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리흘라]
멍청한 것으로 위장하는 사람들
세상에는 의도된 바보들이 참 많다
권력은 권력을 쥐지 못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타인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권력을 쓰는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은 돈이고 기득권이고 공인된 폭력인 법 집행이다. 가장 저질이고 하수의 술수가 최상위를 지배하고 있다. 비루하고 천박하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고 허기진 뱃가죽이다. 어찌할 것인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을 것인가 아니면 비굴하지만 아부하고 찬양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아예 단판을 지을 것인가?
뻔하다. 어떠한 포지션을 취할지.
물론 사람 따라 다르고 취향 따라 다르고 신념에 따라 다르고 이념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에 굴종해 몸 사리는 쪽으로 자기의 포지션을 잡는다. 이것이 피식자의 기본 심리다.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낙인찍힌, 살아남고자 하는 처절한 자기 보호 본능이다.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모두 서열을 만든다. 집단이 효율적으로 살아남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유용하기 때문에 체화된 학습유전이다. 서열에 맞게 주어진 것만 하면 되기에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권력자보다 완력이 약하기에 힘으로 하는 것은 완력자가 대신 싸우게 하고 에너지만을 지원하면 되기에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변수는 있을지언정 기본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오며 군집사회가 커지고, 완력으로 하는 힘이, 제도로 시스템으로 변형되었을 뿐이다.
비굴하게 권력에 아부하는 인간들을 본능이라는 미명하에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굴한 심리를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청문회나 국회에 증인으로 나와 답변을 하는 무수히 많은 고관대작들의 행태를 보라.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적어도 동네에 '축 수석 입학' '축 행시 합격' 플래카드 하나쯤은 걸었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나와서 답변하는 수준을 보면 바보 천치도 저렇게 답변하지는 않을 텐데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증인 울렁증 때문이라고? 카메라 기피증 때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의도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똑똑함을 회피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라는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한다. 진실과 팩트를 말하면 될 텐데 왜 그럴까? 정말 모르고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럴까? 천만의 말씀.
바로 자기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관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해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그 자리에서 당장 쫓겨날 것은 명약관화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거짓말로 일관할 수 도 없다.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포지션은 멍청해지는 것으로 위장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답변을 해놓고 나중에 추궁을 받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멍청해지는 것이 사는 길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비굴한 전략이지만 유효한 줄 경험상 알고 있다. 권력은 5년마다 바뀌어 유한하지만 자기는 퇴직금 받을 때까지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유지 방법으로 천박한 멍청함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죄송하게도 그 일은 저의 능력 범위 밖이라 맡기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거절의 의사를 밝히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출세욕과 명예욕이 있는 사람에게는 달콤한 유혹이라 쉽게 거절할 수 없다. 추천받으면 자기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다른 허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도 작을 것이라고 무시하게 된다. 욕심이 화를 부르고 어설픈 답변으로 바보로 낙인찍히더라도 잠시의 쪽팔림을 참으면 영예로운 관직에 오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 이 환상이 의도된 바보를 양산한다.
권력에 굴종하는 인간심리는 '알아서 기는' 형태로 표출된다.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방편 때문에 '알아서 기는' 것이다. 천재 소리 듣던 고관대작들이 하루아침에 바보 천치가 될 리 없다. 권력이 바뀌어도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의 방편으로 의도된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심해 보일 뿐이고 권력이 야만의 폭력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이 비참할 뿐이다.
권력자와 기득권자는 신독(愼獨 ; 홀로 있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삼가다) 해야 하며 시민은 깨어 있어야 사회가 바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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