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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딸들에게 바라는 하나

by 마리혜

<지난 10월 16일 가을 이야기입니다.>


꼬마들이 가을을 맘껏 뛰어놀았다. 코스모스 핀 너른 들길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힘겨루기 하면서 뜀박질한다. 손자 녀석들이 한 곳에 잠시도 눌러 앉아 있지 못한다. 걸림 없이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거리고 논다. 그 모습이 오늘 더 특별했다.


꽃잎을 물끄러미 쳐다봤다가 만져도 보았다가 노는 모습이 참 예뻤다. 한 녀석이 꽃에 다가서면 서로 앞다퉈 이 꽃 저 꽃 만지작 만지작 한다. 꽃을 보고 뭐라고 말하는지 물어볼걸 미처 생각지 못했다. 울긋불긋한 꽃잎 색깔을 가느다란 줄기에서 어쩌면 이렇게 곱게 만들었을까 하고 나처럼 궁금해했을까. 마구 뛰어놀다가도 멈칫 서서 꽃잎을 만져 본다. 알 수는 없지만 손끝에 놓고 바라보는 모습이 딱 그랬다.


손자들 틈에 끼여서 따라다니는 손녀의 발걸음도 바쁘다. 6살 손녀는 오빠들 틈에 유난히 반짝인다.

"사랑아, 사랑이는 왜 이렇게 이쁜 거야?. 너무 귀엽고 예뻐. 인형 같아. 꼭 안아 주고 싶어."

두 팔을 벌리면 품에 폭 안긴다. 무리한 입맞춤도 해준다. 사랑이는 자기도 이쁜 걸 아는 모양이다.

"사랑해요. 할머니."라는 말을 아낌없이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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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간 곳은 충주 탄금공원이었다. 충주는 매주 가는 곳이지만 여유로운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다. 특히 꼬마들 시간을 맞춰서 두 딸과 함께 만나는 것이 어려웠다. 서로 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두 딸이 만나서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이 같은 하루가 나에겐 더없이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


코스모스 밭 옆에서 눈을 돌리면 무술공연장이 바로 보였다. 입구에는 각종 전통 놀이가 준비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푹 빠져 놀기에는 안성 맞춤이었다. 팽이 돌리기, 윷놀이, 화살 당기기는 손자들과 어울려 한판 승부 겨루기 하는 것이 신나고 재밌었다.


특히 그네뛰기는 9살들이 무척 좋아했다. 손자와 뛰다 날다 균형 맞추기가 길어야 겨우 서너 번이지만 잠깐 하늘을 나는 맛? 손자가 좋으니 나도 좋았다.

img.jpg 출처-블로그 앵글이네 일상


곧이어 숲처럼 우거진 공원 안 길을 따라 걷다 나무숲을 만났다. 한 녀석이 숲 놀이터로 달려가니 또 우르르 꼬리 달고 쫓아간다. 놀이터 안이 천국인가? 그렇게 들어가더니 한 시간 넘도록 나올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씩 얼굴을 비출 때 아이들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 것을 보면 그저 신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나무숲에서 자기들 세상 만난 것처럼 노는 동안 그늘 밑에 앉은 두 딸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도 그 만큼 길어졌다. 대화는 아이들의 학습과 좋아하는 음식과 친구들 이야기지만 서로 얼굴 맞대고 웃는 딸들의 표정도 가을 하늘처럼 밝고 맑았다. 딸들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좋았다.

참 오랜만이었다. 두 딸과 각각의 두 아이들이 뭉쳐서 꽃 나들이 온 것이 손주들이 9살이 돼서야 가능했다. 더군다나 편안한 얼굴로 웃음꽃 피우는 딸들의 모습도 오랜만이었다.


최근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큰 딸은 무난하고 털털한 성격에 아들인 두 녀석조차 활동적이고 놀이 대장이다. 그에 반해 매사에 신중하고 조용한 작은 딸은 자기와 꼭 같은 아들과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딸을 두고 있다. 각 첫 애들 끼리는 동갑내기고 아직 어리다 보니 명절 때나 기념일에 꼬마들이 뭉치면 꼭 부작용이 일어났다.


새로운 장난감을 누가 갖고 있기라도 하면 한 쪽엔 호기심으로 칭얼대고, 또 한 쪽에선 독차지하려는 아이를 설득하고 달래는 딸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잘 어울려 놀다가도 장난감 앞에서는 양보하지 않았다. 특히 야무지게 우기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들을 보고 있는 작은 딸은 그때마다 몹시 답답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아마 유난스럽지 않고 조용한 성격의 자기 자식이 상대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남몰래 손주들을 따로 조용히 타이르지만 그때뿐. 또다시 만나면 반갑다고 좋아하다가도 끝은 말 없는 작은 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두 딸이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은 딸은 굳이 함께 해야 한다면 필요한 시간만 있되 될 수 있으면 겹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친정에서 자고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이들끼리 긴 시간 어울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끼리도 모처럼 만나도 서먹거리고 반가움 보다 쭈뼛거림이 먼저였다.


두 딸들도 최소한 의무만 있을 뿐 서로 타인같이 느껴졌다. 누구도 탓할 것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로 곧 돌아오리라 믿고 기다리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울며 돌아서더니 2주 만에 오늘 다시 만났다.


어느새 훌쩍 자란 손자 두 녀석 덕분에 내 딸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참 평화로워 보였다.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손주들의 같은 나이인 딸들이 그 자리에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났지만 딸들이 볼까 억지로 참았다.


변화된 오늘의 이야기를 내 아들과 나누게 되었다.


"엄마가 너희들 키울 때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길 누구보다 바라지만, 어른이 되면 여러 가지 상황이 그럴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


"부모는 자식들이 우애 없이 지내는 건 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럽거든. 손자들이 서로 잘 지내니까 누나들도 예전처럼 속닥속닥하는 것 보니까 너무 좋아서 눈물 나더라."


"우웅, 엄마 그동안 마음고생하셨구나. 누구 자식들인데. 엄마 자식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아들의 토닥거리는 한마디 말은 최고다.




손주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크게 두 팔을 벌려 꼭 안는다.

"보고 싶었어."

"저번보다 더 멋있어졌어. "

"사랑해."

매번 만날 때마다 하는 반복되는 말이지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사랑하는 딸들아, 언제나 그렇게 우애 있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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