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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Oct 15. 2024

#2, 오래된 정원

긴 그리움

오래된 작은 정원

사람발길 끊어진 지 오래다

길가로 난 쪽빛 문은

지난 발길의 흔적만 남아 퇴색되고

굳게 닫힌 지 오래다

정원의 꽃들은 돌 보는 이 없어

꽃들은 잡초 속에서 갇혀

성글게 제 각각 지라고 있다.

타발로 피던 수국도 흔적만 남아있고

작약조차 떨어져 잎마저 시들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꽃은 떨어지고 잎마저 시들어

언제 화려한 날이 있었는지 흔적 없어진 지 오래다

정원 안에 울려 넘치던 웃음소리 그립다

뜰안엔 추억과 긴 그리움만 드리우고

연못의 맑은 물 마르자 비단잉어마저 떠났구나

정원 가득 퍼지든 꽃내음과

다향(茶香) 은은히 퍼져

담장 밖 지나는 이 걸음 멈추게 하였건만

남은 것은 살 떨어지고 낡은 발뿐,

긴 그리움에 얼굴은 초췌해지고

화려하고 맑은 웃음소리 아득한 기억만 남았다

밤 되면 불 밝혀주는 이 없어 어둠만 깊어가고

바람소리에 떨어진 꽃잎만 사운 댄다

누가 오는가 하고 가만히 귀 기울여도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밤은 깊어가도 닫힌 문은 열리지 않으니

꽃들도 그리움에 지쳐

피어나지 않으려 하고 떠날 채비 한다

이제 곧 찬바람 불고 풀잎에 찬이슬 맺힐 텐데

그나마 피었던 꽃조차 시들어 가는구나

무성하던 잡초마저 시들어 간다

기다리다 지친 규중 꽃 능소화가

치마단 걷어 올리고 돌담을 타고 오른다.

이제 곧 여름도 다 가건만

닫힌 문은 열릴 기색 없어

이대로 시들어 가는 것이 아쉬워

사람 그리운 능소화 불그스레한 얼굴로

월장하여 흐드러지게 흘러내린다.

9월의 끝자락을 붙들고

오래된 정원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모두들 떠나간다.

2024. 9. 5. 작성했었다.

죽림헌

#오래된 정원 #능소화 #비단잉어 #능소화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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