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동을 거닐다 보면 인상적인 공간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런 이촌동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 이촌동의유적비
이촌동에는 좀 특이한 유적비도 있다. 사람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유적비가 아니라 1970년대 한때 이촌동에 존재했던 학교, 즉 신용산 중학교에 대한 유적비다. 이 학교는 1965년 설립되어 1970년에 이촌동으로 이전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촌동에서는 오래 있지 못하고 1978년 신림동으로 다시 이사 갔다. 이촌동에는 8년 정도 존재했던 셈이다.
78년 그렇게 이 학교가 이촌동을 떠나가게 되면서 그 자리에는 현재의 삼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때 아파트 단지 한쪽 구석에 신용산 중학교를 기리는 유적비가 세워졌다.
사진) 신용산 중학교 유적비 (2021. 6월)
이런 사정에서 문화재도 아니고, 역사적 인물도 아닌 중학교의 유적비가 이촌동 동네 한 구석에 남아있게 된 것인데, 나는 비록 이 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70년대 이 중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이 유적비가 과거의 추억을 기리는 유일한 기념비며 또 과거 학창 시절을 기억하게 해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일 것 같다.
●이촌동 나무들
아래 사진들은 아파트 10층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앞 나무들의 계절별 모습인데, 나뭇잎 색이 계절별로 변하는 모습이 아름답고신기하게까지 느껴진다. 우리 인생도 이 나무들처럼 낙엽이 지고 잎이 다 떨어졌다가도 또 여름을 맞이하면 새로 다시 푸르게 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아쉽게도 인간의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진)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나뭇잎 색의 계절별 변화
그래도 이촌동이 나름 오래된 동네라 이렇게 멋지고 큰 나무들이 동네 곳곳에 즐비하게 있어 주민들의 시선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데, 얼마 전부터 부지런히 추진돼 오고 있는 이촌동 아파트들의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시작되면 그 공사 과정에서 과연 이 나무들 중 얼마나 살아남게 될지 의문이다.
실제 현재 진행 중인 현대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보면 그 크고 아름답고 오래된 나무들이 모두 중장비로 잘려버리는 것을 매일 볼 수 있다.
사진) 리모델링 공사 이전 현대 아파트 단지 내 무성한나무들
사진) 공사가 진행 중인 2022. 2월 현재 현대 아파트 모습. 그 많던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가고 단 한그루도 남아있지 않다.
●단풍나무, 은행나무
이촌동 곳곳에는 멋진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도 꽤 많이 있어 가을만 되면 오가는 주민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그 나무들 중 유난히 그 색이 짙어 눈에 띄는 나무가 있다.
사진) 대우아파트 104동 앞에 있는 단풍나무. 주변 나무와 비교해봐도 유독 그 색이 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2020. 10월)
사진) 첼리투스 옆 한우리 공원 안의 단풍 (2020. 11월)
사진) 한강교회 앞 은행나무. 햇살을 가득 받은 나뭇잎이 마치 불타는 듯하다. (2020. 10월)
사진) 이촌 아파트 107동 앞 은행나무. 햇살 속에서 빛나는 황금색이 유난히 짙다. (2020. 11월)
●벚꽃
봄에 피는 꽃을 얘기할 때 벚꽃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봄에는 서울 시내 곳곳에서 흐드러진 벚꽃을 볼 수 있는데 이촌동에서도 역시 아름답고 벚꽃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멋진 벚꽃 중 하나는 아마도 이촌동 입구에 있는 정우맨션 담벼락에 심어져 있는 벚꽃이 아닌가 싶다.
사진) 정우맨션 옆 벚꽃 (2020. 3월)
너무 작아서 오히려 애정이 끌리는 벚꽃도 이촌동에 있다. 바로 아래 사진의 벚꽃인데 금강 병원 맞은편 현대 아파트 도로변 담 안 구석에서 조용히 꽃 피고 있는 벚꽃이다.
이 벚꽃은 외롭게 홀로 자라고 있는 데다가 또 아직 제대로 성장한 상태가 아니라 보기에 좀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벚꽃이 더 크게 성장해서 더 아름다운 나무로 변신하게 되는 그런 모습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현대 아파트가 리모델링 공사를 하게 되면서, 단지 내부에 있던 나무들을 모두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사진 속 이 벚꽃은 제대로 꽃 한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사진) 현대 아파트 단지 안 작은 벚꽃 (2020. 4월)
● 진달래
로얄 맨션 바로 옆 한가람 211동 도로변에는 작지만 매우 짙은 분홍색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바로 진달래다.
사실 이촌동 거리에서는 봄이 오면 이런 꽃과 유사한 꽃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분홍색 꽃들은 대부분 철쭉 또는 철쭉과 유사한 종류의 꽃들이며 진달래는 거의 없다. 진달래는 인위적인 재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이른 봄에 우연히 한가람 211동 앞 인도를 걷다가 분홍색이 너무도 아름다운 꽃이 보여 자세히 보니 외롭게 홀로 자라고 있는 진달래였던 것이다.
사진) 한가람 아파트 211동 앞 진달래꽃 (2021. 3월)
사진) 같은 장소 2022. 2월 사진. 아직은 진달래 꽃이 피기 전이다.진달래 꽃이 피면 이 삭막한 공간도 아름다운 보라색 진달래가 있는 공간으로 다시 화려하게 변신할 것이다.
이 진달래는 너무도 작고, 너무도 외롭게 홀로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전혀 가꾸지 않은 구석에서 자라고 있지만 그런 모든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또 잠시나마 감상에 젖을 수 있게끔 할 정도로 짙고 아름다운 분홍색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진달래를 보면 진달래란 꽃 이름에 담겨있는 슬픈 전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진'씨 성을 가진 아버지의 죽은 딸 '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