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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Nov 19. 2019

시련의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2편 Toronto-13)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oronto



13. 시련의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캐나다는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어서인지 이민자 유치있어서 여타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라 한다. 그 결과 다양한 국가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는데, 이런 이민자들  대다수는 캐나다의 농촌이나 시골의 소도시보다는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등과 같은 대도시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초기 이민 허용 조건이 인구가 적은 지방 소도시나 시골에 거주하는 것이었더라도, 결국은 그곳에 얼마간 거주하다가 다시 대도시로 온다고 했다. 연고도 없는 캐나다에까지 온 이민자들이 시골이나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고 생계를 꾸려 가기는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고, 또 차이나타운처럼 같은 국적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면서, 생활정보를 공유하고 때로는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공간도 모두 대도시에 몰려 있다 보니 더더욱 대도시로 이민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았다.


결국 이민자는 매우 많아도 캐나다 지방 소도시나 농촌에는 이민자는 거의 없고 오래전부터 거주해 왔던 순수 백인들이 여전히 인구의 절대적 다수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의외로 재미있는 현상도 생기게 되는데, 토론토에서는 일상생활하면서 가게나 식당 등에서 우리의 짧은 영어와 어눌한 발음으로도 현지인무리 없이 대화하고 의사소통하는데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토론토를 벗어나서 시골로 가게 되면 분명 같은 캐나다임에도 갑자기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그런 경우에 당면하기한다는 것이었다.


토론토 인구 중 백인은 약 50%밖에 안되고 나머지 50%는 중국인 11% 포함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이라 한다. 그만큼 토론토에는 다양한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이 많고 또 다양한 발음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발음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보니 가게나 식당의 종업원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좀 더 자주 접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좀 발음이 이상하거나 틀려도 대충 알아듣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 같았다.


(토론토시 인종별 비중, Toronto Demographics)

http://worldpopulationreview.com/world-cities/toronto-population/


반면, 대도시를 벗어나 지방이나 시골로 가면 외국에서  이주민이 거의 없는 만큼 그곳의 가게나 식당의 종업원들은 다소 이상한 영어 발음을 접할 기회가 워낙에 드물다 보니, 조금만 발음이 이상하거나 말이 틀려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외국인이 없다 보니, 그만큼 완벽한 영어 발음이 아닌 외국인의 어눌한 발음에 대한 면역력도 약해지는 셈이었다




토론토에서 운전해서 한 3~4시간만 북쪽으로 가도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 많다. 그런 곳에서 어렵게 주유소를 찾아서 주유를 한 적이 있는데, 주유소 주변은 건물이나 인가 하나 없이 광활한 대자연 그 자체였고 주유기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스러져 가는 주유소 건물까지 모두 옛날 서부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구식 장비가 가득 찬 주유소였다.


주유소에 온 손님도 나 밖에 없었고, 아무리 봐도 그 황량한 곳에서 주유소를 운영해서는 전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왜 이러한 장소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그저 예전부터 주유소가 있었으니, 아무 생각 없이 그만두지 못해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주유소에는 당연히 토론토 시내에 있는 것과 같은 셀프 주유 시설은 없었고, 사람을 찾으니 한 젊은 백인이 나와서 주유를 해주는 데 직원인지 사장인지 알 수 없는 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아주 잘 알아듣겠는데 그 사람은 내 말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고 몇 번씩 되묻곤 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 백인이 도대체 왜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듣는지 이해를 못하고 "다른 캐나다 사람들은 알아듣는 내 영어를 왜 이 사람은 하나도 못 알아듣지?"라고 의아해했는데, 나중에 인적도 거의 없는 시골에까지 와서 주유를 하는 동양인이 과연 몇 명이나 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가 이제껏 살면서 대화를 나누어본 첫 번째 외국인이었을지도 모를 것 같았는데, 그처럼 외국인을 만난 경험이 거의 없으니, 외국인의 어눌하고  좀 이한 영어 발음도 처음 접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알아듣지를 못했던 것 같다.




