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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l 21. 2024

다시 읽은 창랑정기(滄浪亭記)

창랑정기, 유진오선생님

어제 밤 자정을 넘어 시끄럽게 계속 알람이 울렸다.  내가 구독해둔 글이 올랐나보다.

글을 읽어라는 알람이었다. 새글이 올랐다고,

시간이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 1시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수면제의 기운과 눈이 지쳐 잠을 자야 하건만,

읽던 것이 있어 계속 침대에 앉아 미련을 부리고 있었다.

가급적 자정을 기해서는 글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연재시기 알림이 뜨면 글을 쓰 두었던 것을 아침 일찍 올린다.

일찍이라 해봐야 AM7시 정도다.

이정도면 나도 수면부족에 시달리지도 않고 다른 분들도 출근 준비나

식사, 아침운동 등으로 일어나서 움직일 테니까, 방해하지 않는 시간이 된다.

좀 덜 미안하다.


창랑정기(滄浪亭記)를 다시 읽고있었다.

문득 어제 다시 생각이 나서 읽어 보고싶었다.  

시인이자 작가이며 건국 초대헌법기초위원, 법제처장, 고려대총장, 신민당당수 등

많은 글과 업적을 남긴 분 유진오선생님이다.


작가님, 유진오씨, 총장님, 처장님 신민당수였으니 호칭이 힘들었다.

학창시절에는 유진오작가가 더 익숙하였다.

<김강사와 T교수> <유진오단편집> <젊은 세대에 부치는 서> <귀향>

외에도 많이 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공무원이 되고는 법제처장, 신민당당수가 더 가까웠다.

내가 어른이 되었고 시대의 흐름때문에 그랬던것 같다.

경성제국대학 수석입학하였다는 것도 나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법학과를 나오셨다. 그렇지만 시인이시고 작가다.

나는 유진오선생(先生)으로 호칭한다.


[나는 참 묘한 분들을 알았다.

초대 농림부장관의 자제분을 상사로 모셨다.

전형적인 선비같은 대쪽같은 분이셨다]


2023년 9월 블로그에 글을 쓰고 T스토리에 당송팔대가를 정리하고

송대의 소식(蘇軾)을 정리하며 <창랑정기(滄浪亭記)>를 올렸었다.

항주에서 만들어 드신 돼지고기요리가 동파육이다. 소동파는소식의 별칭이다


소식은 송대의 문인, 학자, 개혁정치가, 당대의 변려체(騈儷體)문장을 배척하고

산문형식의 문장을 장려하는 학자 중의 한명이었다.

성정이 매우 강직하였다. 타협을 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 조용히 강직한분, 학자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으로 애민정신이 강한 분이었다.

관직에 있으면서 유배와 좌천이 일상인 분이었다.


항주로 좌천되었을 때 장강이 홍수 때마다 범람하여 많은 농지가 소실되고,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항주지사시절 치수작업으로 만든것이 항주서호(西湖)다.

서호는 너무나 크서 항주로 여행가는 사람들은 서호를 원래있던 큰 호수나 바다로 안다.

나도 그랬다. 배를 타고 서호를 유람할 때, 호수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호수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소식이 홍수를 막기위하여 만든것이 서호다. 아예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었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나(사실상 유배) 소주에 머물 때 창랑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머물면서

지은 작품이 창랑정기다.

사실 창랑정은 소순흠이 소유한 정원이다.

그곳에 머물면서 호수옆에 자그마한 정자를 지은것이 창랑정이다

창랑정기를 읽어보고 싶었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했을까

무척 궁금하였다.

소주(蘇州)는 물의 도시이며 운하의 도시이고 정원의 도시다. 또한 중국의 베니스,  아시아의 베니스라 칭한다.

도시 전체가 장강의 지류를 타고 구불구불 운하로 물을 품은 물의 도시다.

소주에는 부호와 관료와 대지주들의 별장들, 정원들이 있다.

유원, 졸정원외 사자림 등 많은 정원이 있다. 내가 여행한 곳이다.


창랑정기가 번역되어 있지않을까, 하고 작년에 교보문고에서 검색하다 창랑정기를 찾았다.

