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캐나다인 (I am CANADIAN)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2편 Toronto-1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oronto



12. 난 캐나다인 (I am CANADIAN)


한국, 일본, 중국 간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있고, 프랑스, 독일, 영국 간에도 그런 감정이 있듯이, 인접한 국가 간에는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축적된 특이한 감정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같은 북미 식민지로 시작했고, 요즘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처럼 보이는 캐나다와 미국 간에도 역시 그런 미묘한 감정이 있다.


캐나다 법인에 근무하면서 좀 많이 짓궂은 농담을 할 때는 "캐나다와 미국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 같냐"는 질문을 캐나다인 직원들에게 하기도 했다. 당연히 아무도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보면 실제 캐나다와 미국이 전쟁을 해서 미국군이 캐나다의 영토 일부를 잠시 점령하기도 했고, 반대로 캐나다군이 워싱턴을 침략해 백악관을 약탈하고 불태워 버린 적도 있다. (War of 1812)


바로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2018년 5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트뤼도 수상을 만났을 때 "캐나다가 우리 백악관을 불태우지 않았느냐"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불만을 표출했던 적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래 기사의 설명처럼 당시 캐나다는 국가가 아니라 영국 식민지의 일부였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캐나다 주둔 영국군과 미군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캐나다군의 백악관 침공)

https://www.nytimes.com/2018/06/06/us/politics/war-of-1812-history-facts.html




캐나다 국토 면적은 러시아 다음 전 세계 2위로 매우 넓다. 반면, 인구는 3천7백만으로 한국 인구 5천2백만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며 인접한 이웃 미국 인구 3억 3천만과 비교할 때는 약 10% 수준밖에 안 된다.


인구가 크게 적다 보니, 국가의 경제규모도 미국과는 많이 차이가 나서 캐나다 국가 전체의 GDP가 인구 3천9백만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GDP의 약 60% 수준밖에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캐나다와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는 뻔할 것이다,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 너무 차이가 나서 캐나다뿐 아니라 과거 한때 그들 모두의 종주국이었던 영국까지 합쳐서 미국과 전쟁을 해도 미국을 결코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나 미국 두 국가 모두 과거에는 같은 북미의 영국 식민지였고 그 구분도 뚜렷하지 않았으며, 경제력 등 여러 가지 부문에서 상호 간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두 지역이 미국의 독립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큰 격차가 나는 관계로 변해버린 것인데,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격세지감의 변화에 대해 캐나다인들은 일종의 묘한 콤플렉스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인들은 그런 캐나다인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아예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다만, 세계 초강대국이 되어버린 유일한 이웃 미국과 초창기 식민역사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또 현재도 역기 바로 그 옆에서 살아야 하는 캐나다인의 심정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캐나다인의 미묘한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TV 광고가 있다. 내가 캐나다에 주재 근무하던 2000년대에도 방영되던 광고라 나 역시 TV에서 당시 자주 보던 광고인데, 지금은 없어진 Molson이라는 캐나다 맥주회사의 광고다.


(Molson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up0i0G_y05A


광고는 시리즈 드라마처럼 여러 편의 광고가 제작되어 순차적으로 방영되었는데, 외모, 몸매 모두 아름다운 미국 여인이 막상 미소 지을 때 보니 치아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너무도 흉하다든가, 또 미국인이 캐나다인에게 캐나다에도 수돗물이 나오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조롱이 섞인 질문들을 반복하다 봉변당하는 것처럼, 주로 잘난 척하는 미국인들이 결국에는 망신당하는 그런 내용 위주의 광고였다.


시리즈 별로 광고의 세부 내용은 달랐지만, 미국인을 망신 주고 캐나다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이런 근저의 메시지는 항상 동일했었는데 캐나다인의 미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광고를 통해 대신 만족시켜 주었다는 면에서 캐나다에서는 당시 꽤나 유명했던 광고였다.

바로 광고 마지막 부분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가 우리는 미국과 다른 자랑스러운 캐나다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I Am Canadian"이었던 것이고, 이 문구가 TV 화면에 가득 찰 정도의 큰 글씨로 방영되면서 마무리되었다. 결국 우린 자랑스러운 캐나다인이니 잘난 척만 하고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는 미국의 맥주가 아니라 캐나다의 맥주인 Molson을 마시자는 메시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미국을 경시하며 우스꽝스러모습으로만 부각하는데 주력했던 바로 그 Molson이라는 캐나다 맥주 회사가 내가 캐나다를 떠난 2년 후 2005년에 다른 국가 맥주 회사와 합병했는데, 그 회사가 바로 다른 나라도 아닌 바로 Coors라는 미국의 맥주 회사였다. 한때는 그렇게 비난을 했던 미국의 회사와 합병하여 'Molson Coors'라는 한 회사가 된 것이다.