중국의 광조우(廣州)에 근무할 일이다. 내 차를 운전해 주는 중국인 기사와 종종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곤 했는데, 어눌한 내 중국어를 식당의 종업원들이 못 알아들으면, 그 기사가 그들에게 내 말을 다시 통역해 주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것은 그 중국인 기사 역시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중국어로 말할 때 한국어를 못하는 두 중국인, 중국인 종업원과 중국인 기사가 동시에  말을 듣고 종업원은 이해를 못한 반면, 기사는 알아듣고 좀 더 정확한 발음의 중국어로 다시 통역을 해 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어를 다시 중국어로 통역해 주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그 희한한 장면을 몇 번 경험하던 식당 종업원이 너무나도 궁금했는지 하루는 그 기사에게 "저 한국인이 하는 중국어 나는 못 알아듣는데, 너는 어떻게 알아듣냐? 한국어로 다시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닌데...."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기사의 답은, 한국인과 자주 얘기하다 보니 자연히 한국식 중국어 발음에 익숙해져서 다소 어눌한 어떤 발음은 어떤 중국어 표준 발음과 연결되는지를 점차 습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이 '까구뚜기'라고 발음하면 받침을 발음 못하는 일본인의 언어 특성을 아는 한국인들은 그 발음'깍두기'의미하는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이나, 한국에 와서 살면서 오랜 기간 한국인과 접해왔던 미국인이 한국인이 P와 F 두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터득해 한국인이 'Pire'라고 말하면 아마도 'Fire'를 말하려 하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인 셈이다.


하지만 일본인의 발음 특성을 모르는 한국인이나, 한국어 발음을 접해 보지 못한 미국인은 '까구뚜기''Pire'라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단어에만 집착해 말의 의미를 해석하려 할 터이니 쉽게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대학 때 프랑스인 선생에게 불어 회화를 배우는 수업시간에 프랑스인 여선생이 얼굴에 핏대가 설 정도로 심하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식당을 하는 불어 단어는 'Salle à manger'인데 한글로 발음을 표기하면 '쌀라망제'와 가깝게 발음된다. 그런데, 수업에 참여한 10여 명 되는 한국 학생들 대다수가 선생을 따라 '쌀라망제'라고 불어 원음과 비슷하게 제대로 발음을 한 반면, 유독 한 학생이 '살라망제'라고, 즉, '쌀'이 아니고, '살'이라고 계속 특이한 발음을 반복했다.


우리는 경상도 시골 출신인 그 동창생이 '쌀' 발음을 못하는 어려움을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한국 사투리 발음 특성을 결코 알 수가 없었던 외국인 선생은 혼자 이상한 발음을 반복하는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같이 화를 냈던 것이었다.


하지만 불어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대학 1학년 시절이라 아무도 그가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 결코 그 선생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어로 설명할 만큼 회화 실력이 되지 못했으니, 결국 누구도 옆에서 그러한 상황을 설명해 주지 못했고, 그 친구만 억울하게 계속 선생으로부터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던 남편 따라 한국에 왔던 그녀가 나중에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그것이 한국의 지역별 발음 특성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한국을 떠났는지 모르겠다. 그 불쌍한 친구는 이후 외무고시에 합격해 현재 미국 어느 도시 총영사로 있다 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억울함을 당하는 일은 없는지 모르겠다.  




얼굴을 맞대고, 손짓이나 표정을 보면서 면전에서 대화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어도 표정이나 손짓 등의 여러 가지 다른 Communication 수단을 동원해 결국에는 의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화로 대화하는 것처럼, 표정이나 손짓 등을 볼 수 없고 오로지 소리로만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 경우 발음이나 말이 틀리면 다른 의사전달 수단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전달이 훨씬 더 어렵다.


한국에서도 Drive Thru 방식으로 운영되는 점포를 간혹 볼 수 있지만, 2000년대 초반 당시 토론토에는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의 Drive Thru 방식 점포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Drive Thru 방식 점포에서의 음식 주문 역시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이크를 통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전화로 대화하는 것과 같은 건에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건이 그렇다 보니,  편리한 Drive Thru 방식도 완벽한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때론 의외의 시련을 가져다주는 고통스러운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적이 있다.


평소에는 잘 안 하던 행동인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식사 후 한국인 주재원들끼리 Drive Thru에 가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고, 회사 근처 Drive Thru로 갔다. 재무 업무를 담당하는 주재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었기 때문에 그가 운전석 쪽으로 맞춰져 있는 점포의 마이크에 우리 3명의 음료를 대표로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을 받는 쪽에 근무하는 종업원이 외국인을 별로 접해 보지 않은 시골에서 새로 온 직원이었는지,  동료가 열거하는 음료 이름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 뭐라고 했냐고 계속 다시 되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뒤에서 대기하던 차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몇 번을 반복해도 말을 못 알아들으니, 그 재무 담당뿐 아니라 차 안에 있던 나 포함 한국인 주재원 3명 모두가 다급해서 안전띠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으로 목을 뽑아가며 번갈아서 마실 음료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러가며 반복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방은 전혀 못 알아듣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됐다.


