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사전 반응도 없었다.
그냥 흘렀다.
둘째가 8개월에 쯤
갑작스런 설사와 구토로
아이는 삽시간에 수척해졌다.
의료지식은 없어도
응급상황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대형병원 응급실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수액부터 맞춰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맡겼다.
하지만 서너 번의 시도 끝에도
혈관을 찾지 못했다.
더 큰 대형병원을 가보라 하셨다.
다음 병원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늘어진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수액을 맞추려 애를 쓰셨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위로, 아래로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몇 번이고 주사바늘을 찔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혈관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탈수 때문이라고 했다.
급한대로 이온수를 조금씩 먹이며
그렇게 몇시간을 버텼다.
그날 밤,
나는 혼자였다.
아이를 안고 병실 침대에 누웠다.
아이의 숨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이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병원이니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렇게 믿으려 했지만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토록 무서울 줄은 몰랐다.
다음날 아침
각 과의 수간호사 선생님들이 대기 하고 계셨다.
처치실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잠시의 지체도 없이
아이의 사지를 한 분 씩 붙잡았다.
울 힘도 없던 아이는
주사바늘이 들어가도 잠깐 움직이고 말았다.
“페일”
다시,
또 다시.
나는 그 때
내 아이를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분들께 아이를 맡기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수십번의 시도 끝에
누군가 바늘의 길이를 바꿨다.
그리고-
“됐다“
압박하던 고무줄이 풀렸다.
내 다리도 풀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눈물 범벅인채로
”감사합니다.” 만 반복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토닥이며 말했다
“엄마 고생했어요.
엄마 진짜 고생했어요.
왜 애를 힘들게 하냐고 따지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이 대신 내가 아플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