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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Nov 22. 2019

그 땅의 뒤바뀐 주인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2편 Toronto-14)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oronto



14. 그 땅의 뒤바뀐 주인


캐나다는 땅이 넓다. 남한의 거의 100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가 캐나다인데, 인구는 남한 인구의 70% 정도밖에 안된다. 당연히 비좁은 국토에서 평생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삶과 풍요로운 대자연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그들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땅이 넓고 인구는 적으니, 토론토 같은 대도시에서 서너 시간만 차를 타고 가도 아예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곳도 허다하다. 주중에 마무리 못한 일 처리하러 주말에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로 출근해 혼자 씩씩거리며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가 정점에 도달하면,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나와 차에 시동 걸고 고속도로를 따라 무작정 그렇게 대자연이 가득한 캐나다 북쪽으로 차를 몰고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이 지구가 아닌 또 다른 행성에 도착한 것처럼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광활한 신천지 같은 웅장한 경관나타나는데, 그런 공간을 접할 때마다 그런 대자연과 넓은 땅을 갖고 있는 캐나다가 너무 부러웠다.

  

굳이 운전해서 3~4 시간씩 가지 않아도 토론토 근교에서 역시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  수 있다. 토론토 주변 숲 속 작은 길을 차로 주행하다 보면, 길 양 옆의 울창한 나뭇잎들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주택들을 볼  있는데 그중에는 정원  나무에 그네가 매달려 있거나, 집안에 수영장이 있는 주택들도 있었다. 창밖으로는 아파트 앞 동의 시멘트 벽면만 보이거나, 앞 집 방안까지 보일만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에서 살았던 나와 같은 한국인의 처지와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당시 목격했던 햇살 가득한 숲 속의 그런 아름다운 주택들 모습캐나다를 떠난 후에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토론토에 대해 이렇게 글을 적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모습들을 꿈속에서 다시 보게 되는 경우있었다.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기억들완전하게 잊힌 것 같아 실제로는 우리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언젠가는 다시 떠오르게 되는 모양이다....


토론토나 몬트리올만큼 대도시는 아니지만 엄연히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Ottawa)를 운전을 해서 1박 2일로 다녀온 적도 있다. 둘째 날 야간에 고속도로를 주행해서 토론토로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차 앞 범퍼에 차에 부딪쳐 죽은 날벌레들이 온통 붙어 있어서  전면에 마치 검은색 수건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던 모습인데,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이나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다 보니, 온갖 곤충들이 인간 대신에 그 대자연의 공간을 가득 채워서 사는 것 같았다.  




엄청난 면적을 가진 공원들도 있다. 토론토에서 차로는 약 3시간 정도의 거리에 곤퀸(Algonquin)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공원 면적만 7,653 ㎢이니, 총면적이 7,408㎢인 충청북도 전체 면적보다도 넓다. 한국의 도 전체보다 큰 공원이 있는 셈이다. 이 공원 안에호수만 무려 2,400여 개가 있다 한다.


(Algonquin 공원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jaesooncho06/222099060320


곤퀸은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유명한데, 동년배인 법인의 교민 직원과 함께 2001년 초가을에 낚시도 할 겸 같이 가본 적이 있다. 가보니 역시 아름다운 대자연을 가진 캐나다를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는데, 360° 파노라마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방 전체가 온통 새빨간 단풍잎으로 가득한 거대한 단풍 숲이 정말 장관이었다.


(앨곤퀸의 단풍)

https://www.photographerjun.com/landscape-travel-life-style-photography-toronto-canada/algonquin-canada/


캐나다에서는 한국에서와 달리 낚시를 하려면 사전에 낚시 허가증을 받아야 했는데, 낚시 허가증을 갖고 있던 같이 간 친구는 그곳에서 낚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호수에 낚시하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그 친구 딱 한 명뿐이었고, 낚시하는 사람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팔뚝 만한 숭어들을 너무나도 쉽게 낚아채곤 했다. 물고기마저도 너무나도 풍족한 캐나다였다.    


