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잔치 한번 거하군.
"10시 정각! 시작!"
"아~~ 통화 중"
"다시~~ 윽~ 통화 중"
가족이 총동원되어 계속 전화를 돌려봅니다.
여간 쉽지 않은 예약입니다.
가족이 총동원되어 예약하려는 곳은 워커힐 내에 있는 식당입니다.
'예약하고 싶은 달 2개월 전 1일 오전 10시에 예약이 시작되는데 금방 마감되니 운도 좋아야 한다.'는
큰딸의 얘기를 듣고 온 가족이 모여 각자 전화기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작은딸은 두 개의 전화기를 양손에 들고 대단한 스킬을 보여 줍니다.
그러던 중 작은딸의 한 전화기에 연결음이 들렸습니다.
"와~~ 연결됐다!" 하더니 큰딸에게 전화기를 패스합니다.
큰딸이 예약을 완료합니다.
가족들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예약됨을 축하합니다.
이 예약의 전말은 지난해 연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 가족들은 경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올해의 우리 가족 10대 뉴스'와 '새해의 이슈'를 얘기하던 중 내 60번째 생일 얘기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엄마가 고생 많았으니 외가댁 식구들과 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자."라고 제안했고
장소 얘기를 하던 중 워커힐이 당첨되었습니다.
예약하기도 어렵고 비싸기도 한 곳에서, 그것도 요즘 누가 환갑생일을 하냐며 난 안 하겠다고 사양했습니다.
친정식구들도 부담스러워 오지 않을 거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불도저 성격에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한술 더 떠 딸들은 초청장까지 만들어 친정식구들에게 보냈습니다.
친정식구들은 의외로 모두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D-day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면 "워커힐이다! 며칠 있으면 가겠네?" 하며 남편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의 60회 생일엔 시댁 가족들과 조촐한 식사자리를 가졌었습니다.
그때에 비해 너무 거창한 생일잔치가 되었습니다.
역시나, 참석하기로 얘기는 했지만 부담스러워하는 동생들에게,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 함께 마음고생한 친정식구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사는 거라 생각하고 편하게 오라고 했습니다.
이왕 이리된 거 나는 신데렐라가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화장도 하고 딸들이 골라준 예쁜 원피스도 꺼냅니다.
멋진 곳에서 하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사실, 화장을 한다고 달라지는 얼굴은 아니지만 정성껏 꾸며 봅니다.
남편과 작은딸과 함께 워커힐호텔로 출발합니다.
작은딸이 "언니 결혼식 이후 가장 설레는 외출이네?" 하는 얘기에 남편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워커힐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여행온 사람들, 돌잔치를 위해 한복으로 예쁘게 차려입은 가족들 사이 '내가 이런 곳에서 생일잔치를 하다니!' '생일잔치 한번 거하군!' 생각하며 앉아있는 내 모습이 약간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가족들과 식당 룸으로 들어가니 한강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습니다.
사위가 준비한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 맛있는 식사와 함께 화기애애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딸 환갑 생일에 노인이 뭘 가니? 난 안 갈래!" 하시던 엄마도 곱게 차려입고 오셨습니다.
사진도 찍고 코스로 나오는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식사하고 얘기하다 보니 3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예쁘고 맛있는 음식으로 식사하는 가족들을 보며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려운 시절 힘이 되고 응원해 준 친정식구들에게 좋은 곳에서 대접하고 싶어 한 남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받은 하루였습니다.
내가 주인공이 된 날.
조금은 어색했지만 나름 즐거워하며 즐겼습니다.
예쁜 옷, 맛있는 음식, 예쁜 꽃바구니와 꽃다발.
남편과 딸들 그리고 사위의 사랑 가득한 축하를 받으며 신데렐라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시 또 좋은 추억을 조금씩 꺼내보며 열심히 살아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
가족들을 모두 배웅하고 남편과 촌집으로 간 나는 예쁜 옷을 벗어놓고 작업복을 입고 텃밭으로 갑니다.
꿈같이 흐른 신데렐라의 하루는 오랫동안 기억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