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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일장춘몽
고향을 떠나던 날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었지,
몇 해만 지내고 곧 돌아 가리라 생각했건만
세월 무심하여 수십 년이 흘렀다
곱던 얼굴은 사라지고
거울 속엔 흰머리 성성한 낮선이
꽃은 피고 꽃이 지며
그 옛날 함께 십리벚꽃 길을 걸었을 때
봄바람에 벚꽃 눈이 날렸었지
함께 다니던 이 떠나고 나니
그 길은 꿈속에서도 아득하네
홀로 남아 서리맞고 눈 내린 겨울 되니
내년 봄 꽃 필 때는 모두 모여 꽃구경 가려나
시절 따라 꽃피고 지니 꽃향기에 취하여
이런 날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문득 생각하니
금년이 언제인가
여기는 어디인지
고개 돌려 돌아보니
눈길 닿는 곳이 아련하고
온길이 참으로 아득하다
어디든 사는 곳이 고향이고 집이라 하였건만
어찌 이리 정이 들지 않고 낯설기만 한지
차라리 일장춘몽으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고향땅 고향친구들이었음
그러나 그곳도 이미 옛 곳은 아니겠지.
모두 떠난 그곳도 낯선 땅, 낯선 사람
눈물 어른거려 기억조차 눈물 속에 일렁인다.
2024.12.24 죽림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