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차와 고구마크로켓
하루 종일 현모양처 놀이하면서 보냈다. 이때만큼은 정신세계가 가장 평온한 시간이다. 음식 만들기에 몰입하다 보면 불필요한 것은 자연히 잊는다. 특히 만들어 본 적 없는 것을 처음 시도할 때 몰입도가 더 높아진다.
겨울 오기 전에 만들려고 벼르고 벼르던 대추차.
야심 차게 준비한 고구마크로켓.
제사 때마다 사용하고 남은 대추를 냉동실에 모아 두었더니 제법 양이되었다. 모양과 크기도 가지가지다. 주름진 대추를 어떻게 씻지? 골진 주름마다 마음의 때가 맺힌 듯이 털어낼 일이 고민이다. 해답은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오전에 완독 한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주름』이 생각났다. 아직 소설 속 주인공의 긴 여행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검붉은 대추 주름이, 거무튀튀하고 주름투성인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느 겨울, 홀연히 사라졌다가 2년 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 주인공인 아버지 김진영의 초췌하고 주름진 얼굴이 어쩌면 대추의 주름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홀연히 가족을 팽개치고, 흠모의 여인 천혜린에게 평생을 바치며 주름진 인생을 살다 간 아버지의 얼굴과 닮아있다.
대추는 식초를 넣은 물에 10분 정도 담갔다가 깨끗이 씻어서 푹 삶았다. 마치 2년여를, 가족을 버리고 극적인 삶을 살다 간 김진영을 잊고자, 소설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푹 물러서 으깨지도록 생강도 한주먹 넣고 오래 끓였다.
40분 끓이고 채에 씨와 껍질을 걸러내고 생강을 넣고 다시 20분을 더 끓였다. 다시 고운 채에 거르기 위해 식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다. 씨를 미리 도려내고 삶았더라면 더 수월할 뻔했다. 그랬더라면 껍질 째 훅 갈아버리면 손쉬웠을 텐데. 어설픈 솜씨지만 실패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몰입도는 최상이었다.
다용도실 들락거릴 때마다 신경 쓰이던 고구마 역시 스님의 추천으로 크로켓을 만들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 텃밭에서 자란 고구마가 어찌 된 일인지 벌써 군데군데 까맣게 썩어 있었다. 이참에 박스 절반에 가까운 고구마를 재빨리 도려냈다.
푹 무르게 구워서 으깨어 놓으니 제법 달고 양이 많았다. 미리 준비한 양파, 당근, 모짜랠라치즈, 빵가루 등등. 고구마 크로켓은 여기까지 준비해 두었다.
뭐든 하면 생각보다 훨씬 양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고구마크로켓도 양이 너무 많아서 재료 준비하는데만 시간이 걸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로 미루게 되었다. 그동안 미루고 벼르던 두 가지 숙제를 드디어 절반은 했다. 내일 아침 일찍 고운 채에 걸러 담았다가 작은딸에게 가져다줄 생각이다. 나머지는 냉동시키면 일주일 후에 만나는 큰딸에게도 전해 줄 수 있다.
딸과 손주들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만들 때는 힘들어도 즐겁고 기쁘다. 나의 작은 수고가 누구라도 행복하면 나 또한 행복하기 때문이다. 가끔 사서 하는 오늘 같은 고생은 언제나 즐겁다. 오늘도 만드는 즐거움을 준 우리 아이들이 고맙다. 손주 녀석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라면 뭔들 즐거우니까. 오늘도 만드는 즐거움을 준 우리 아이들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