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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와 일이 Sep 27. 2022

30화 까미노 천사들을 만나다.(28일 차)

(2022.4.21. 목)

*. 라구나 데 카스티아(Lagua de Castilla)- 뜨리아까스떼야(Triacastela)(25Km 7시 00분 출발- 15시 00분 도착)                    

   <상세 일정 :   라구나 데 카스티아 (Laguna de Castilla 0.0km) → 오 세브레이로 (O Cebreiro 3.0km) →  리냐레스(Linares 6.0km) →  산 로께 언덕(Alto de San Roque 7.0km) →  오스삐딸 다 꼰데사(Hospotal da Condesa 9.0km) →  빠도르넬로(Padomelo 11.5km) →  뽀이오 언덕(Alto do Polo 12.0km) →  폰프리아(Fonfria 15.0km) →  오비두에도(O Biduedo 17.5km) →  필로발(Filoval 21.0km) →  빠산떼스(Pasantes 22.5km) →  라밀(Ramil 23.5km) →  뜨리아까스떼야(Triacastela 25km)>


< by 옥이(개미)>


  순례자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새벽, 라구나 데 카스티아(Lagua de Castilla)를 떠나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를 향해 오릅니다. 상현달이 아직도 서쪽 하늘 높이 걸려 있는데 동쪽 하늘에 벌써 붉은 기운이 퍼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그리 힘들더니 오늘 아침은 정상(1,350m)을 향한 발걸음이 가볍고 감흥도 다릅니다. 가깝고 먼 산맥들이 겹쳐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냅니다. 진창이었던 길이 새벽 찬 공기에 살짝 얼어 보송보송해 걷기에 좋습니다.  

   

<오 세브레이로 정상을 향하여>
< 오 세브레이로 가는 길목에서>


시나브로 오르다 보니 마을이 저 아래에 있습니다. 관목 사이로 작은 돌에 누군가 글을 써 놓았습니다.

“STOP! LOOK! ENJOY!”

돌아보니 우리가 비바람 맞으며 걸어온 능선에 해가 떠오르면서 만들어 내는 풍경이 기가 막힙니다.


  어느새 갈리시아와 카스티아 이 레온(Castella y Leon)의 경계석이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갈리시아 지방입니다. 어제저녁 알베르게 식당에서 갈리시아 수프, 흡사 우리의 근댓국 같은 요리를 우연히 먹으며 음식으로 이미 인사를 했었지요. 기념사진을 찍으며 경계석을 보니 남은 숫자 표시를 소수점 세 자리까지 자세하게 기록을 해놓은 것이 지금껏 본 것과 다릅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더 가봐야 알겠습니다.

  관목숲을 따라 올라가니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정상이 보입니다. 돌담으로 쌓인 계단을 오르니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킨 선구자 돈 엘리아스 발리냐의 흉상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주인공은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고,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분이라 합니다. 한 사람의 노력 덕분으로 소수의 순례로 끝날 수 있었던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부활이 일어난 것이지요. 마을에는 9세기에 건축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는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도 신비로운 성체와 성배의 기적이 일어난 곳이라 합니다. 고풍스럽고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성당이나 안에 들어가 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듭니다. 그 맞은편 너른 구릉을 오르니 산 아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광활하고 웅장한 모습에 정신 팔려 사진을 여러 장 찍으나 그 감흥을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손도 시리고 정상의 바람이 차갑기도 하여 얼른 내려옵니다.


 국도 곁으로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어제 이곳에서 잠을 잔 페트루스 아저씨가 위쪽 길과 아래쪽 길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후반 체력이 떨어진 우리는 쉬운 아랫길을 선택합니다. 내려가는 길은 어제 내린 눈이 길 한편에 쌓여 있고 적당히 편편하고 힘들지 않습니다. 산 아랫마을의 정경이 그림처럼 펼쳐 있고, 새의 경쾌한 지저귐과 산비둘기의 구슬픈 소리가 길가에 퍼집니다. 얼마 걷지 않아 1,270 고지 산 로께 언덕(Alto de San Roque)에 도착하고, 바람에 날아갈 듯한 모자를 부여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힘차게 지팡이를 잡고 걸어가는 순례자 동상을 만납니다. 어제 비바람에 산을 오르던 우리의 모습입니다.


 조금 있으니 햇볕이 고루 비칩니다. 새벽의 한기가 가시고 따뜻한 기온이 몸을 감싸니, 행복감이 샘물처럼 솟구쳐 오릅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밝은 미소가 더욱 정겹게 다가옵니다.

