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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Aug 28. 2022

이촌동 연가 (27)

■ 이촌동의 공간들 - 3/5

이촌동을 거닐다 보면 인상적인 공간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런 이촌동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리모델링 이전 충신교회 햇살


5월 아직은 땅기운이 다소 쌀쌀하던 어느 날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나오는 데 교회 앞 작은 공간에 햇살이 가득히 내리쬐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은 교회 앞 붉은색 벽돌담과 그 앞 노란색 의자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그 햇살이 너무 따뜻하고 푸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래 사진이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 충신교회가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이 공간도 이미 꽤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버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공간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많은 것들처럼 이 모습도 이제는 이촌동의 흘러간 역사 속 과거 모습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진) 충신 교회 앞 작은 공간의 햇살 (2017. 5월)



Patio....


발음은 조금씩 다르지만, 영어, 불어, 스페인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단어 중에는 'Patio'란 단어가 있다. 정원, 안뜰 뭐 이런 의미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충신교회 뒤편 이촌 면옥 바로 옆에는 바로 이런 Patio 느낌을 주는 매우 좁고 작은 공간이 있다. 아래 사진이 그 공간 모습이다.


사진) 이촌동 면옥 옆 작은 Patio (2020. 7월)


작고 평범한 공간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공간은 화단, 의자, 대리석 등이 건물 설계 시점부터 나름 세밀하게 의도됐던 것 같다는 느낌을 다분히 받을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저녁 사진 속 저 의자에 앉아 가까운 친구와 커피나 와인 한 잔 하면 정말 그 맛이 오랜 기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인적 없는


다소 의외지만 번잡한 이촌동에도 하루 종일 거의 인적이 없는 그런 거리도 간혹 있는데, 아래 거리바로 그런 거리 중 하나이.


이 거리는 이촌 아파트 110동 뒷길인데, 산책하며 이곳을 매일 다녔지만 오고 가는 차량은 이따금 마주쳤어도 사람과 마주친 적은 정말 거의 없었다. 100미터 가까이나 되는 이 거리는 항상 이렇게 텅 빈 도로 상태로 오직 햇살과 그늘만이 가득한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인구 밀도가 꽤 높은 곳이 서울이고 그중에서도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이촌동은 더할 텐데, 이렇게 인적이 없는 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꽤 새삼스럽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촌동 그 많은 아파트들의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 끝나면 인구의 추가적인 증가와 함께 이런 적막한 공간도 결국은 과거 이촌동의 흘러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진) 이촌 아파트 110동 뒤 거리 모습(2020. 9월)



숲 속 오솔길


이촌동처럼 아파트가 밀집한 곳에 '오솔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이촌동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의외로 그렇게 느껴지는 공간이 있기도 하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 바로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공간인데, 이 길은 대우 아파트 뒤편 용산 쪽 담 근처에 있는 도로로 동네의 구석진 곳들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공간이다.


실제 오솔길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우선 이 길에서 사람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고 또 매우 조용하며 특히 길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저 번잡하기만 할 것 같은 이촌동에도 의외로 70년대 과거 그 시절 느꼈던 것 같은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이 실제로는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진) 대우 아파트 뒤편 조용한 길 (2020. 8월)



붉은색 담


이촌동에는 붉은색 벽돌이나 그저 붉은색으로 도색된 건물도 꽤 있다. 예를 들면 카페 뉴오리진이나 사튀로스 또 우리 마트 뒤편 농업 기술자 협회 같은 건물들이다.


건물뿐만 아니라 온통 붉은 담도 몇 곳에 있는데 그중에는 유독 인상적인 담도 있다.


첫 번째는 동부 센트레빌 옆 정우맨션 담이다. 이 담은 벽돌들을 어긋나게 쌓아 올려서 벽돌들 공간 사이로 아파트 내부가 보이게 되어있다. 정우맨션이 1972년에 완공이 된 아파트이니 이미 반백년이 된 아파트인데 그 오랜 세월을 이 벽돌들은 아파트와 함께 버텨온 셈이다. 이 벽돌 사이로 보이는 아파트 마당을 바라보면 그 반백년의 세월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 붉은 벽돌로 된 정우 맨션 담 (2020. 9월)


두 번째는 구 이촌 파출소 뒤편에 있는 꿈나무 어린이 공원의 담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관심을 갖고 보면 이 담은 나름 꽤 특이한 디자인이다. 벽을 온통 붉은색으로 칠한 것도 특이하지만 작은 사각형 구멍이 담 전체에 뚫려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아마 애당초 담을 디자인할 때 너무 평범하기만 한 담 모습에서 벗어나자는 어떤 의도가 있었고, 그런 의도가 이런 모양과 색상의 담을 탄생시키게 된 것 같다.


사진) 붉은색 담 위로 햇살이 가득한 꿈나무 어린이 공원 (2021. 2월)



평안과 나무가 함께 하는 길


한강 성당 앞 길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어우러져 한여름에는 정말 멋진 녹음과 그늘을 즐길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그 녹음 아래로 어르신 두 분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인데, 정말 친한 친구나 자매처럼 보였다.


사진) 한강 성당 앞 길을 걷는 어르신들 (2020. 5월)


한편 한분은 다리가 다소 불편하신지 지팡이를 짚고 계셨고 또 다른 한분은 손주를 보시는지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갔을 때 자세히 보니 유모차는 텅 빈 상태였다. 손주를 태우고 유모차를 끌고 가시던 것이 아니라,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서 걷고 계셨던 것이었다.  


결국 두 분 모두 다 지팡이를 짚으며 성당 뒷길을 평안한 모습으로 걷고 계셨던 것인데 지팡이 모양이 달랐던 셈이다.


나이 들어서도 서로 그렇게 가까이 의지하고 대화를 나누며 초여름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으니 그 또한 나름 작지 않은 축복인 것 같았다. 모두가 언젠가는 저렇게 지팡이 짚고 걸을 때가 올 것인데 그때 과연 내 옆에는 누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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