결국 할 수 없이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급하게 점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직접 손가락으로 원하는 음료를 찍어서 알려주고 나서야 간신히 주문을 끝낼 수 있었다. 


몇 년씩 토론토에 거주했음에도 그 간단한 메뉴 이름 하나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우리들의 처지가 너무나도 황당하고 허탈했는데, 그저 우리 영어 발음이 어눌해서 그런 것이니 누구에게 화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스튜어디스에게 들은 얘기인데, 한 번은 일본인 승객이 기내에서 음료를 주문하면서, 자꾸 '호또꼬히'를 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음료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했다.


한참의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는데, 무슨 특별한 음료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Hot Coffee를 달라는 의미였다 한다.


우리도 Coffee라는 영어 단어는 별도의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 발음 그대로 '커피'라 한글로 적어 사용하듯이, 일본도 Coffee라는 단어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일본어로 'コーヒー'라고 적어 표기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일본어로 읽으면 '꼬히'로 발음된다 하니 이미 원래 Coffee 발음과는 많이 다른데, 발음이 풍부하지 않은 일본어 특성상 그나마 일본 문자로 표기할 때 그것이 Coffee라는 원음에 가장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라 다. 이 단어에 'Hot'이 추가된 것인데, 받침이 거의 없는 일본 언어 특성상 'Hot(핫)'을 'ホット(호또)'라 적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호또+꼬히"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또꼬히'라는 단어는 Hot Coffee라는 영어 단어를 발음 그대로 일본어로 옮긴 것이지만, 원래의 발음과는 이미 너무도 달라져버려, 일본어를 별도로 배우지 않은 외국인은 그 스튜어디스처럼 이 말이 Hot Coffee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일본인 입장에서는 자신은 분명히 영어 단어인 Hot Coffee를 영어로 얘기하는데 승무원은 계속 못 알아들으니 꽤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번역기에 'ホットコーヒー'를 입력하고 그 발음을 직접 한번 들어 보면, '호또꼬히'로 들리는 그 말이 Hot coffee와는 정말 눈곱만큼도 비슷하게 들리지 않는다.


(Hot Coffee 일본어 발음)

https://ja.dict.naver.com/entry/jk/JK000000304338.nhn




그런데 사실 한국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어컨, 와이셔츠, 가라지, 슈퍼 등등 수없이 많은 단어를 영어에서 차용해서 그대로 또는 줄여서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그대로 캐나다에서 이 단어를 발음하거나 사용할 경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캐나다인 대부분은 그 말을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다. 단어가 변형돼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발음이 워낙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자동차 정비소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가라지 (또는 개러지)'영어 단어인 'Garage'에서 온 것인데, 한글로 '가라지'라고 표기된 것을 '가','라','지'로 그대로 읽어 캐나다에서 의사전달을 시도할 경우, 영어의 원래 발음과는 너무도 달라, 한국어를 별도로 경험해 보지 않은 캐나다인은 누구도  '가라지'가,  'Garage'를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라지 한국어 발음)

https://ko.dict.naver.com/#/entry/koko/8ae0430412544b5b99ed5e3347f44058

(Garage 영어 발음)

https://en.dict.naver.com/#/entry/enko/46537aae26374a0286fbccb1d3fdf406


어쩌면 그날 우리 한국인 주재원 3명도 그 Drive Thru의 마이크에다 "가", "라","지"를 번갈아가며 줄기차게 외쳤던 것 같은데, 당시 이미 40이 거의 다 된 나이에 영어 발음이 고쳐질 가능성은 없었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한국인들만 있을 에는 누구도 다시 Drive Thru 가자는 제안은 하지 않게 되었다.


관련되는 재미있는 Youtube 동영상이 있어 첨부한다. 이 동영상을 보면 그 백인 직원이 동양인 3명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식 영어 발음)

https://www.youtube.com/watch?v=ei-XVZcIp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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