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년차 직장인 Jul 05. 2024

4. 나에게 공대생 DNA는 없었다.

한때 과제로 준비하던 애플리케이션 메인화면. 이걸 보고 교수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


기대했던 대학, 원했던 학과는 아니었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었을까.


이공계면 졸업 후 취업 못해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내심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다잡았다.


하면 될 줄 알았다. 이런 자신감이 파사삭 부서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전공은 소프트웨어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곤 SNS나 포털 서치, 학교 과제 등이 전부였던 내가 프로그래밍, 통신, 보안을 학습한다니.


어느 과목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특히 프로그래밍 강의는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프로그래밍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습 중심의 강의인데, 영문 타자 속도가 100도 채 나오지 않는 나에게 강의 내용을 이해할 여유 따윈 없었다.


수업 1분 1초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학기 내내 계속됐다. 하지만 출석이라도 해야 중간은 갈 수 있었기에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 덕에 겨우 중간은 갔다. 'C언어는 C+이라 C언어다'라는 구전의 주인공이 됐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1학년, 2학년을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다 보니 빼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어찌어찌 동기들의 꽁무니를 쫓을 순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회의감이 몰려왔다. 대체 이렇게 해서 남는 게 뭘까 싶었다.


결국 나는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결정했다.


21살이면 무엇이든 새로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기에 다시 한번 꿈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예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당시엔 여기만 아니면 다 괜찮을 거 같았고, 편입을 수단 삼아 탈출을 시도했다.


*오로지 글쓴이 기억에만 의존해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이전 03화 3. 기자가 꿈이라던 문과생은 공대생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