님 손을 잡고 걷는 경우는 아마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아버님과 아이들이 때로는 정말 친구처럼 즐겁고 정겹게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돌아가신 아버님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참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데, 이촌동에서도 역시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도 그런 경우인데, 두 아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서 춤을 추듯 너무도 즐겁게 이촌역 3-1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사진) 이촌역 3-1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이들 (2015. 6월)


어린아이도 아니고 중학생쯤 돼 보이는, 키가 비슷한 아들과 함께 손 잡고 걷는 부자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아래 사진 속 모습이다.


사진) 부자가 나란히 손 잡고 정겹게 걷는 모습. 아파트 리모델링 시기와 그 기간 중 임시로 이주해야 할 집에 대해 협의 중이었다.... (2022. 6월)



한여름 저녁 붉은 하늘


이촌동에 거주하면서 붉게 노을 진 하늘을 분명 몇 번 봤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으로 남긴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마침 2021년 여름 이촌동 길을 걷다 하늘이 붉게 물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 하나 있다.


사진을 보면 을 끝 부분은 불타는 것처럼 붉은색인데 사진 우측 현대 아파트는 이미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고, 사진 왼쪽 점보 아파트 역시 리모델링 추진 중이라 하니 이 사진 속 모습처럼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이런 풍경은 이제 몇 년만 지나도 영원히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2021년 초가을 저녁 이촌동 하늘 모습이다.


사진) 이촌동 거리에서 만난 저녁노을 (2021. 9월)



포대기와 오랜만에 마주치던 날....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첼리투스 옆 한우리 공원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어린 시절 아주 예전에 봤던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바로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이었다.


요즘이야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 경우 거의 전부가 부모님이 끌고 가는 유모차 안에 있다. 하지만 70년대에는 유모차는 구경하기 어려웠고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가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포대기는 사라지고 유모차가 거리를 점령하게 되었는데, 이날 너무도 오랜만에, 그것도 56층 초고층 아파트 옆에서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가는 사람을 보게 되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 7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또 많이 반갑기도 했다.


사진)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한우리 공원 길을 천천히 걷고 계신 이촌동 주민 (2022. 2월)



집 안 가득 석양이....


물론 중간에 약 10여 년간 해외 주재 근무로 집을 비우기도 했지만 어쨌든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는 이 아파트가 처음 완공될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살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정이 나름 많이 든 집인데, 좁고 보잘것없는 집이지만 아래 사진에 보는 것 같은 장면과 마주칠 때는 참 멋진 집이라는 생각도 가끔은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촌동 소재 아파트 대다수가 리모델링이 추진되는 요즘 상황에서 이 아파트 역시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라 이 집도 그리고 사진 속에 보이는 것 같은 석양이 들어오는 집안 모습도 머지않아서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는 1960년대 말 공무원 아파트가 이촌동에 처음 생기면서 그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의 이촌동을 보게 됐던 것처럼, 그리고 1990년대 그 공무원 아파트들이 대대적으로 재건축되어 역시 또 다른 이촌동 모습으로 재탄생했던 것처럼 2020년대 리모델링 이전과는 또 다른 이촌동 모습과 석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이촌동 하늘 아래 남아 있다면 말이다....


사진) 붉은 석양이 집 안 가득 들어오는 저녁 (2022. 2월)




1970년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이촌동 공무원 아파트로 이사 와서 오늘까지 50년 이상 이촌동에서 살았다. 물론 그 사이 너무 많은 변화가 이촌동에 있었지만 여전히 이촌동은 내 인생 시간의 거의 전부를 보낸 실질적 고향인 셈이다.


그 고향 이촌동이라는 동네에 대한 사라져 가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나름 너무 그리워 '이촌동 연가'란 제목으로 정리해 왔고,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 50여 년의 긴 기억에 대한 회상을 마무리한다.


세월이 계속 더 흐르면 새로운 기억들이 생겨나면서 또 다른 기록들이 생겨날 것이다. 굳이 내 기억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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