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구해야 하는 것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관한 노이즈마케팅의 화살은 미국의 우호국과 적대국을 가려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나라들을 가려내기 위함이었다면, 많은 뉴스들로 하여금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 분류가 되었다. 보복관세를 물리고, 미국의 정책과 주장에 반대하는 나라들 예컨대 중국, 캐나다, 프랑스는 현, 트럼프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내의 반미감정이 격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복의 마음을 품었으며, 캐나다 또한 그러하다. 프랑스는 가자지구 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척결하고자 하는 트럼프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 하고 있다. 우방국은 얼추 가려졌고, 중국의 편에 서고자 했던 나라들에게 관세라는 카드를 들어 암담한 미래를 예고한 것 같다. 75개국에 대한 상향된 관세에 대한 시행은 일단, 90일간 유예라는 시간을 벌었다. 그동안 또 미국에 우호적인 협상 카드를 들고 각 국의 수장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매일의 이 시끄러운 소식들은 전 세계 물가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고, 실제 체감하는 불경기는 훨씬 심하다.
그러나,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에만 집중한 비즈니스맨이라고 혀를 차서는 안된다. MADE IN CHINA. 근 이삼십 년간 전 세계가 MADE IN CHINA에 잠식당했다. 저렴한 가격과 낮은 인건비에 현혹되어 각 국의 많은 주요 기술이 중국에 이전되어 법인을 설립했으며, 그러는 동안 자국의 산업과 일자리는 줄었다. 아니, 사라졌다. 각 국이 당면한 현실은 당장 싸게 주고 사 온 물건을 비싸게 주고 사 와야 하는 국가적 손실에 발 등의 불이라 할 수 있으나 자국의 산업 부활을 위해 칼을 빼 든 트럼프 대통령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MADE IN CHINA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산업과 일자리를 잃었는지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접하는 MADE IN CHINA는 볼펜 한 자루에서 공책, 식기, 의류, 가구, 가전, 하다못해 밖에서 사 먹는 커피 한잔의 빨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수없이 많다. 그렇다면 전 세계인들의 소비품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중국이 얼마나 보았을지 상상해 보라.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중국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자국의 산업을 두고 볼 수 없어 칼을 든 것이다. 당장, 싼 제품을 쓸 수 없어 힘들어도, 자국의 산업이 부활되면 경제 성장을 국민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니 기다리고 견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변수는 분명히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민에게 말하고 있는 '견딤'이라는 건, 어쩌면 우리나라에게 진정 필요한 게 아닐까. MADE IN CHINA에 대한 달콤한 유혹의 시험을 이겨내야 할 시련. 이렇게 된 정세를 탓하기보다는 '왜' 인지 무엇이 핵심인지 분별해야 한다.
사람은 살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는다. 희로애락이라는 사자성어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 틈에 어떨 때는 견디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던져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늙어간다. 웬만큼의 평탄함과 완만함 사이에 삶이 있다면 딱히 시련이라 말할 만한 턱이 없거나 높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겠다만, 매번 눈을 들어 본 삶이 아득히 높거나 저만치 폭풍이 예고되었다면 그 삶이 정말 고될 것이다. 시련에는 사실, 정답이 없다. 견딘다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견디지 않는다고 그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시험'이라 여기는 당사자의 생각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딪혀야만 하는 시련들은 이김 끝에 오는 확신 있는 결과와 상충될 때 발생한다. 결과가 불 보듯 뻔한데 시련은 견뎌야 하지만 시련이 달가운 사람은 없다. 게으름, 고난, 나태, 나약함, 유혹 등과 겨루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찰나의 연약한 생각은 순간의 승리를 빼앗기고 만다. 승리를 위해서는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야 한다. 야고보서 1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고통스러운 견딤 중에 기쁘게 여기라니. 말씀은 완벽하다. 시험이기 때문에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터널 끝의 빛.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 정해진 답. 인간이 마땅히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 그래서 기쁨의 확신을 갖고 3절에서 말씀하시듯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처럼 인내하라는 것.
인내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견뎌야 온전히 이룰 수 있다. 인내함 없이는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봄에 움을 트고, 꽃을 피워내는 나무들도 추운 겨울을 견딘다. 하다못해 곤충들도 애벌레를 거쳐 날아오르기까지 참아내고, 수만 번의 날갯짓으로 독수리는 비상한다. 오죽하면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둥지에서 떨어트리겠는가. 인간사나 자연사에 거저 되는 것은 없다. 답을 알고 있다면 답이 없이 견뎌야하는 시련을 끝까지 버텨내라는 것이다.
그때, 시험을 이긴 승리로 가는 과정인 시련 중에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4절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하시고 말씀이 맺어졌다면 얼마나 메몰차겠는가. 방법도 알려주시지 않고, 그저 견디라고 하셨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러신 분이 아니다. 반드시 해결책을 주신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시험 밖에는 허락함이 없으시고 또 피할 길을 주신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말씀은 끝까지 읽어야 하고, 자기 뜻에 따라 아무거나 갖다 붙여서도 안된다. 5절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셨다.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내 뜻대로 내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주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한다. 주님은 '지혜를 구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아무리 뛰어난 피조물인 인간이라도 수천 년 동안 밝혀내지 못한 창조의 신비. 그 창조주의 '지혜'. 인간 역사 상 가장 뛰어나고 전무후무한 태평성대를 누린 솔로몬이 얻고자 했던 그 지혜는 단순히 인간의 지식이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련을 통과하고 있는가?
경제적 어려움인가?
누군가와의 마찰인가?
신체적 괴로움인가?
당장의 원하는 해결된 부의 총족, 완만한 관계, 신체의 나음이 아니라 이를 통과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 내가 원하는 답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 답을 위한 길이 막다른 골목일 수 있는데 미련하게 그 길로 가게 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
기적과 요행을 바라지 말고, 방법을 알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