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 - 2020.05.27 / 한국 발라드
https://youtu.be/gJooY7uS8ZA?si=KsMoudeF1hESWZVq
[곡 소개]
삶의 무게만큼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힘에 부칠 때쯤, 아무도 알아 주지 못하더라도 그 끝에 분명히 있을 찬란한 빛과 한 뼘 더 성장해있을 우리를 위해.
[가사 공유]
앞이 캄캄해서 더 나아가기엔 너무 힘들어서
잠시 뒤를 돌아봤을 땐
내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아서
다시 한걸음 내디뎠지만
사실 나도 그리 강하진 않아
보이진 않아도 상처투성이야
나약해 보이기 싫어서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거야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나의 아픔을 마주하면
무너져 내릴까 봐
지켜주는 거야
또 견디어 보는 거야
사실 나도 그리 강하진 않아
보이진 않아도 상처투성이야
나약해 보이기 싫어서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거야
나의 간절했던 바람들과
때론 이기적이었던 기도들이
흐르고 흘러 그곳에 닿을 수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텐데
언젠가는 결국 끝이 나겠지
그 뒤엔 무언가 날 위로해주겠지
많은 걸 잃어서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내가 나를 맞이하겠지
그보다 나은 내가 기다리겠지
[사색 나눔]
비교적 최근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로부터 들은 한 마디가 있었고, 이는 제 마음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지웅님은 웃고 있는 얼굴에 눈을 보면 슬픔이 느껴져요."
대개는 저를 처음으로 만나면 가장 먼저 '미소'를 보고 긍정적인 의미로 칭찬을 남겨줍니다. 그게 지금까지 사회 속에서 살아온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죠.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을 알기에,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어내는 가장 좋은 것이기에. 또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에, 미소는 저의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어쩌면 타고나기를 감정의 민감함을 잘 느끼는 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나약해 보이거나, 상처투성이임을 가리고 싶어서 보이는 건 그리 좋지 않음을 그 사람은 아주 잘 안 것입니다. 즉, 이 노래에서 호소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거야."는 제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철저히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사실 강하지 않다는 걸,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상처투성이라는 걸 말입니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저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만큼은 나눠야만 했습니다. 나의 나약한 모습들을,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생각을 반사적으로 나오는 미소를 뺀 채로.
말하기 직전까지는 그 아픔의 수준에 따라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건 분명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이상 주저할 수 없었죠. 이제는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기에 앞서, 저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더디더라도 요즘 용기를 내며, 지극히 제 이야기를 꺼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반응은 저의 마음을 헤아려줬고, 도리어 저의 이기적인 기도들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더욱 진솔한 저를 마주하기를 포기하지 말고 견뎌내기를 응원해 줬던 것입니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 용기 내었던 순간의 끝은 무엇일까 사색해 봅니다. 그리고 몇 가지의 결론들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먼저, 언젠가는 반드시 내 안의 난제는 끝을 본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그 끝이 절망이 아니길 바라듯 저 또한 행복하길 바라니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삶 가운데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를 찾아갈 거라는 믿음입니다. 저로서는 현재 '글 쓰기'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 감사할 따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마주할 또 다른 내가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소망입니다. 수고 많았다고, 견뎌내 줘서 고맙다고 다독임 받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때의 내가 보다 나은 사람이길 마음 다해 바라봅니다.
여러분들도 이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 진솔한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길 더불어 권해봅니다. 그중 상처가 있는 자리에는 방치하기보다 그 위에 연고를 발라준다면, 혼자서 어렵다면 망설이기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게 기대 보는 건 어떠신지요. 당장은 저처럼 어려울지라도, 보다 나은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우리 모두 살아가봅시다. 언젠가 그런 '나'와 마주할 그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