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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Oct 25. 2023

흔적

세월

따뜻한 봄이 오면 품었던 생명들을 내어준다. 여기저기서 견주어 태어나느라 예쁜 소리들을 낸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풀벌레들도 모두 잠에서 깨어난다. 많은 새로운 생명들이 세상을 만들 때 우리의 마음도 분주해진다. 풋풋한 계절 그래서 좋다.


하지만 그 계절을 시기하는 여름이 곧 따라오면, 모든 생명들은 더욱 활개를 치며 온 세상을 푸르게 뒤덮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륵 흘러도 낮이 길어 좋다. 시원한 나무 그늘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갖가지 새 들의 합창은 내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기분이 든다.


더위에 지칠까 염려되어 이어서 가을이 오면, 옷들을 갈아입힌다. 물감을 풀어 던진 듯 아름다운 색깔만을 골라 잔뜩 물들이고 한껏 뽐내는 것을 보면 반할 수밖에 없다. 내내 품고 있던 알곡들을 마음껏 내어주고는 이제 쉴 준비를 한다. 너그러운 마음을 담아 가득히 선물을 준다. 고맙기도 해라.


그렇게 봄부터 준비를 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는 다음 해를 준비하기 위해 겨울이 오면,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여 꼭꼭 숨긴다. 떨어진 잎새들로 켜켜이 덮어놓고 그 위를 다시 눈으로 덮어준다. 그렇게 생명의 씨앗을 품고 새찬 바람으로 꽁꽁 얼려 단련을 시켜 다시 우리에게 내어줄 심산이다


이렇게 한 해가 왔다가 가면 우리에게는 나이라는 흔적이 남는다. 그 나이는 단지 나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자연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같이 한 탓에 그들이 겪은 모든 것을 함께 겪어준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누군가는 기쁨으로 누군가는 슬픔으로 왔겠지만 그러한 해를 거듭하면 모두가 기쁘고 슬픔으로 얼룩이 진다. 그 안에 우리는 나잇값을 얻게 된다.


나이에 값이 주어지는 것이니 해마다 달라지는 그 나잇값 또한 달라질 것이다. 나무에는 테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에게는 값으로 주어진다. 나무의 나이테는 눈으로 보아 알 수 있지만 사람의 나잇값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함께 있기에 그 마음을 측량하는 것이 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이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나잇값이 나오리라.


그러니, 한 해가 거듭할수록 늙는 것이라는 말보다 노랫말에서 처럼 익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해마다 우리에게 흔적으로 남는 그 값을 잘 만들고 잘 익어가게 해야겠다.


♧위 그림은 AI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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