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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왜 그의 소설이 위대할까?

by 데일리아트


한강의 소설,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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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서사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의 변방으로 취급되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한강의 책은 수상 발표 엿새 만에 100만 부가 팔리며 출판 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한국 독자들은 이제 노벨상 수상작을 ‘번역본’이 아닌 ‘원문’으로 읽는다. 한강이 작품에 불어 넣은 언어의 오감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한강의 소설은 무엇이 다르기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가. 일각에서는 그의 수상 이유를 한림원의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한강이 여성이라는 점을 높게 쳐주어서, 출판사의 끈질긴 로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폄하다. 한강은 ‘소설 그 자체로’ 전례 없는 역사를 이뤄냈다. 이 글에서는 한강 문학의 독특성과 아름다움을 들여다본다.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의 배경인 광주 항쟁(1980년)과 한강 사이에는 물리적,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실제로 한강이 생경하게 5·18을 접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광주 항쟁이 담긴 사진첩에서였다. 이는 5·18을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 『봄날』의 작가 임철우가 광주 항쟁을 ‘직접’ 겪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험하지 않음’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한강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에, 이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사건으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그동안 현대사를 다룬 소설들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에 그쳐 왔지만 『소년이 온다』 는 과거사의 ‘재현’을 넘어 ‘현재화’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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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의 표지.
한강이 이를 위해 선택한 서사 기법은 ‘다중시점’이다. 『소년이 온다』의 중심 서사는 중학생 ‘정대’와 ‘동호’의 이야기다. 정대는 누나를 찾기 위해 동호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가 죽는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상무관에 남아 시신 수습을 돕지만, 이후 계엄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도 끝까지 남아 있다가 죽는다.

이 중심 사건은 여섯 명의 다중시점 화자를 통해 다양하게 변주된다. 1장 「어린 새」에서는 동호를 ‘너’라고 지칭하는 화자가 시신을 수습하는 동호를 관찰하고, 2장 「검은 숨」에서는 죽은 정대의 ‘혼’이 자신의 시체를 불태우는 군인들을 바라본다. 3장 「일곱 개의 뺨」에서는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시신을 돌봤던 ‘은숙’이 죽은 동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4장 「쇠와 피」에서는 ‘나’의 시점에서 시민군 ‘진수’가 고문으로 고통받고 마침내 생을 포기하는 이야기가, 5장 「밤의 눈동자」에서는 은숙과 함께했던 ‘선주’에게 ‘윤’이 시민군으로서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장면이, 마지막 6장 「꽃 핀 쪽으로」에서는 죽은 동호의 늙은 어머니가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이” 하고 자책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은 정대와 동호의 이야기를 각각 다른 6개의 시점과 화자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과거의 정대는 이미 죽었음에도 혼이 되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현재에 개입하고 현재의 은숙과 선주는 여전히 과거의 동호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과거에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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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또 다른 현대사를 다룬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동일하다. 이 작품도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소설가 ‘경하’는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홀로 있는 새를 돌봐주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악몽을 꾸고 꿈속에서 ‘정심’을 만난다. 정심은 4·3으로 인해 실종된 자신의 오빠를 찾다가 세상을 떠난 인선의 어머니이다. 경하는 악몽을 통해 정심과 소통하며 그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한다. 이 소설에도 다중시점이 사용되는데 ‘4·3과 직접 연관이 있는 정심’, ‘정심의 유가족인 인선’, ‘이방인인 경하’ 총 3명의 시점이다. 이를 통해 한강은 과거의 사건에 추력을 부여해 재현된 이야기가 현대의 독자에게 명중하게 한다.

한강이 다중시점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독자들로 하여금 ‘환상성’을 느끼게 하고자 함이다. 다중시점의 큰 특징은 이야기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화자가 많은 탓에 서사가 분절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독자들은 마치 미로에 빠진 것만 같은 상황에 놓인다. 소설의 공간은 왜곡되고 환상성이 부여되어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 독자는 소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위치에서 폭력을 관찰하고 발화하는 또 한 명의 화자로 기능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소설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환상성은 ‘흰’, ‘새’, ‘혼’과 같은 은유적 이미지와, 소설이 품고 있는 ‘시적 언어’의 운율을 통해 극대화된다.

“더 많은 기억이 필요했어. 더 빨리, 끊어지지 않게 기억을 이어가야 했어. 여름밤 마당에서 등목을 했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고귀한 보물 같은, 펌프로 막 길어 올린 차가운 물을, 네가 양동이째 내 끈끈한 등에 끼얹었지. 으흐흐, 몸서리치는 나를 보고 너는 웃었지. 천변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지. 뭉클뭉클한 맞바람의 중심을 가르며 달렸지. 내 하얀 하복 셔츠가 날개같이 퍼덕였지. 뒤에서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면서 힘차게 페달을 밟았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소년이 온다 中)

위 대목을 소리 내 읽어보면 소설의 한 단락임에도 불구하고 리듬감 있게 읽힌다. 소설의 문장들은 ‘~했어’, ‘~했지’, ‘~했다’ , ‘~해’로 이어지며 운율을 만든다.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노랫말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효과는 소설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더욱 느슨하게 한다.

소설에 개입하게 된 독자는 『소년이 온다』가 표면적으로 이야기하는 광주항쟁이라는 폭력 위로 ‘현재’ 겪고 있는, 아니면 ‘이미 겪었던’ 개개인의 폭력을 호출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가정에서 겪었던 폭력일 수도 있고, 학교에서 겪었던 폭력일 수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겪었던 폭력일 수도 있다. 독자들은 시적 문장의 리듬을 타고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낸다. ‘나도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다.’, ‘나도 폭력으로 누군가를 잃어본적이 있다.’, ‘나도 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해 아파한 적이 있다’라고.

독자들은 소설의 인물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겪은 폭력의 경험을 통해, 광주와 제주에서 있었던 폭력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이는 한국 독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강 소설의 ‘환상성’은 한국 현대사와 거리가 먼 외국 독자들까지도 무리 없이 ‘현재화 - 재현’에 참여하게 하여 그들에게 보편적이고 깊은 울림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한강의 문학’이 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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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한강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선명한 폭력의 이미지 때문에 읽기 거북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데 읽기 거북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강 소설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한강은 최근 인터뷰에서 “소설의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꺼내기 쉽지 않지만,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문학이 다루면, 그걸 읽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 안에 있던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한강이 이 소설을 통해 당신 앞에 꺼내 둔 ‘거북한’ 감정을 자세히 들여보면, 어쩌면 그 속에 당신이 놓치고 있던 소중한 감정과 의문과 감각들이 오롯이 담겨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 최윤경, “소설이 ‘오월-죽음’을 사유하는 방식”, 『민주주의와 인권』, 5.18 연구소, 2016.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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