2001년 가을 앨곤퀸 여행 시 앨곤퀸 근처에서 찍은 사진




온타리오(Ontario) 호수 끝자락에는 싸우전드 아일랜드 (Thousand Islands)라는 아름다운 호수도 있었다. 호수 안의 섬이 무려 천 개나 된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그곳이 더 유명하게 된 이유는 그 천 개나 되는 섬들 위에 동화 속에서나 볼 수가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집들이 지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 집들은 다소 큰 섬 위에 지어진 비교적 큰 집도 있었지만, 약 10평도 안 되는 작은 섬에 앙증맞은 꼬마 집이 지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호수에 떠있는 그런 크고 작은 집들을 보고 있으면 유년시절에 읽었던 동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는데, 역시 캐나다의 대자연을 충분히 만끽하는 캐나다인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느낄 수 있다.


'Thousand Islands'라는 드레싱 소스 또한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로 이 호수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Thousand Islands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0crush/222278604341




캐나다의 대자연을 언급하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Paris)에서 연수 생활할 때, 출장자들 마중 나가고 배웅하느라 샤를르 드골 공항을 1년 간 무려 20~30번 정도는 갔었던 것 같은데, 캐나다에서도 출장자들이 나이아가라 폭로를 꼭 한번 가 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과 함께 역시 적어도 1년에 10번 이상은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던 것 같다.


출장자들은 보통 미국을 거쳐서 캐나다로 왔는데, 금요일에 미국에서 출발해 캐나다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캐나다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인 미국에서의 중요한 미팅들은 주중에 진행하고, 미국까지 온 김에 한국 돌아가기 전 잠깐 짬을 내서 주말에 캐나다를 들르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금요일에 도착하는 출장자는 양반이었고, 토요일에 도착해서 일요일에 떠나는 출장자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 당연히 주말 이틀 내내 나 역시도 출근해야 했는데, 가족도 없었던 나는 어차피 거의 매주 주말에 출근했으니 그렇게 주말에 출근하는 것이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 일정에만 맞춰서 주중에는 미국에서 미팅하고 주말에 캐나다로 이동해서 주재원을 휴일 이틀간 출근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예의 있는 경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만 미국 담당하는 본사 직원이 깍두기 같은 캐나다 시장도 함께 담당하는 것이 당시 현실이었으니 엄청나게 큰 미국 시장에서의 매출 규모와 상대적으로 작은 캐나다 시장 매출 규모를 비교해 봤을 때 피할 수 없는 현상기도 했다.


실제 미국 쪽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본 적이 없어서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캐나다와 미국 국경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 쪽에서 보는 것보다 캐나다 쪽에서 보는 경치가 훨씬 더 멋지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본사 출장자 대부분은 캐나다에 와서야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엄청난 의 물이 떨어지는 모습 자체장관이지만, 그 외에도 주변에 볼거리들이 많았다. 겨울이 되면 폭포에서 증발된 수분으로 주변의 나무 가지들이 얇은 얼음으로 뒤덮여 온통 유리 숲으로 변하기도 했고 또 폭포 인근의 고풍스러운 아이스와인 농장들도 유명했다.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 지역은 캐나다 최대의 와인 생산지라 했는데 그곳의 아이스와인은 캐나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해 그곳에서 아이스와인을 사가는 출장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은 너무나 달아서 내 입맛에는 도통 맞지 않았고 나는 딱 한번 마셔 보고는 두 번 다시 마시지 않았다.


(나이아가라 인근 얼음으로 뒤덮인 나무들)

https://m.blog.naver.com/pansophy/70084095675


(나이아가라 주변 와인 농장)

https://m.blog.naver.com/wltnrhdw/221606243070




한국에서야 국내선을 타면 탑승하자마자 몇십 분도 안돼서 바로 내려야 하지만, 땅이 넓다 보니 캐나다에서는 동쪽에 있는 도시 토론토에서 캐나다 서쪽 끝 반대편에 있는 도시 밴쿠버로 가려면 항공기로 이동해도 약 5시간 정도 걸렸다. 만일 차로 이동해서 간다면 쉬지 않고 운전만 하고 가도 약 40시간 이상이 걸릴 거리다. 두 도시 간 시차도 3시간이나 있어 토론토 시간으로 낮 12시 점심 먹으러 갈 때, 밴쿠버는 아침 9시 출근할 시간이었다.


