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순을 보며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by 자연처럼

모순이란 단어의 유래를 보면 참 흥미롭다. 창과 방패를 합친 말인 모순의 유래가 중국 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어 "내 방패는 그 어떤 물건으로도 뚫을 수 없다" 그리고는 창을 가리켜서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가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했을 때 파는 사람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논리가 맞지 않는 것을 모순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모순되는 일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중 한 가지는 담배의 제조와 관련해서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담배 제조업의 허가가 가능하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자본금은 300억 이상, 시설은 연간 50억 개비 이상을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담배 제조 및 품질관리 분야에서 3년 이상의 경력자를 5인 이상의 전문 기술자를 보유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다.


KT&G가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세금을 통해 정부에서 재미를 보는 형국이다. 세금 내용을 보면 20개비 한 갑당 무려 1,007원으로 2020년에 거두어들인 세금 총액은 기획재정부 통계에 의하면 무려 12조 원을 기록했다고 한다.이처럼 담배는 정부에서 제조 허가를 내주며 한편으로는 국민에게 금연을 권장하고, 더 나은 금연 환경을 위해 금연 구역을 지정하기까지 하는 모순을 보인다.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담배를 끊도록 장려하고 한편으로는 담배 소비를 통해 막대한 세금을 거두고 있다. 마치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담배를 피우는 소비자의 눈으로 봐도 모순되는 상황이다. 정부에 많은 세금을 내고, 혜택은커녕 몸은 내가 버리고, 추운데 벌벌 떨면서 금연자들은 피해 담배를 피울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다.


또 다른 모순된 상황은 도박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사행심을 조장하고, 일확천금의 허황한 꿈을 좇게 해서 결국 개인과 사회에 정신을 병들게 하는 무서운 것이 도박이다. 한번 도박에 빠지게 되면 거기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강원도 정선 카지노와 과천 경마장 근처에 가면 도박의 수렁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한국도 사람은 대답할 청소년 도박 문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중,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조사 대상 1만 5,349명 중 2.4% (위험군 1.7% 263명+문제군 0.7%, 114명)가 도박 문제 위험 집단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재학생 약 269만 명 중 약 6만 6,000명이 위험 집단에 해당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 이미 도박이 우리 사회의 중춧돌인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 관습은 도박을 죄악시하고 이를 막기 위해 경찰에서도 이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부에서는 큰 도박판과 도박사업을 장려하거나 장려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이를 엄격히 제한하고 사람들이 도박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도록 막아야 함에도 예를 들면 카지노를 허가해 주고, 경마와 경륜장을 정부에서 직접 운영까지 해가며 도박중독자들을 양산하는가 하면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사소한 도둑은 경찰을 통해서 잡아들이면서 큰 도둑질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엔 이와 같은 모순된 상황이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 방조하고 많은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짐으로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보는 우리를 무척 혼란스럽게 한다.


왜 이럴까? 그중 한 가지는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엔 나라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경험과 지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는 경향을 타고났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익한 최상의 표준과 기준은 우리 스스로 정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만일 모든 개인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면 온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를 늘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인도와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예레미야 10:23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48:17 "나 여호와는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걸어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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