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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처럼 Jun 02. 2022

울산 화재를 보며

고층 아파트가 알려 주는 것

영화 타워 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하늘 높이 치솟은 33층의 고층 건물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이를 본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불길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허망함으로 속절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게 되었다. 본래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 제 모습이고 꽃과 나무들은 흙과 함께 살아야 자연스럽다.


그리고 새들은 창공을 나르며 이따금 숲속에 머무는 것이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생물 중 가장 고등한 사람들은 땅을 벗하며 땅 근처 낮은 곳에 거하도록 의도되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자연을 보살피며. 돌보도록 의도되었던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땅을 멀리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 높이 거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높은 곳을 좋아할까? 더욱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기 위함일까? 아니면 남들보다 더 우월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일까? 고대 바벨에서 니므롯이 세웠던 바벨탑을 연상해 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져버리고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하늘 높이 치솟은 탑을 세우게 되므로 한껏 교만해졌다. 하지만 그곳은 본디 사람의 영역이 아닌 조물주의 영역을 인간이 도전한 것이다. 그때 이루지 못한 미련을 아직도 떨쳐 버리지 못해서일까? 세계 곳곳의 대도시엔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마천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과 함께하며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교만한 생각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면의 낮은 곳에 가까이 지낸다 함은 좀 더 우리가 자연과 친숙해지고 이웃과 함께 소통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생활하고 자연을 돌보며 자연이 좋아하는 삶의 방식으로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옛날 우리 조상은 이웃과 함께하며 지내기를 즐겼다.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슬픔도 기꺼이 그 틀과 함께 나누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하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우리는 이웃과 멀어지고 단절된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웃의 애환과 고통엔 무관심하고 나만 잘 자네면 된다는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로써 이웃과의 대화는 끊어지고 TV와 창밖의 경치가 내 이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돈을 버는 일에 온통 혈안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불법적인 일도 마다치 않는다. 설사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게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무관하다.


이러한 이유로 건설회사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화재에 취약한 단열재를 사용하고, 불법적인 시공을 일삼는다. 또한, 이를 감시할 법과 제도는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하고 허구한 날 사고 난 뒤 뒷북만 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듣고 나서야 이를 수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지켜보아야만 할까? 또 다른 문제는 안전 불감증의 문제이다.


자동차에는 에어백이 필수이고 선박에는 구명조끼의 구비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도로 위의 사고를 대비해서 건널목을 긋고 신호등이 준비되어 있다. 더군다나 공동 건축물의 경우엔 만일의 화재에 대비해서 사다리차로 진압 가능한 한 높이 이하의 건축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고층빌딩에 화재가 날 경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멍하니 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안일하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설마 이 빌딩에서는 절대 불이 나지 않을 거라는 지나친 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이미 아파트 내에의 화재 대비를 위해 스프링클러와 소화기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고층 빌딩의 대형 화재의 경우엔 그 대책이 너무나도 허술하다.


TV 뉴스를 통해서 본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고층빌딩의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층빌딩이 아닌 높이가 낮은 집들에 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자신을 한껏 낮추는 겸손한 행위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 땅에 거하는 자연과 함께 소통하고, 우리와 함께 지내는 이웃들과 어울리며 대화하는 소통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가 모두 낮은 집들에 거하며 기꺼이 자연에 순응하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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