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보인 세상
늦게 다시 이어 배우고 활동을 하게 된 태권도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내 삶의 좌표가 되었다. 10장에서 언급했듯이, 심판 생활은 움츠러들었던 나 자신을 일으키고 계속 도전을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유일한 시간이었다.
심판에서 협회 이사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해외를 다니게 되었고, 국내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해외 태권도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단순히 스포츠를 전파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전파하는 일이다.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 몇 개의 나라에서는 태권도를 학교 교과목으로 지정하여 수업을 하기도 하고, 태권도는 우리나라 말로 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그들이 우리나라말을 배우려 노력하며 실제로 말을 잘하기도 한다. 이는 지금의 K-POP의 세계화에도 크게 밑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자랑스럽다. 단지 경기도 태권도협회의 임원이라는 이유로 이 모두를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닌데도, 애국심이 절로 생기고 우리나라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태권도는 신이 우리나라에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이면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노력이 있다. 1970년대부터 해외에 태권도 하나만을 가지고 우리나라 대사관이 없었어도 공산국가도 상관하지 않고 들어간 원로 사범님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태권도는 전 세계 242개 나라 중 212개 나라에 전파되었고, 올림픽 종목으로도 채택될 수 있었다. 그들의 노고에 태권도인으로서 마땅히 고개를 숙여 감사한다.
코로나 막바지에 세계에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시합을 개최했을 때, 한 사범님이 10명의 선수를 참가시키기 위해 몇 개월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직접 작은 버스를 운전하여 3일 동안 이동해 온 것을 생각하니 그 마음에 감동이 되었고 눈물이 났다.
앞서 내가 배운 사랑이 담긴 관심은 이처럼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善)을 발견하고, 그 노력을 소중하게 다루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태권도를 통해 세상을 크고 넓게 보게 되었다.
나는 나의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태권도 발전에 힘쓰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고,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힘든 환경에서 그 모두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분들에게, 적게나마 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적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고 보니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의 일을 통해 세상을 보는 지금 참 행복하다. 이 행복은 짜릿하다. 태권도라는 나의 늦깎이 일이 나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 힘을 주고, 세상을 향한 관심을 품게 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