행복이 뭐 별거인가요? 길 위에서는 춥지 않고 따뜻함만 있어도 이렇게 좋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고 묘지도 지납니다. 스페인 마을의 출구에는 그 마을의 묘지가 있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걷는 동안 이 길 위에는 많은 사람들의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공간이 길 위에 함께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트레킹 길에서 공동묘지를 지날 때

 지금 여러분이 지나는 그 길에 내가 있었다. 란 묘비명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메멘토 모리’는 죽음에 대한 숙명론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우쳐 주는 죽음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산 위에서 점점이 보였던 마을이 바로 앞에 나타납니다. 겨우내 무너졌던 담장을 고치고 농사를 위한 손길이 바쁩니다. 마침 샘물이 있어 물을 마시고 다음 길을 위해 수통에 담습니다.

   내려가는 길이라고 내리막만 있지 않지요. 빠도르넬로(Padornelo)에서 뽀이오 언덕(Alto do Polo)으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며 순례자들의 발길을 더디게 합니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순간 한계령 같은 휴게소가 나옵니다. 오렌지 주스와 에스파냐 오믈렛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갑니다.


앞 쪽으로 아름다운 오르비오 산이 펼쳐져 있고 저 아래로 뜨리아까스떼야(Triacastela)가 멀리 내다보이는 산 길은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니 이곳은 육우를 방목하는 목축업이 주를 이룹니다. 목가적이라는 표현이 매우 잘 어울리는 풍경이 길 아래로 아득히 펼쳐집니다.

하루 종일 초원에 소가 뒹구는 모습과 소똥 냄새에 질릴 때쯤 뜨리아 까스떼야(Triacastela)에 도착합니다. 메일로 알베르게를 예약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방이 없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오늘도 많은 순례자들과 밤을 같이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한국 젊은 학생을 숙소에서 만났습니다. 팜플로나에서 혼자 출발했다는데 아주 씩씩합니다. 맞은편 숙소에 유튜버로 유명한 아이 둘을 데리고 순례길에 있는 젊은 엄마가 묵고 있다고 합니다.

  그냥 우연히 선물처럼 이들을 저녁 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엄마가 이혼하고 혼자서 이 길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린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합니다. 다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드디어 실행에 옮긴 것이지요. 아이들과 다음 일정을 의논하고 함께 격려하며 길을 가는 열린 교육의 현장을 이곳 까미노에서 보게 되다니 참으로 대견한 삼 모자입니다. 남편은 인터뷰에서 ‘까미노 역사상 유례없는 일’ 일 것이라고 격찬합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당차게 말하는 젊은 엄마와 진우, 하람이에게 꼭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1,350M를 하루 만에 내려와서인지 발목이 아픕니다. 생각해보니 27일 동안 650km를 걸어오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혹사했으니 아플 만도 하지요... 발목 보호대도 다시 준비하고 마사지를 통해 내일을 준비해야겠습니다.     



< by 일이(베짱이) >


  밤은 비바람을 재우고, 고요한 동녘 하늘 위로 아침 기운이 붉게 퍼져 오른다. 수면의 질은 아침 커디션을 보장한다. 해발고도가 1,200m가 넘는 고지대인 라구나 데 까스티야 (Laguna de Castilla) 지대는 관목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새벽 해가 떠 오르기 전의 신선한 대기는 쌀쌀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이른 아침 길이 주는 선물이다. 어제의 악천후는 아스라이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오는 신비로운 대자연은 언제나 경이롭다. 서녘 하늘 위로 아직 지지 않은 반달이 걸려 있다. 숙소에 다른 순례자들의 신발이 여러 켤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좀 이른 출발이다.  

완만한 능선길은 물이 빠져 걷기 좋은 길로 변해 있었다.  오르고 또 오르면서 펼쳐지는 거대한 산등성이 위로 구름과 해가 연출하는 빛과 색의 파노라마는 시시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 레온과 갈리시아의 경계석>

드디어 카스티아 이 레온(Castella y Leon)과 갈리시아(Galicia)의 경계석이 보인다.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로 한 발 더 가까이 들어서고 있다는 시그널이어서 묘한 심리적 안도감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도 160km 이상은 더 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걱정보다는 650km를 걸어왔다는 자부심에 취하여 힘든 줄 모르고 길을 오른다.  몸이 지치는 오후보다는 오전의 길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이 오감을 더 예민하게 자극한다.  산굽이를 돌며 돌며 지나 온 길이 조금씩 멀어지며 시야는 더 넓어진다. 이때 감지되는 원근감의 쾌감은 산길을 오른 자의 땀과 수고를 덜어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즐거움이다.

