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공원은 '한강 고수부지(高水敷地)'라는 요즘과는 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곤 했었다. '한강 물 수위가 높아졌을 때 잠기는 부지'라는 의미였는데 그 당시 한강 고수부지는 현재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 세대가 이촌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 그 시절 한강 주변은 위 80년대 말 기사 내용보다 더 열악해서 모래사장에서 시체를 태우는 장면을 봤다는 친구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한강 고수부지가 언젠가부터 꾸준히 개발되고 발전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전히 변한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이촌동을 언급하면서 바로 앞에 펼쳐있는 그 드넓고 아름다운 한강 공원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즘은 한강 공원에 가보면 선진국 어느 강변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이 과거와 달리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기도 한다. 70~80년대 한강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엄청난 차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최근 한강 공원 이곳저곳의 모습.
그런데 이런 모든 변화는 결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70~80년대 구로공단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공돌이, 공순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묵묵히 젊음을 불살라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일 것이다.
현재의 한강을 여유롭게 즐기는 입장에서는 그분들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노력과 희생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구촌 수많은 후진국 국가의 국민들은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과거와 같은 가난과 문제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촌동 북쪽 경계용산 공원
90년 말 시행된 재건축으로 사라졌지만 한동안 한강 바로 앞에 있던 청탑 아파트에 거주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직접 체험해 보기도했는데 한강 바로 앞에 있는 청탑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한강 경치는 그야말로 한 편의작품이라 표현해야 할 만큼 일품이었다. 요즘도 한강이 보이는 이촌동 아파트에서는 그 경치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강이 전혀 안 보이는 이촌동 반대쪽 끝에서도 그 정도로 멋진 경치를 또 볼 수 있다. 바로드넓고 푸른용산 공원이 바로 눈앞으로내려다보이는 경치다. 이촌동 남쪽에 한강이 있다면 북쪽에는 이 용산 공원이 있는 것이다.
사진) 이촌 아파트에서 보이는 용산 공원 (2021. 9월)
사진) 이촌 아파트에서 보이는 용산 공원 야경 (2016. 8월)
생각해보면 이촌동은 참 축복받은 동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쪽은 드넓은 한강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멋진 공원이 보이니 말이다.... 게다가 양쪽이 강과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공기도 분명그만큼더 좋을 것이다.
물론 용산 공원이 미군부대와 미군 헬기장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천혜의 멋진 조건을 만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영원히 존속될 것만 같았던 용산 미군 기지가 어느 날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될 줄이야....이촌동에게는 정말 신의 한 수 같은 이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멋지기만 한 용산 공원이라는 공간도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쓰라리고 치욕스러운 한국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미군 주둔 훨씬 이전 이미 고려시대부터 한반도를 침략한 몽고군의 기지로 사용됐던 역사가 있고, 이후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번갈아가며 자신들의 군사 기지로 사용했던 과거가 있었다. 주변 외세에 시달리던 한국의 과거 역사가 그 아름다운 용산 공원 숲 속에 깊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 이촌동의 동쪽 끝은 동작 대교다. 그리고 그 동작 대교 아래에는 이촌동과 서빙고동을 연결시켜 주는 지하도가 하나 있다.
신동아 쇼핑센터를 갈 때는 이 지하도를 통해 가는데, 어느 날 하루는 이 길을 걷다 보니 지하도 근처에 광선검 같은 찬란한 햇살이 땅을 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둘러보니 그 햇살은 바로 지하도 위에 있는 동작 대교 좁은 틈 사이로 내리쬐고 있는 햇살이었는데 햇살이 길게 내리쬐는 이 부분이 바로 이촌동의 동쪽 끝 경계선이었다.
사진) 서빙고 연결 지하도에 내리쬐는 햇살 (2021. 6월)
그런데 그동안은 전혀 몰랐던 사실을 이 글을 적으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사진 속 이 지하도를 건너면 곧바로 서빙고동이 나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지하도 반대편은 알고 보니 용산동 6가였고 서빙고동은 신동아 아파트 단지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결국 이촌동과 신동아 아파트 사이에 있는 온누리 교회와 신동아 쇼핑센터는 정확히 말하면 서빙고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용산동 6가에 있는 것이었다
1967년 공무원 아파트와함께 완공되었지만, 공무원 아파트가 90년대 중반 사라진 것과 달리 2022년 현재까지 변함없이 남아있는 이촌동의 오래된 시장이 하나 있다. 바로 이촌 시장이다.
이 시장의 내부 구조는 70년대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 시장의 중심 통행로는 아니지만 시장 내부에는 인적이 드문 비좁은 골목들이 몇 개 있다. 그런 골목들을 지나다 보면 오래전 그 골목을 돌아다니던 기억도 떠오르고 왠지 70~80년대 과거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진) 이촌역 3-1 출구 인근 이촌 시장 골목 모습.
사진) 이촌 시장 안의 비좁은 골목을 비추는 노란색 전등이 무척 복고적인 느낌이다. (2016. 8월)
사진) 또 다른 이촌 시장 뒷골목 모습.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2020. 9월)
사진) 야래향 아래 이촌 시장 골목길 터널. 자전거 뒷부분 틀에는 '고바우 유리'라고 적힌 문구도 보인다. (2022. 2월)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 매일 보시던 일간지에는 항상 고바우 영감이라는 시사 만화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만화도 사라지고 아버님이나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 화백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2022년 현재까지도 '고바우'를 상호로 사용하는 점포가 이촌 시장에는 남아있는 것인데, 오랜만에 '고바우'란 단어를 다시 보니 새삼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