법인 주요 거래선  회사 본사가 밴쿠버에 있는 거래선이 있어 가끔 밴쿠버로 출장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캐나다 직원들과 함께 항공편으로 이동하면 캐나다 직원들이 항상 매우 신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예외 없이 비행기만 타면 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비행기 타면 별로 할 일도 없고 또 피곤하기도 하니 나 역시 탑승하면 바로 잠을 청했던 것 같다. 비좁고도 답답한 비행기 안에 갇혀서 이동할 때, 탑승하자마자 바로 잠들고 깨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면 그 보다 더 완벽한 여행도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북미로 이동할 때처럼 비행시간만 장장 10시간 넘게 걸리는 이동을 할 때에는 더 그렇다.


하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잠을 못 자는 건지, 아니면 안 자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비행기 안에서 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히 야간에 이동하는 항공편을 탔을 때는 잠을 못 자면 더 피곤해서 그런지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현상까지도 생겨서 캐나다인들은 야간 항공편을 Red-eye flight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실제 캐나다인들과 같이 출장을 다녀보면 그렇게 눈이 충혈되는 직원들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5시간 내내 자지는 못할지라도 항상 어느 정도는 잠을 자서 그런지 야간에 이동해도 그렇게 눈이 충혈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캐나다 대자연의 이 모든 풍족함과 여유, 널찍하고 아름다운 주택, 충청북도 전체 면적보다도  거대한 공원, 섬이 천 개나 되는 호수, 아름답고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 눈이 충혈될 정도까지 5시간을 항공기로 이동해도 여전히 같은 나라 안에 있을 만큼 광대한 국토 등 현재 그들이 갖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지금  땅의 주인인 백인들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들원래 그곳에 수천 년간 거주해왔던 북미 원주민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총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백인들이 어느 순간 이 땅으로 들이닥쳐 점진적으로 거주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몰아낸 후 그 땅의 주인이 되어 버렸고, 원래의 주인들은 이제는 그 땅에서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따지고 보면 주인 대신 객이 들어와 그 풍요로운 캐나다의 대자연을 대신 맘껏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북미 원주민의 부족별 영토)

http://1x57.com/b/great-maps-of-the-native-american-tribes-of-north-america/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북미 원주민만 터전 송두리째 빼앗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한국인도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이한 현상이지만, 동양인이 거주하는 한반도의 동북쪽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는 같은 동양인의 국가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인종인 백인들이 다수인 러시아라는 국가다. 동양인 국가 바로 옆에 백인들 국가가 국경맞대어 있는 셈이니 너무도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인 셈이다.


오랜 과거 역사를 보면 두만강 바로 넘어 있는 지역에는 백인들이 거주했던 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땅은 애당초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우리 한민족이 수천 년간에 걸쳐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땅이었다. 비록 국가들 모두 오래전에 멸망했지만 어쨌든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이 살던 땅이었고, 근세에도 한동안 '연해주'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는 다수의 한국인들 거주했던 땅이었다.


(과거 우리 민족 국가의 영토)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sm=tab_jum&query=%EA%B3%A0%EC%A1%B0%EC%84%A0+%EA%B3%A0%EA%B5%AC%EB%A0%A4+%EB%B0%9C%ED%95%B4+%EC%98%81%ED%86%A0+%EC%A7%80%EB%8F%84


그런데 이제 그 땅은 러시아의 땅이 되어 버렸고, 발해가 그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 발해의 5경(5京) 중 하나인 동경(東京)이 있던 곳 지척에는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호전적인 이름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라는 도시가 들어서 있으며 러시아의 거대한 군함들과 러시아 극동함대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다.


장군총이나 광개토대왕비가 지금도 역시 엄연히 존재하 만주의 광활한 고구려 땅이 이제는 중국의 땅이 되어버렸고 고구려의 역사가 과거 중국의 한 지방정부 역사로 변질되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드넓은 연해주도 이제 러시아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북미 원주민이 영국의 백인에게 자신들의 땅을 주었다, 우리 역시 고조선 시대부터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이 살았 주와 연해주 땅을 중국 한족과 러시아 백인들에게 내어준 것이라고 밖에 말할  없을 것 같다.


북미 원주민이 겪은 아픈 역사와 큰 차이가 없는 아프고도 쓰라린 역사를 한국인 또한 엄연히 갖고 있는 셈인데 우린 그것을 좀처럼 기억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때의 사진. 동해항에서 꼬박 24시간을 배를 타고 이동한 후 블라디보스토크에 막 도착할 때 배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영토였이곳에는 러시아 국기가 펄럭이고 강력한 무기가 장착된 러시아 극동함대 군함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었다.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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