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도 쓴다.
그분은 경기도 여주에 살고 계신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계셨던 분이었다. 신분과 나이를 불문하고 오로지 글 하나로 만나게 된 분이었다. 1호 찐 독자인 셈이다.
글 쓴답시고 끄적거리다가 좌절이 때론 희망과 사랑으로 변주되어 꿈틀거리던 시점이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등단 시인인 가수 이 솔로몬을 향한 팬심이었다. 나는 시인 책을 읽고 생각나는 대로 주로 글로 끄적인 사람, 그분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오디션 입상 후 막 가수의 길로 접어든 이솔로몬의 성공을 바라는 분이었다. 어려운 환경의 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 마음이었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이솔로몬 작가 책 리뷰 쓴 글을 보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연락처 없이 댓글로만 소통하던 때였다. 마침 시인 가수의 북 콘서트가 진행 중이었던 터라 접수자 외엔 입장이 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왔노라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짧은 댓글이 올라와 의아했다. 작가가 아닌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다니 참으로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왔다니 더 그랬다.
로비 한쪽 벽에 있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웃고 계시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뛰듯이 달려가 넙죽 인사를 했다. 한 손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으시더니 반갑게 손을 잡아 주셨다.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속으로는 어색하고 떨려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후덕한 첫 모습은 맏언니처럼 푸근했다. 연세에 비해 서울 말씨에 목소리까지 경쾌해서 후덕한 외모를 5년쯤 더 젊게 느끼게 했다. 무릎 수술하고 일주일도 체 지나지 않아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걸음걸이도 매우 불편해 보였다.
그분은 수려한 문장을 원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꾹꾹 눌러쓴 문장에 녹아 있는 나의 진심을 보아주었다. 끄적이는 문장마다 이유 없이 무조건 사랑해 주시는 분이다.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였다. 나도 그렇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지금 까지 대해 주시는 진심으로 제대로 가르쳐 주신 분이다.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보여준 분이다.
그분의 다정한 말씨는 처음처럼 지금도 늘 따뜻하다. 따뜻하게 건네는 말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말속에는 긍정의 씨앗이 장착된 것처럼 한 마디 할 때마다 내게 콕콕 박힌다. 나는 그때마다 꼼짝없이 그분에게로 기분 좋게 끌려간다. 처음부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그분과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팬심이라는 공통분모가 아닌 오래된 인연처럼 자연스럽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외향적이기보다 내향에 가까운 나로서는 처음이 참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급속도 발전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기적은 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분과 함께 즐거울 일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내고 공유해 보는 것도 우정을 다지는 길이었다.
만나고 싶을 땐 언제든 오케이! 마치 50대 젊음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분처럼 행동도 경쾌하신 분이다. 언제든 한 시간 넘는 거리의 이곳까지 달려오신다. 가끔 중간 어디쯤 만나서 밥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행복한 이야기만 나눈다. 오후 4시 정각이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만나러 올 때마다 커다란 쇼핑백 안에는 온갖 종류의 식품들이 담겨있다. 마치 작은 마트를 통째 옮겨다 놓은 것처럼 다양하다. 금방 만든 반찬들까지. 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꼭 있다. 매번 수제 식빵이 꼭 들어 있다. 손수 만든 빵은 통밀로 만든 건강 빵으로 봉지 겉면에는 귀여운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빵 봉지 안에는 빵만이 아니다. 거기엔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그분은 사랑을 주시지만 나는 눈물로 꿀꺽 삼킨다. 가끔 엄마가 환생하셨나?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엄마 생각하다 못 참으면 아기처럼 울기도 한다.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설픈 글임에도 인생에 좋은 인연을 만났다. 글을 쓰고 이루어진 인연이다. 가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울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