저 아래로 까마득히 고개를 숙여야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있다. 어제 하루 종일 비바람에 지친 심신을 따뜻하게 씻기고 위로해 준 우리들의 알베르게가 있다. 그 곁으로 우사들과 앙증 맞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늑한 마을이 고개를 하나 더 돌아서니 이제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 오 세브레이로 정상에서 >

세브레이로(O Cebreiro) 정상에는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 안개 사이로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햇살과 찬 대기의 맑고 밝은 기운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돌담이 마치 성벽처럼 주욱 둘러서 있다. 먼저 오른 순례자들이 돌담에 걸터앉아 명상에 잠긴 모습이 주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며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몇 계단을 오르니 돌담 위로 전망대가 있다.

소수만이 걷던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흥시킨 이 길의 선구적 개척자이자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Real)의 교구 사제였던 ‘돈 엘리아스 발리냐 삼피드로(Don Elias Valina Sampedro,1929~1989)’의 흉상이 있고 ‘성배와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성당이 있다. 알베르게 앞뜰에는 어제의 참배객으로 보이는 단체 순례자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디. 우리도 이 알베르게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E가 길을 안내한다. 어느 길인들 사양하랴마는 이 길을 여러 차례 걸은 선배 순례자가 소개한 두 갈래 길 중 숲길보다는 전망 좋은 도로길을 선택하여 길을 잡는다. E는 어느새 숲길 위의 능선 너머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산봉우리와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길 아래로 펼쳐진 마을이 정겹다. 길 위의 숲 속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산새들의 지저귐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걷는 순례자>

 1,270 고지 산 로께 언덕(Alto de San Roque)에는 한 손으로는 모자를 머리 위로 누르고 또 다른 손으로는 지팡이를 꼭 쥐고 바람을 거스르며 걷고 있는 순례자의 동상이 있다.  우리들의 자화상 같아서 순간 울컥해진다.  


내려가는 길은 확실히 덜 힘들다.  네 발로 가기 때문일 게다. 이번 순례길에서는 등산 스틱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언덕 아래 아스라이 보이던 마을이 가까워지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진다. 길을 걷는 내내 마을의 입구나 출구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죽은 영혼들의 안식을 책임지려는 듯 크고 작은 성당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산 자들의 미래 공간이 현재 삶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고즈넉한 까미노 길에서 다시 죽음과 삶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길에도 삶에도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게 마련이다,  빠도르넬로(Padornelo)에서 뽀이오 언덕(Alto do Polo)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팔라서 숨이 턱에 차 오른다. 고갯마루에 햇살이 잘 드는 전망 좋은 곳에 카페가 있다. E가 먼저 와 있었고 아르헨티나 젊은 연인들과 언제부터인가 따로 걷고 있는 프랑스 부부 중 숱 많은 카이제르 수염의 남편이 해맑게 인사한다.

내려가는 길 내내 푸른 목초지와 풀을 뜯는 소들을 원 없이 본다. 그 부산물로 발아래 이따금씩 뒹구는 소똥과 그 냄새에 익숙해지며 폰프리아(Fonfria)와 오비두에도(O Biduedo) 마을을 지나고 필로 발(Filoval)과 빠산떼스(Pasantes 22.5km) 그리고 라밀(Ramil)지난다.


오늘의 종착지 뜨리아 까스떼야(Triacastela)는 지나온 도시나 마을에 비해 큰 도시이다. 두 사람이 한 방에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정원과 내부 분위기 장식과 디자인이 멋진 산장 같은 알베르게를 찾아낸 것에 만족하며 여장을 푼다.  영국 형제들이 벌써 도착해서 도미토리 안쪽의 아래층 침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팜플로나에서 시작했다는 한국 여학생도 만났다. 이 여학생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십 대의 젊은 엄마가 우리 숙소 건너편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리셉션에서 추천해 준 식당을 찾아갔는데 거기에 이 세 모자가 있었다. 아이들과 젊은 엄마에게 무한한 감동을 전하고 경의와 격려를 보낸다. 이들에게 이 길의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없이 귀한 자양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따뜻한 샤워를 하고 아내의 위층 내 자리에 눕는다. 이내 다양한 음색과 음량으로 코 고는 소리가 실내에 가득하다. 나는 리셉션이 있는 홀에 미리 보아 두었던 소파로 자리를 옮긴다. 방보다 온기는 덜하지만 옷을 껴입고 침낭에 들어가니 제법 안성맞춤이다. 눈을 감으니 갈리시아의 대자연의 풍경이 이스라히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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