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보다 사위

by 마리혜

서울에 사는 사위와 딸이 주말 저녁을 우리와 함께 보냈다. 이곳까지 오려면 서울 시내를 벗어나는 데만 한 시간 반이 걸리기 때문에 적어도 세 시간 이상 걸린다.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휴게소를 한 두 군데 거치면 오전 일찍 출발해도 저녁이 가까워질 때쯤 도착한다.


그렇게 사위는 하루 저녁 장인, 장모 보겠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다. 고작 저녁 한 끼 먹고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들어온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 먹고 서둘러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잠시 왔다 갈걸 힘들게 온다고 생각하니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위가 오면 반가운 마음은 한 가득이지만 미안한 마음은 다른데 있다. 사위는 사업상 밤에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을 한다. 주말에 잘 쉬어야 함에도 잠깐 쉴 틈도 없이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걱정 반 미안함 반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입이 무거운 사위는 맏이라서 그런지 효심이 대단하다.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아 늘 겸손하다. 여태 부정적인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또 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격식 차려 먼 길 오려고 애쓰지 말라고 먼저 당부하고 말리기도 하는데 잘 안된다.


그런데 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가끔 오는데 사위의 의지대로 하게 두라며 웃어 버린다. 요즘은 잠을 못 잔 사위를 대신해서 딸이 운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꾸벅 졸며 자는 잠이 어디 편할까. 싫은 소리 한마디 한 줄 모르는 사위는 그저 옆에서 빙그레 웃기만 한다.


사위가 올 때마다 가까이 계시는 사돈께서 뭐든 챙겨 주신다. 과일과 기타 선물을 챙겨주셔서 늘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일이 보답을 다 해드리지 못해 부끄럽기만 하다.


“딸아, 이왕 선물을 가져오려거든 과일 보다 감자나 당근이 더 좋아.”

하루는 염치없는 말이지만 제안을 했다. 귀담아들었던지 감자와 당근을 박스로 싣고 왔다. 과일이나 고기, 굴비세트보다 더 부자 된 느낌이었다. 싱싱한 채소를 소분해서 저장해서 먹기도 좋았다. 이참에 이웃과 나눔 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부탁한 후로는 다니러 올 때 가끔 오이, 감자, 당근, 고구마, 콜라비로 가져오기도 한다. 사돈께서 직접 따로 챙겨주셨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사돈의 넉넉한 마음씀에 놀랄 때가 많다. 내가 김장 때면 사돈을 도와 김장하기 위해 그날을 설레며 기다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두 딸의 손자들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는데 방학 기간에도 바쁘게 보낼 모양이다. 방과 후 활동을 해야 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집중해야 하니까 예전처럼 외갓집 오기는 어렵겠지. 지난여름 방학처럼 외갓집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서울 손자 두 녀석은 바둑도 둬야 하고, 유아반 수영 선수니까 훈련도 해야 하고 게임도, 공부도. 꼬마들이라도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또 두 딸의 둘째 손자, 손녀는 초등학교 새 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참 세월도 빠르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진작부터 어떻게든 외가에서 같이 보내면서 손주들과 추억 쌓기 하려고 애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나이를 먹어서도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 가끔 눈시울을 붉힌다. 국민학교 방학 때 외가댁에 가면 외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양말과 공책을 사주신 기억을 되살리며 손주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만큼 아이들의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은 어른을 공경하며 바르게 성장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그 뜻을 잘 이해하는 사위는 아이들이 외가에 가고 싶어 할 땐 어제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사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 가끔 딸이 투덜거리면 되려 그러는 딸에게 못마땅한 마음이 올라온다. 엄마는 도대체 누구 편이냐고. 하지만 딸은 딸이고 그래도 딸보다 사위가 지금은 더 낫다.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