소식(蘇軾)의 창랑정기(滄浪亭記)일까, 하고 구매하였더니 유진오선생의 창랑정기였다.


유진오선생님의 창랑정기도 좋았다. 역사의 한 장으로 들어갔다 나온듯하였다

악양루기(岳陽樓記)도 비슷하다.

송대 범중엄의 역작 악양루기를 보고싶었다.

창랑정기도 유명하지만, 악양루기도 빼어난 작품으로 중국교과서에 일부가 실리고

송대이후 문인들은 그 산문시를 암송하였다고 하였다.

부족한 실력으로 꼭 한번 읽어 보고싶었다.


책은 한자 원문판 악양루기가 있었다. e북으로 구매하여 읽다가 기겁을 할뻔했다.

한자로 된 산문시가 내가 얼마나 읽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래도 뒤에 한글해설이 있을 줄 알았다. 없었다. 아직 그대로다. 

다시 찾다가 신 악양루기(新 岳陽樓記)를 구입하였더니

현진건 작가의 단편소설이었다. 중국고전은 중국어를 번역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 글을 쓴 배경과 자연과 느낌을 알고 싶은 것이었는데 실패하였다.        


어제밤 문득 다시 읽고 싶어 창랑정기를 읽고 있었다.

알람은 무시하고 읽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로 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창랑정은 당인리쪽의 한강서쪽에 있다하여 서강이라 하는 곳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곳에 유진오선생님의 삼종 증조부이신 이조판서 김종호의 별장이있었다.

서강에 계신 조정대신이라 서강대신이라 불렀다.

이조판서이니 오늘날의 기획재정부장관이다. 재경부장관, 경제부총리인 것이다.

 

그 대신이 머문 곳으로 당시 200~300년정도된 오랜 한옥으로 70간이라하였다.

그곳을 서강대신이 창랑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그곳에서 보는 정취와 경치가 얼마나 좋았으면

창랑정이라 명하였을지 짐작만 해 본다.


서강대신은 대원군 집정시기에 이조판서였다

대원군이 물러나고 열국이 조선땅에 들어 왔을 때 서강대신은 조정에서 물러나 은둔하였던 곳이다.

그곳 오래된 한옥 아니 누옥(漏屋)의 이름이 창랑정(滄浪亭)이었다.


지금 서강에 있던 300년된 70간의 누옥 창랑정은 사라졌다.

서강대교아래에 있던 작은 언덕으로 된 섬이 없어지고 창랑정도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졌다.


글을 쓰시고 시를 쓰시는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해질녘 한강으로 짭쪼름한 바닷물이 만조로 강으로 거스러 올라 올 때,

석양에 물든 한강의 풍경과 빛 바랜 누옥(漏屋)에 비친 석양 등의 묘사는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 어르신은 대쪽같은 성격으로 조선조정에 있었으나 타협을 하지않고 관직에서

물러나, 일본을 통하여 들어 오는 신문화에 눈을 감고 귀를 닫으셨다.

적어도 조선말 조정에서 스스로 물러나 은둔하신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유진오선생님께서 1906년 5월13일에 태어나셨다, 나의 할머니께서 비슷한 시기에

이세상에 오셨으니 할머니께서 왜 나에게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셨고 돌아가실때까지 은발의 쪽진머리에 은비녀를 꼽고

마지막까지 한복을 곱게 입고 계셨는지 짐작이 갔다. 지조였을 것이다.


유진오선생님은 지금 우리헌법의 모체를 만드신 분들 중 한분이며 지식층이다

그리고 법제처장이었다.

콩심은데 콩이 나신것이다.

뿌리부터 애국자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있다. 조용한 애국,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있는 일을 하시고 대한민국의 정초(定礎)를 만드신 분이다.


나에게 창랑정기는 참 묘한 책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늘이 제헌절이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세월가는 줄 모른다.

새글 알람이 울면 그 글읽고 글쓰며 짬내어 책읽고 하다보니 흐르는 세월을 잊었다.

어제밤 창랑정기와 유진오작가에서 오늘 제헌절로 이어졌다.

어제 밤 문득 든 창랑정기가 이유가 있었다.

#유진오 #창랑정 #소식 #소동파 #서강대신 #제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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