두 맥주 회사 합병이 법적으로는 당연히 문제가 없겠지만, 천박한 미국과는 다르다는 캐나다인의 자존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마케팅을 해왔던 Molson의 광고들을 기억하고 있는 캐나다 소비자들은 과연 이런 의외의 합병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같은 영국인의 후손이니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모두 영국계 앵글로색슨이 그 주류로 인종적 뿌리는 같다. 하지만 오랜 시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 또 시간이 흐르며 문화가 점차 달라져서 그런지 Molson 광고에서 묘사되기도 했던 것처럼 같은 영국계 백인일지라도 서로 분위기나 외모에서 뭔가 좀 확연하게 다른 점이 느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시되는 국제 박람회가 있었다. 이 박람회는 그해 도입되는 신제품들이 대대적으로 소개되는 곳이라 거의 전 세계 모든 법인에서 매년 참석을 했는데 우리 회사 미국 법인과 캐나다 법인 직원들도 역시 거래선들과 함께 이 박람회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이 박람회에 참석한 캐나다 법인 직원과 미국 법인 직원을 보면 같은 영국계 백인일 경우에도 뭔가가 좀 달라 보였는데, 뭐라 할까 좋게 표현하면 캐나다인들은 복장이나 표정에서 좀 더 순박해 보이는 반면, 미국인들은 Molson의 맥주 광고에 나오는 미국인처럼 보다 좀 더 잘난 척하고, 좀 더 나서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처럼 보였다.




언어도 같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캐나다 영어는 혀 굴림이 미국보다 덜 해서 좀 더 알아듣기가 쉬웠던 것 같고 또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퀘벡주를 제외하면 캐나다에는 각 지역별 사투리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심하지 않아 지역별로 사투리 차이가 꽤 큰 미국과는 달랐다.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미국 루이지애나 지역의 영어는 같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쉽게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다 한다.


이처럼 미국과 달리 사투리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한국에 와 있는 대다수의 영어 원어민 강사는 미국인들이 아니라 캐나다인들이라 하는데, 그렇게 한국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던 캐나다인을 캐나다에서 만난 경우도 있었다.


법인에서 한국계 캐나다인, 즉 한국 교민을 채용하기 위해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채용한다고 광고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을 지정해서 채용 공고를 내는 것은 인종차별로 간주되어 위법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계 캐나다인'이라고 광고를 내지 못하고,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조건으로 광고를 냈다.


2000년 당시 캐나다에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한국인이나 한국 교민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인사과장이 지원자가 왔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데 의외로 어떤 백인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국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터뷰조차 안 한다면 역시 차별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실정이라 일단 인터뷰는 했는데, 한국어를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으니 영어 강사로 한국에서 수년간 근무하면서 배웠다고 했다. 그녀 역시 한국의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캐나다인 원어민 강사 중 한 명이었던 것이었다.




캐나다와 달리 미국은 지역마다 사투리가 꽤 심한데, 특히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미시시피나 루이지애나 같은 지역의 사투리는 유독 더 심해서 동일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캐나다 법인의 백인 직원도 미시시피에 있는 거래처와 전화 통화할 때는 그쪽 영어를 못 알아듣겠다고 내게 하소연하곤 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캐나다인도 못 알아듣는 미국의 사투리를 동양인인이 내가 해결해 줄 방법이야 당연히 전혀 없겠지만 어쨌든 워낙 대화가 힘드니 답답해서 그렇게 내게 하소연을 했을 텐데, 같은 영어로 말하는 미국인의 말을 역시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인이 못 알아듣는다고 저 멀리 한국에서 온 내게 하소연하니 좀 우습기도 했다.


(루이지애나 사투리)

https://www.youtube.com/watch?v=5Da2iw59ErU


프랑스 불어와는 발음 등에서 좀 다른 캐나다 퀘벡 지역의 불어를 나는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도, 프랑스 본토에서 온 프랑스인들은 거의 다 알아듣던데 미시시피 지역의 영어 사투리는 아마 그 차이가 더 심해서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인조차도 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




이미 발생해서 확정된 역사에 대해 반대의 경우를 가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겠지만, 만일 미국이 영국에서 분리되어 독립할 때 캐나다 지역이 미국과 같이 독립활동에 참여하여 오늘날 미국의 한 구성원이 되어 있다면 현재 북미 지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실제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계가 다수 거주하던 캐나다 퀘벡 지역에는 일부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만일 그랬다면 미국은 국토 면적 세계 1위인 러시아보다 더 넓은 국토를 가진, 현재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초강대국이 되었을 것인 데, 실제로는 당시에 전개되었던 영국의 방해 활동으로 캐나다가 미국의 독립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한다.

같은 조국에서, 같은 북미 식민지로 이주해 온 영국인들이, 수백 년 뒤에 누군가는 'American'이 되어 "캐나다는 미국 한 개 주(州)가 아닌가?"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캐나다인을 조롱하게 된 반면, 누군가는 'Canadian'이 되어 Molson 맥주사에서 만든 "I am Canadian"같은 광고물들을 보며 American이 된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의 묘한 콤플렉스를 해소해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미국에서는 그 누구도 캐나다와 미국을 비교하면서 "I am American"이라는 광고를 만들어 제품 마케팅에 활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광고가 필요할 만큼 미국인이 캐나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캐나다가 미국보다 못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제는 두 국가 간의 국력 차이도 현격하고 미국의 강점도 많지만 캐나다도 나름대로 오랜 기간 만들고 다듬어 온 소중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의료복지나 사회복지 수준은 미국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잘 되어 있어 이 분야에서는 가장 우수한 국가인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될 정도라 한다. 또 치안 역시 미국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다.


실제로 내게 미국, 캐나다 두 국가 중 한 개 국가를 선택해서 거주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캐나다를 선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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