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직 中 1

by MAMA

막둥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후부터 일을 했다. 엄마가 된 후, 나의 첫 직업은 영어 유치원 방과 후 교사였다. 엄마들의 극성이 실현되는 출발지에 와서 현실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어린 나이지만 영어를 꽤 좋아하고 잘 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아이들이 있었던 반면, 영어라면 알파벳 A만 나와도 머리를 쥐어 뜯고 바닥을 기며 몸부림 치는 아이가 있었다. 중산층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 유치원이란 부모의 맞벌이로 성취되는 트로피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원장은 독하게 아이들을 다그쳤고, 부모들에게는 심하게 아부를 했다. 원장도 중산층이라 어쩔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방과 후, 시간은 말 그대로 하원을 늦게까지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스무 명 정도 되었었다. 깡 마른 체구의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교실에서 늦도록 엄마를 기다리며 블록을 쌓고 부수고를 반복했다. 빌딩 숲 사이에 있던 영어 유치원은 답답하기만 했고, 나는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나랑 지내는 시간이 그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 중에 쬐끔의 볕이고 싶어 발품을 팔아 재료를 사고, 유선생의 도움을 받아 만들기와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원장님의 말대로 한 달을 버티는 교사가 없었던 악명 높은 곳답게 아이들의 억눌렸던 에너지가 공격성으로 폭발했었다. 처음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들은 정말 머리 위로 날아 다녔다. 아이들이 못된 건 아니었다. 다만, 배우지 못했을 뿐. 가르침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 아이처럼 엄하게 꾸짖기도 했고, 깔깔대며 같이 놀기도 했다. 두 어 달이 지나자 아이들은 방과 후 교실로 뛰어 들어 왔다. 내게 비벼대는 아이도 생겼고, 깊은 속내를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두 번째 직업은 영어 유치원 하원 도우미였다. 하필이면 또 영어 유치원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때와 차원이 달랐다. 맞벌이가 아니라 외벌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 세시면 하원을 했다. 아빠가 아이들을 기다리는 경우도 많았고, 비서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의사 아버지도, 판사 엄마도 있었다. 아이들은 온순했고 예의가 발랐다. 아이들과의 문제는 거의 없었다.


차량 기사님과 친해졌고, 세상 사는 이야기로 재미가 좋았다. 곳곳에 숨은 맛집을 잘 아시는 기사님 덕에 아이들을 하원시키는 중간 중간에 잘 튀겨 진 쫄깃한 꽈배기도 먹었고, 2900 원하는 짜장면 집에 가서 후루룩 짜장면도 뚝딱했다. 아이스크림 먹는 건 예사였다.


기사님은 환갑이 넘으신 어르신이었다. 한 번은 주말에 강남에 가셔서 검버섯과 기미를 태우시고 반창고를 붙이고 오셔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르신은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참으로 자상하셨다. 참! 나와 기사님이 하원 차량 짝꿍으로 일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아이가 있는데 사실, 그 아이의 아빠의 직업이었다. 두시에 하원하는 남자아이였는데 항상 아빠가 마중을 나왔다. 어르신은 대체 무얼 하길래 두 시에 남자가 집에 있을 수 있냐면서 궁금해하셨다.


세 번째 직업은 남편 후배가 차린 회사의 경리였다. 남편 후배의 직업은 엔지니어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그 친구는 아주 말랐다. 뼈만 앙상한 친구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어쩌면 잘 어울리기도 해 보인다. 늘 야근을 해서 그런지 힘이 없어 비틀비틀 걸었다. 취미는 피아노. 여린 손가락이 컴퓨터 키보드에도 건반 키보드에도 잘 어울렸다.


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그의 까칠한 성격 탓에 선뜻 대답을 해 주지 못 했었다. 남편의 설득으로 도와준다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다. 그는 1년이란 잠깐의 시간에 낡고 낡은 빌라에서 새 아파트 입주권을 사서 계약금을 마련했다. 집부터 사라고 아줌마가 옆에서 부추겨서 혹한 것이 있기는 해도 결국, 그 아파트는 지금 많이 올랐고, 그 보다도 더욱 좋은 일은 그에게 성경책을 선물한 일이었다. 나의 첫 열매이기도 한 그는 초신자였음에도 지금은 어느 교회 청년부 회장직을 맡고 있고, 독실한 반려자를 만나 올 가을 결혼을 한다.


네 번째 직업은 대학병원 검진팀 상담원. 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무척 많다. 책 두세 권은 쓸 수 있을 정도로 매일 에피소드가 빵빵 터지는 곳이었다. 이 이야기부터는 다음 주에........


나는 아직도 구직 중인가 정착 중인가 모르겠다.

그런데 유퀴즈에 나온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창의성이 길러진다고 하셨다. 편향적 사고를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창의성을 아직도 갈망하는 내게 구직이라는 도전은 사고의 관성의 방향을 바꿔주는 가장 효과 빠른 촉매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번째 직업은 근본 없는 졸부 사장이 있던 베이커리 카페 제빵사

여섯 번째 직업 1600명 초등학교 조리실무사

일곱 번째 직업 듣도 보도 못한 부품 회사원....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해야겠다. 긴 더위에 자꾸만 게을러진다. 습한 날씨에 손가락 관절도 마디마디 욱신거린다. 그래도 가을은 오고 겨울도 온다. 더 늙기 전에 더 열심히 살아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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